발자크와 다시 만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12년 전에 <나귀 가죽>으로 발자크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해 여름에 <고리오 영감>을 읽었다.
다시 만난 과연 발자크는 디테일의 마법사답다.
사람들은 발자크의 책들이 장황하고 지루하다고 한다. 인정한다.
그는 소설가인 동시에 시대의 기록자이기도 했다.
나도 처음에 <고리오 영감>을 읽으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이게 세계 10대 소설이라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읽었다.
19세기 프랑스를, 그리고 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발자크를 만나기 위해서 이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렇게 장벽을 뛰어 넘은 이들에겐 극락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사촌 퐁스>를 읽으면서 내가 경험한 것이다. 절반 정도까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드디어 본 궤도에 오르니, 무언가 번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발자크의 팬이 된 순간이었다.
바로 3년 전에 사서 묵혀둔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평생의 연인 한스카 부인을 만나는 장면까지, 절반 정도 읽었다. 그러다 발자크의 원전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에 잠시 한눈을 팔고 있다.
아, 도서관에서 빌린 <사촌 베트>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 중역이란 말이 있어서 좀 켕긴다. 일단 읽기는 해야겠지.
발자크의 책들은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와서 수집하는 맛도 있다. 다음 타켓은 주말에 <사라진느>를 사냥할 계획이다.
지금은 문지에서 나왔지만 절판된 <인생의 첫 출발>을 읽는 중이다. 19세 청년 오스카르가 합승마차를 타고 가는 길에 만난 이들과 나누는 블러핑 섞인 대화들이 어찌나 재밌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번에도 발자크는 19세기 파리의 원거리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뻐꾸기마차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강력한 서사의 힘으로 발자크 특유의 장황함을 돌파할 것이다 나는. 결론은 발자크는 역시 문학 천재 그리고 소설기계라는 점이다.
발자쿠 읽기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 단풍 사진 하나 투척.
참 이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