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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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오늘 뉴스를 찾아보니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의 푸틴은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러시아의 원래 전쟁 목적이었던 우크라이나 권력 교체는 실패했지만, 크림반도에 이르는 남부회랑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장악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을 끝낼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서방의 강력한 경제 제재도 자원 부국 러시아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전쟁 촉발의 이유가 된 나토의 동진과 돈바스 지역에서 아조프 부대의 문제점 등등을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누가 봐도 전쟁이 분명한데, 특수 군사작전이라는 말장난을 하는 지도자의 파멸적 결정에 가장 큰 피해자들은 <전쟁일기>를 기록한 올가 그레벤니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자녀들이 아닐까 싶다.

 

어제도 우크라이나 쇼핑 센터를 타격한 미사일에 어린 소녀가 희생되었다고 하지 않은가. 야속하게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세계로 타전되던 비극적 뉴스들 역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시간에 의해 희석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크라이나와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만큼이나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전쟁 뉴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직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아, 나고 자란 고향을 순전히 타의에 의해 떠나게 되는 게 어떤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미사일이나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탄을 피해 지하실로 간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지만,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는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적응력으로 곧바로 암울한 상황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을 대비해서 아이들과 자신의 팔뚝에 신상정보를 적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전쟁은 그렇게 우리에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라고 강요한다. 그 반대는 무엇일까? 온갖 역경을 딛고 생존해야 한다는 걸까. 전쟁이라는 물리적 요소가 없더라도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전쟁터가 아니었던가. 갑자기 비관적인 생각들이 엄습해온다.

 

결국 올가네 가족 역시 전쟁 초기 가장 위험했던 키이우(러시아식으로 키예프)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 도래했다. 가족 중 일부는 피난을 거부하고 현지에 남았다. 올가의 남편 역시 계엄령 때문에 위험한 우크라이나를 떠나 이웃나라로 월경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어쩌면 영원한 이별을 될 지도 모를 순간을 동화 작가 올가는 덤덤한 필치로 세계의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아마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정교하고 세밀한 그림보다 오히려 크로키 스타일로 잡아낸 순간들에서 긴박감이 느껴진다.

 

폴란드에 가서 올가 가족은 난민 신세가 되었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전적으로 타인들의 선의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글펐을까.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이 가진 돈도 은행에서 마음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이 부분에서 <시녀 이야기>에서 길리어드 국가가 여성들의 권리를 제한하기 시작한 시발점이 여성들의 계좌 동결이었다는 점이 떠올랐다. 조금 삼천포지만 최근 어떤 나라가 점점 더 길리어드화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도 들었다. 걱정이다 걱정이야.

 

그래도 올가 그레벤니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멀리 불가리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만약 올가였다면 당시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과연 긴박한 순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이 옳았을 지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전쟁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컷은 지하실의 아이들이 암벽에 평화라는 글을 적는 장면이었다. 세상에 좋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전쟁도 반대한다. 부디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 영원한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전쟁일기>의 부제는 우크라니아의 눈물이더라. 모쪼록 우크라이나 땅에 아이들의 눈물이 멈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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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6-29 17: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쇼핑몰 공격을 감행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팔에 신상정보를 적었던 것, 남편과 헤어지던 장면이 저는 너무 먹먹했어요ㅠㅠ 멈추지 않는 비뚤어진 욕심에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 요원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레삭매냐 2022-06-29 17:19   좋아요 3 | URL
괴벨스가 선전한 대로 총력전
에 들어 가면서 군인과 민간인
에 대한 구분이 없어지지 않았
나 싶습니다.

쇼핑몰 공격 소식에 얼탱이가
없었습니다. 참 내 -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욕망 때문
에 평화가 부숴지는가 봅니다.

그레이스 2022-06-30 0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럽연합은 이제 슬슬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듯합니다.ㅠㅠ

레삭매냐 2022-06-30 17:32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

왠지 우크라니아 사람들만
불쌍하게 된 것 같습니다.

mini74 2022-07-04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글을 써야하는데. 전쟁이 끝나기만 바랍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 정말 속상해요.ㅠㅠ그걸 바라겠죠. 지치기를 관심이 사라지길 무덤덤해지길 ㅠㅠ

레삭매냐 2022-07-04 15:05   좋아요 1 | URL
분량은 많지 않은데 막상
리뷰로 풀어 내려니 쉽지
가 않더라구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네요...

한숨만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