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밤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지나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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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싼마오의 책들을 제법 읽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나의 그런 생각은 판단착오였다. 계속해서 새로운 싼마오 작가의 책들이 나오고 있다. 수십년 인연 덕분인지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여전히 흥겹고 즐거운 싼마오 작가의 글들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그녀의 책들이 인기가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첫 번째로 그녀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전사 내지는 쌈닭 같은 이미지 덕분이 아닐까. 서양도 아닌 동양에서 온 여성이 세상의 불의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맞서 싸우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잠시 경유하기 위해 들른 영국의 공항에서 밀입국 혐의로 수감까지 되었지만 싼마오는 이에 1도 굴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저항한다.

 

모지리 신랑 호세가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혹사를 당할 때도, 당당하게 고용주에게 할 말 하지 않을 말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쏘아 붙인다. 물론 싼마오의 강약 조절도 탁월했다. 무턱대고 질러대는 게 아니라, 부당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 집안 청소와 중화요리 대접 같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엄연한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 바로 이거지!

 

두 번째로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의 에피소드에 MSG를 가득 담아서 진수성찬 같은 이야기를 재창조해낸다는 점이다. 항구에서 200페세타를 간절하게 요청하는 노르웨이 출신 부랑자와의 만남을 보라. 보통 사람 같으면 아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 철철 넘치는 세계적 오지라퍼 싼마오의 성정을 예의 부랑자는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결국 싼마오는 거머리같이 달라 붙는 부랑자에게 500페세타를 건네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냥 동냥이 아닌 정말 도움이 필요한 그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할 뻔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데이라 유람기에서도 천사상을 한 개만 사겠다는 싼마오와 네 개 세트가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노인장의 다툼은 또 어떠한가. 그러니까 싼마오가 사고 싶은 천사상은 지붕 모서리마다 달아야 한다는 그 동네 전통이라는 거다. 그걸 모르는 싼마오에게 단품은 절대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등을 돌려 버리는 주인장! 대단하지 않은가. 이런 주인장의 기개와 그걸 또 품고 이해하려는 싼마오의 이해심, 바로 이런 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빛나게 만드는 그런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세 번째 요소는 싼마오가 주유하는 이국적인 풍경들이라고 감히 선언하고 싶다. <사하라 이야기>에서는 스페인령 서사하라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선사하지 않았던가. <포근한 밤>에서는 스페인에서 잘 나가는 사업가와의 인터뷰를 필두로 해서 여전사 싼마오가 아니라면 도저히 가볼 수도 없는 그런 미지의 세계를 간접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황량한 사막에서 느끼는 절대 고독의 느낌들, 악랄한 고용주에게 월급이 체불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착취당하는 신랑 호세를 대신해서 맞서 싸우는 모습에는 사이다 필링이 느껴지지 않았던가.

 

아무 생각 없이, 심지어 사전 연락 한 번 없이 히피 같은 생활을 하는 공동체를 찾아가는 모습도 나는 마냥 부러웠다. 그렇게 찾아온 벗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지기들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만약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혼자 살던 시절에는 지인의 요청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집에서 재워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져 버린 미션일 뿐이다. 그 시절에는 아주 오래 시간이 흘러 뭐 그땐 그랬지하게 되리라는 걸 나는 알았을까.

 

일상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싼마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산 사람은 또 아니었다. 싼마오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나는 나중에 과연 어떤 사람으로 나를 아는 이들에게 기억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오디오가 빌 시간이 드물지만, 나홀로 있는 시간에는 참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니 말이다. 더불어도 좋고, 나홀로도 좋은 특이한 캐릭터가 나라는 인간이 아닐까 싶다.

 


싼마오의 책들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한 점 하나가 있었다. 과연 그녀는 호세의 죽음에 대해 어떤 글을 남겼을까. 호세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스페인에 있는 시월드의 반응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주제는 어쩌면 싼마오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뱀다리] 호세 마리아의 다이빙 사고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보니 뉴요커에 나온 글이 있어서 참조하게 되었다.

 

싼마오의 본명은 천핑으로 1943326일 태어났다. 1967년 마드리드로 유학을 떠난 싼마오는 그곳에서 16세 소년 호세 마리아 쿠에로 이 루이즈를 만났다. 당시 호세는 나이가 들면 싼마오와 결혼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투어 가이드 그리고 향수 모델 활동을 하던 싼마오는 당시에 인기가 많았는지 청혼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서독에서 만난 남성과 결혼 직전까지 갔으나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다시 마드리드로 간 싼마오에서 다시 호세를 만나게 되었고, 19744월 서사하라로 가 그곳에서 호세와 결혼했다.

 

1975년 가을 스페인이 서사하라에서 철수하게 되었을 때, 싼마오와 호세 부부 역시 맨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안착하게 되었다. 자존심 강한 스페인 남자 호세는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 고생한 모양이다. 아마 이 시절에 멀리 나이지리아까지 가서 8개월 동안 고생을 한 기록이 <오월의 꽃>으로 탄생했다.

 

1979년 싼마오의 부모님들이 싼마오와 호세를 방문하는 동안, 호세(당시 27)가 잠수 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싼마오는 그로부터 12년 뒤인 19911447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호세가 죽기 전에 그녀의 작품들에는 즐거움과 유머가 가득했으나, 그후에는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죽기 전에 중국 본토에도 방문했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다른 기사들을 찾아보니 당시 사진들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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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2-06-20 1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싼마오의 책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호세가 잠수사고로 사망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보니 슬퍼져요ㅠㅠ; 그녀 또한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에 관한 글을 그녀가 남겼을까 너무 마음 아파서 글로도 쓰지 못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2-06-20 11:07   좋아요 2 | URL
문나이트님 덕분에 <포근한 밤>
의 존재를 알게 되었답니다.
감사합니다.

희망도서로 도서관에서 수배해서
읽었어요.

그렇지요, 호세와 싼마오의 삶이
비극적이어서 참 그렇더라구요.

거리의화가 2022-06-20 1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찜합니다. 싼마오의 책들이 궁금해졌어요^^

레삭매냐 2022-06-20 11:08   좋아요 3 | URL
아주 어려서 읽고 정말 재밌다
싶었답니다 :>

나이 먹고 읽어도 여전히 재밌
네요.

mini74 2022-06-20 1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하라 이야기 넘 재미있었어요.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대책없어 보이기도 하면서 재미있었고 행복해보였는데 ㅠ

레삭매냐 2022-06-20 19:04   좋아요 1 | URL
처음 만났을 적에는 잘 몰랐
었는데, 나중에 후일담을 듣
고 나니 참, 그렇더군요.

떠돌이 2022-07-0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세의 죽음에 관해 남긴 글도 있고, 시월드의 반응을 쓴 글도 있어요. 시월드 특히 시아버지 반응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