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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의사 멩겔레의 실종
올리비에 게즈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평점 :

6년 전, <나쁜 의사들>을 통해 악명 높은 절멸 수용소에서 이른바 “죽음의 천사”로 불렸던 요제프 멩겔레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가 행한 악행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요제프 멩겔레였다.
프랑스 출신 저널리스트 올리비에 게즈는 1911년 독일 귄츠부르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인류학과 의학 두 개의 박사 학위를 지닌 34세의 청년 나치 친위대 장교 요제프 멩겔레의 실체를 <나치 의사 멩겔레의 실종>이란 걸작 소설을 통해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전쟁과 전후에 반제 회의에서 ‘최종해결책’이란 방식으로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을 전멸시키기로 계획했던 빌런 3총사(히틀러, 프리드리히 그리고 힘러)는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독일이 패전하고 어수선한 틈을 타서, 숱한 나치들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조국 독일을 떠나 타지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새로운 엘도라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도 다 싫다며 새로운 스타일의 페론주의를 개척한 후안 페론이 통치하는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였다.
너튜브 컨텐츠를 통해 알게 된 바에 따르면, 나치즘에 동조하는 가톨릭 사제들이 가세해서 나치 전범들을 남미로 보내는 프로젝트가 가동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상대로 한 생체 실험 자료들을 가지고 멩겔레는 도주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제노바를 경유해서 1949년 38세의 멩겔레는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매사에 조심했던 멩겔레는 다른 나치 전범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귄츠부르크의 멩겔레 집안의 전폭적 지지였다. 농기구 사업을 벌이고 있던 멩겔레 패밀리는 귄츠부르크의 경찰들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통해 요제프 멩겔레의 도주를 적극 지원했다. 유대인 출신 검사이자 나치 사냥꾼으로 알려진 프리츠 바우어가 맹활약하고 있었지만, 전후의 어수선한 상황 가운데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학살극의 주범 중의 하나인 요제프 멩겔레에 대한 본격적은 추적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수십년 간에 걸친 멩겔레의 도주극이 보여주는 아이러니 중의 하나는, 그가 만약에 뉘른베르크 전범재판만 무사히 넘겼더라면 아마 독일에서 징역형을 살고 제국의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처럼 사형제도가 폐지된 독일에서 다른 나치 전범들처럼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용의주도하고 자신만만했던 멩겔레는 그런 방식 대신 헬무트 그레고어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새로운 땅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했다.
페론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페론이 쿠르트 탕크 박사나 전직 공군에이스 한스-울리히 루델 같은 회개하지 않은 나치 전범들을 우대하던 시절에는 멩겔레도 남부럽지 않은 그런 삶을 영위할 수가 있었다. 심지어 그는 독일영사관에 나타나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신분증을 얻기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악이 잠시 번성할 수는 있어도 영원하지는 않는 다는 점을 그는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또다른 나치 사냥꾼 시몬 로젠탈이 등장해서 그의 뒤를 추적하고, 또 악명 높은 이스라엘 모사드가 치밀하면서도 오랜 준비 끝에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잡아 이스라엘로 송환하게 되면서 요제프 멩겔레에 대한 사냥도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사실 모사드 부대는 아이히만과 함께 멩겔레도 잡아 이스라엘로 보내려는 계획을 가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멩겔레는 모사드의 체포를 면했고 파라과이를 거쳐 브라질로 도피해 버렸다.
모사드는 다음 목표로 죽음의 천사를 정조준했지만, 어떤 인질극과 아랍과의 분쟁으로 국가적 위기가 도래하면서 거물급 나치 사냥은 중단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폭증했다. 동시에 아이히만 체포 과정에서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하게 되었는데 이 또한 모사드가 훗날 보다 적극적인 나치 사냥을 주저하게 만드는 한 가지 요소로 작동하게 되었다.
한편, 멩겔레는 계속해서 주거지를 이전하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자신에 대한 추적을 따돌리는데 골몰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불법적으로 낙태 시술을 하고, 자기 친동생의 부인이었던 마르타와 결혼하고 지내던 때는 돌이켜보면 이 용서받을 수 없었던 빌런에게 좋은 시절이었다. 친생자인 롤프에게 주변 이들은 아버지 멩겔레가 비킹 사단 출신으로 러시아 전선에서 전사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른 무장 친위대 대원처럼 몸에 문신을 했다면, 그 역시 무사할 수가 없었겠지만 타인의 신체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실험을 해대던 악당이 자기 몸에 문신을 그려 넣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우연들이 멩겔레가 역사의 단죄를 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주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서독의 사법당국 역시 그가 어디에 있든 간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열성적인 추적은 하지 않았다. 나치 전범에 대한 이런 느슨한 감시와 추적 그리고 루델 같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도움으로 멩겔레는 자신을 쫓는 사법 당국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어쨌든 아이히만의 체포 이래 파샤 같은 삶을 영위하던 아우슈비츠의 빌런은 이제 쫓기는 한 마리의 들짐승 같은 신세가 되었다. 저자 올리비에 게즈는 수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추격당하는 쥐가 된 멩겔레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다룬다. 멩겔레는 1979년 브라질의 바닷가에서 심장마비로 익사하는 순간까지 총통의 우생학 기술자로 자신이 저지른 온갖 악행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잘못된 신념에 경도된 엘리트가 우리 인간 사회에 커다란 병폐가 될 수 있는지 요제프 멩겔레의 삶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뮌헨에서 변호사가 된 롤프와의 재회에서, 자신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앞에서 정말 할 말이 잃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44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 가운데 자그마치 33만 명이 소각장의 연기로 사라져 버렸다. 쌍둥이들에 대한 생체 실험과 갓 태어난 아기들에 대해서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런 만행을 저지른 악마 같은 작자가 ‘정글보이’로 변신해서 오로지 자신의 생존만을 도모하면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듣는 장면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소설 중에 ‘리옹의 도살자’라고 불린 클라우스 바르비(Klaus Barbie)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등장한다. 비록 멩겔레는 역사의 심판대에 서지 못했지만, 비슷한 도주의 궤적을 그리며 남미로 잠적했던 리옹의 도살자는 1987년 프랑스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4년 뒤 수감 중에 죽었다. 인류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빌런은 반드시 죗값을 물어야 한다. 올리비에 게즈의 말처럼, 악을 퍼뜨리는 인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