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바야흐로 이천이십이년 이월 오일 토요일 저녁 무렵.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서 집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마침 읽고 있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작가의 <바람의 그림자>가 너무 재밌어서 그의 나머지 책들은 모두 사냥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그 전날에 문동에서 나온 <바람의 그림자>와 민음사에서 나온 송병선 교수 번역의 <천사의 게임> 1권을 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이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스페인 작가의 책이 바로 <바람의 그림자>라나 어쨌다나.
책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소설에서는 ‘전쟁’이라고 부르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 세계대전도 끝난 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0세 소년 다니엘 셈페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 너튜버는 이 소설을 한 줄로 요약하면 “50년 전에 걸친 라부스토리”라고 하던데... 그렇게 마냥 단순하기만 하진 않다는 게 1권의 절반을 읽은 지금 나의 소감이라네.
이거 책사냥과 독후가 뒤죽박죽으로 엇갈리는 나의 페이퍼. 나의 삼천포행은 늘상 그렇다. 아 그리고 보니 말도 안되게 또 삼천포에 가보고 싶다는. 아주 오래 전, 진주 가는 길에 삼천포로 빠진 기억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작가는 2년 전인 2020년에 대장암으로 이미 작고하셨다고 한다. 이제 그럼 더 이상 이 작가의 새로운 책은 볼 수 없다는 말인가...
2년 전에 나온 <바람의 그림자> 합본은 작가 사후에 나온 책이었던 모양이다. 모든 책에는 그런 사연이 있는 법이다.
사폰 작가는 생전에 용가리와 치즈케익을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한국 독자들에게 직접 이렇게 용가리를 그려 주셨구나. 말미의 “해삐 리딩”이 왜 이렇게 마음에 와 닿던지.

안개 3부작의 1탄인 <안개의 왕자>는 사폰 작가의 소설 데뷔작이라고 한다. 영하 3.2의 맹추위를 뚫고 중고책방에 들러서 모두 네 권의 사폰 책들을 업어왔다. 원래 다니엘 켈만의 30년 전쟁을 다룬 책 <틸>이 목적이었는데 말이지.
이제 남은 사냥감은 절판돤 <한밤의 궁전>, <천사의 게임> 2권 그리고 <영혼의 미로> 2권이면 되나.
아직 <바람의 그림자>도 다 못 읽었는데, <안개의 왕자>를 슬쩍 집어 들고 싶은 그런 마음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