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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연상호 지음 / 세미콜론 / 2018년 1월
평점 :
간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지난주에 너튜브에서 <장진호 전투>에 대한 콘텐츠를 보고 나서 좀 더 깊숙하게 알고 싶어서 책을 빌리러 갔다가 그냥 그래픽노블을 검색해 봤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이란 책이 뜨더라. 며칠 전에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이 개봉돼서 다시 연상호 감독들의 작품이 논의되던데... 타이밍이 죽인다.
서사의 전면에 나서는 동환의 아버지는 앞을 보시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어느 방송국에서 비록 시각장애인이지만 어엿하게 성공한 아버지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에 있다. 방송국에서는 그런 대중에게 호소력 있을 법한 이야기들에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이들에게 아낌 없이 찬사를 보낼 준비라도 되어 있다는 듯 말이다.
동환의 어머니는 30년 전에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니까 동환의 아버지는 시각장애에 아내도 없이 동환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이 정도 서사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동환의 어머니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백골 상태로. 졸지에 상주가 된 동환은 어머니의 상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우선 어머니의 형제들이라는 인간들이 나타나, 돌아가신 동환의 할머니가 딸 형제들에게 유산을 남겼지만 이제 고인이 된 동환의 어머니 혹은 혈육과 재산을 나눌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밝힌다.
한편, 어머니의 죽음이 타살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제작 중이던 피디에게 이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을 것이다. 동환은 피디의 그런 계획을 알아차리지만 별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되는 과거의 플래시백은 어려서부터 추녀라던 어머니의 기구한 삶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들기 시작한다.
연상호 감독의 프로젝트 <얼굴>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외모라는 자산에 집착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외모 지상주의는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성형업은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된 지 오래다. 남들만큼 아니 남들 이상으로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천착한 사업이 나는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콘텐츠 업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마 시작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겠지만, 보다 자극적인 서사를 원하는 이들에게 사건사고로 점철된 동환이네 집에 대한 스토리는 이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을 정도가 아니었을까. 오늘날 미디어의 순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대신 어머니의 사진이 등장하는 엔딩은 예상대로 진행되어 좀 밋밋하다고나 할까. 문득 넷플릭스가 <얼굴>도 혹시 드라마로 제작하지나 않을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