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TV에서 이런 놀라운 퀄의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국방TV의 새로운 발견이라고나 할까.

 

가장 먼저 다섯 명의 출연진 섭외가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무기 전문가로 그전부터 내공을 보여준 샤를 씨를 필두로 해서, 진행을 MC(, 이름을 모르겠다), 과학 담당 교수님, 역사적 관점에서 밸런스를 맞춰주는 원장님 그리고 현역 군인으로 브리핑의 달인인 심소령님까지 아주 균형이 잘 짜인 팀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화에서는 일본이 설정한 절대국방선이 무너지는 계기가 된 사이판 전투를 중심으로 다룬다. 그전에 필리핀 세부 상공에서 일본 해군의 핵심 요인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발생한 을호 사건을 잠시 살펴 보고 넘어간다. 해군 사령장관은 전사, 그리고 해군인 2인자 참모장인 후쿠도메 시게루 소장은 생존했으나 필리핀 현지 게릴라의 포로가 되었다. 일본군이 필리핀 게릴라 부대를 압박해서 결국 포로 교환 방식으로 본국으로 압송되는 처지가 된다.

 

이미 미군 측에서는 일본의 신Z작전의 개요를 다룬 기밀서류를 입수해서 번역 작업까지 마치고, 원본 서류를 일본군이 수거할 수 있게 했다. 일본군은 미드웨이 때도 그랬지만 전쟁 내내 미군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훗날 연함합대 사령장관이 되는 오자와 지사부로는 암호의 누출을 예상했으나, 조사를 맡은 이들의 철저한 부정으로 개선에는 실패했다.

 

다음은 사이판이다. 매리아나 제도에 위치한 사이판은 일본의 절대 국방선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그런 요지였다. 이제 실전에 배치된 B-29 슈퍼포트리스로 일본 본토 폭격도 가능했고, 나중에는 미군 잠수함 기지가 설치되어 일본군을 철저하게 요격하게 된다.

 

미군은 3개 사단을 동원하고, 상륙전 이틀 동안 1,100여대의 함재기를 동원해서 사이판을 폭격하고 제공권을 장악했다. 일본도 만주 관동군에서 차출해온 제9전차연대 소속 50여대의 경전차를 동원해서 미군에 야습을 감행했다. 하지만 미군 보병대가 지니고 있던 2.3인치 M1A1 바주카포로 일본군 전차대를 전멸하는데 성공했다. 유럽 전장에서는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바주카가 일본군의 경전차에는 효력이 그만이었던 모양이다.

 

배열의 순서가 뒤죽박죽인데 이미 1944년 초반, 일본이 전행을 개시하고 수행하는데 우두머리였던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는 미국의 압도적 물량생산 앞에 패전은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1994년 일본은 세 방향의 작전을 고안했다. 하나는 인도의 임팔작전으로 중국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두 번째는 대륙통타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전선의 고착된 상황을 타개한다. 마지막인 신Z작전으로 미군에 대한 버릴 수 없는 저감요격작전으로 함대결전으로 타격을 주고, 미국은 종전 협상으로 끌어낸다.

 

역사가 보여주듯 세 가지 작전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역전다방>에서는 후쿠도메 일행의 추락 이후 아호작전으로 명명된 작전을 실행하기로 결정한다.

 

사이판 전투에서 압도적인 미군의 공격 앞에 일본군은 그야말로 추풍낙엽 같은 신세였다. 중과부적이었지만, 사이판에서 일본군은 격렬한 저항을 보여주었다. 615일 상륙전을 개시한 미군은 한 달여 만인 79일 사이판 점령을 선언했다. 사이판 전투에서 일본군은 44,000여명이 전사했고 2,300여명의 포로가 발생했다. 역전다방 팀은 1% 정도였던 포로들의 수가 사이판 전투를 기점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원장님은 전쟁 후반기로 가면서 일본군 구성이 달라졌던 점도 지적한다. 가령 예를 들어, 사이판 포로들의 90%가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19444월부터 조선에서 징병제가 실시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알려준다.

 

민간인도 미군에게 항복하면 모두 학살당한다는 일본군의 허무맹랑한 선전에 속아 오천여명에 달하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이른바 만세 절벽에서 죽었다. 지금은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는 전언이 씁쓸했다.

 

사이판이 미군의 손에 넘어간 뒤, 일본군은 새로운 도서 방어 요체를 도입한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군의 기본 도서 방어 정책은 적군이 해안에 상륙할 때 요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타라와와 사이판 등의 경험을 통해 일본군은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한 미군을 상대로 상륙하는 부대를 공격할 수 없다는 전력의 차이를 절감했다. 이전의 방어 교리를 폐기하고, 미군의 상륙이 예상되는 도서를 요새화하고 종심방어를 강화한다는 새로운 교리를 채택했다.

 

나중에 이오지마에서 미군을 상대하게 된 구리바야이 다다미치 중장은 이런 교리를 바탕으로 미군에게 막심한 피해를 안겼다. 하지만 모든 지휘관들이 기존의 교리 대신 새로운 교리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문제점과 동시에 태평양의 중요한 섬들을 요새화 하기에는 필요한 건축자재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음은 일본 해군이 야심차게 준비한 필리핀해 해전이다. 쓰시마 해전 이래, 일본 해군은 마치 하나의 신조처럼 떠받들여져온 점감요격작전과 함대결전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에도 오자와 지사부로를 새롭게 재편된 제1기동함대 사령장관으로 임명하고 그야말로 가용한 모든 해군의 자원을 동원해서 대결전에 나선다.

 

미군 항모 15, 전함 7척 그리고 항공기 956대에 일본군은 신예 항모 다이호를 필두로 한 9척 항모, 전함 5척 그리고 750여대의 항공기를 동원했다. 일본 해군의 엘리트 코스라고 부를 만한 수뢰전대 소속으로 이미 1930년대 항모전단이 새로운 해전의 중심이 될 거라는 점을 예견한 오자와 지사부로는 진주만 공습 대신, 남견함대의 일원으로 태평양전쟁 초기 말라야 해역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리펄스와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격침한 19411210일 전투의 주역이 바로 오자와 지사부로였다.

 

새로운 해군 지휘관은 정찰을 강화해서 드디어 조기에 미군 함대를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아웃레인지 전법으로 주력 미군기 F6F 헬캣보다 항속거리가 긴 제로기를 동원해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보자는 기운이 넘쳐 흘렀다. 공격기 1대가 발진했을 당시, 항모 전단에서는 진주만 공습 당시의 대성공을 기대했다나 어쨌다나.

 

개인적 감상으로는 그동안 만난 책이나 콘텐츠에서는 보통 개별 전투의 디테일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번 역전다방에서는 좀 더 다른 차원의 대국적인 전략에 치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흥미로운 개별 전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영웅서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예 배제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전에 가장 중요한 정보의 중요성도 실제 전투 못지않게 다루고 있다. 그게 바로 이번 역전다방 시리즈가 다른 콘텐츠들과 다른 변별점을 가지게 만드는 요소들이 아닌가 싶다.

 

여전히 개인적으로 나는 뉴기니와 필리핀 탈환이라는 비용과 인명 그리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전 루트보다 어니스트 킹의 한방작전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중부 태평양을 가로 질러 대만까지 도달해서 남방으로부터 일본으로 유입되는 생명선을 끊어, 본토를 고갈시키는 작전이 맥아더의 소모적인 작전보다 뛰어나지 않은가 말이다. 본토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방에 흩어진 일본군이 무슨 수로 전쟁을 지속할 수 있단 말인가.

 

다음 에피소드에서 일본 제국 해군의 종말을 가져온 필리핀해 전투의 마지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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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11-11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국방티비 구독해야지 하고 깜빡했어요. 방금 구독하고 왔습니다.
저도 요즘 2차대전 다룬 영화 찾아보고 있는데요, 어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봤네요. 이오지마섬에 새로 부임한 장군(와타나베 켄)이 해안공격대신 땅굴파서 요새로 만든 후 미군 상륙 기다리더라구요. 미군에 피해를 줬지만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명예가 뭔지도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린일본병사들 눈빛이 잊히질 않네요.
이오지마전투 미국입장에서 다룬 아버지의 깃발도 같이 보면 좋을 듯 해서 조만간 보려구요.

얄라알라 2021-11-12 00:11   좋아요 2 | URL
˝국방˝이라는 단어 어감이 무거웠는데, 국방TV 컨텐츠가 대중에게도 쉽게 소화될 수 잇나봐요. 강추하시니 머릿 속 서랍에 일단 쏘옥!

레삭매냐 2021-11-11 2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오지마 방어군 사령관이었던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중장은 미
국의 실력을 잘 아는 지미파였습
니다.

이오지마가 있는 오카사와라 군
도는 희한하게도 도쿄도 소속이
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오지마
가 미군의 손에 떨어지면 바로
도쿄가 공습권에 들어간다는 생
각에 더 처절하게 싸웠다고 하
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사이판 결전으로 더 이상 해안
방어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
닫게 된 일본 장군 중에서 가장
실전에 잘 응용한 지휘관이
바로 구리바야시였습니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미군 피해
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총 인
원 11만명이 동원되어 2만
7천명의 전상자가 발생했다
고 하네요.

coolcat329 2021-11-11 23:32   좋아요 2 | URL
네 구리바야시 장군 참 다른 일본 군인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병사들 자살도 못하게 막고 한명이라도 살아 싸우도록 독려하는게 인상깊었습니다.
이오지마, 오키나와...아휴 지금도 고통 속에서 죽어간 양측 군인들 유령이 떠돌아 다닐거 같아요...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