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 동안에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순응주의자>를 기대했건만...
지나가 버린 일은 잊자. 대신 영화를 봤고, 그 다음에는 <경멸>을 읽고 나서 장정해둔 <권태>가 생각났다. 그게 벌써 지난 3월이었던 것 같은데...
왠지 35세의 부잣집 도련님 디노의 행태가 마뜩치 않았던 모양이다. 디노의 어머니는 준갑부에 해당하시는 분으로 속물근성으로 똘똘 뭉친 투기꾼으로 묘사된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의 입을 빌어.
여튼 디노는 실패한 화가로 지난 10년 동안, 그림을 그린답시고 떠나 있다가 안락하고 무엇보다 돈이 화수분처럼 솟아오르는 어머니의 집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자신의 생일날 어머니의 집을 찾아온 디노는 전직 가정교사 출신 가정부인 리타와 불장난에 가까운... 예상 외로 아무 일이 없었다.
디노는 누가 봐도 성서에 등장하는 ‘돌아온 탕자’다. 투기꾼 어머니는 그런 돌아온 탕자를 아낌없이 환영하고 생일선물로 최신식 승용차를 선물한다. 어머니가 후원해 주는 돈 덕분에 권태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인물인 디노는 자신의 어머니의 선물을 받으면 영영 그녀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돈 알레르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벌이 재주가 없는 그가 어머니의 돈을 마다할 이유는 1도 없다. 이런 뻔뻔한 녀석 같으니라구.
자 이즘에서 주인공 디노의 가슴에 파문을 일게 만들 그런 팜므 파탈이 등장할 차례가 아닌가. 그녀의 이름은 체칠리아 리날디. 그는 옆집의 노화가 발레스트리에리네 집을 드나들던 그녀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노화가는 17세 체칠리아의 일조 덕분에 65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게 되었다. 가만 보면 알베르토 모라비아 씨는 참 짖궂다는 생각이다.
발레스트리에리의 장례를 치른 날, 두 남녀는 마침내 조우하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그런 격정적 사랑 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보니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사진의 왼편은 남주 디노고, 소녀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매력을 지녔다고 작가가 묘사한 여성이 바로 오른편이 체칠리아인가. 남자의 이미지가 블루어 처리된 것을 보면, 권태에 시달리는 룸펜 인텔리겐차의 희미한 위상을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체칠리아와 대면하게 된 디노는 거의 심문에 가까울 정도로 발레스트리에리와 체칠리아 사이를 파고든다. 근 2년 동안이나 계속된 그들의 관계는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노화가는 죽었고, 체칠리아는 디노라는 새로운 그리고 더 젊은 연인을 찾게 된 걸까. 어머니의 부가 선사한 권태에 시달리던 디노는 체칠리아라는 권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은 셈인가.
아직 모두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순응주의자>가 정치와 에로티시즘의 결합이라면 <권태>는 전자를 배제한 순수한 에로티시즘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싸이러스 브로에 따르면 <권태>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순응주의자>와는 달리 더 오래 전에 만들어지고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니라 그런지 수배할 수가 없었다.
돈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돈을 거부하지 않는 디노의 모습은 철저하게 위선적이다. 돌아온 탕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혐오해 마지 않는 속물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한다. 잔혹한 사디즘 극을 연출한 날, 체칠리아와 이별을 결심한 돌아온 탕자는 다시 어머니에게 돌아가 돈을 요구한다. 어린 연인에게 그럴싸한 선물을 하기 위해서다. 이 무능력하고 실패한 화가는 이별을 위한 선물조차 자신의 힘으로 마련할 수가 없는 그런 위인인 것이다.
40% 정도 읽었다. <순응주의자>가 도착하기 전에 마저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