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 강화도조약 Ominous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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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파리코뮌이다. 아무리 굽시니스트 작가가 한중일 근대사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파리코민 같은 세계사적 사건을 다루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며칠 전에 만난 <라 벨르 에뽀끄>에서도 파리코뮌을 만나서인지 좀 더 수월하게 이해가 되었다.

 

연결점은 일본 요코하마를 출발해서 구미 각국을 시찰하고, 기존의 조약을 개정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출발한 이와쿠라 사절단의 활동이다. 메이지 정부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이와쿠라 도모미를 비롯한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포함된 사절단은 미국을 필두로 해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당시 보불전쟁에서 승리해서 절정을 달리고 있던 프로이센 등지를 방문했다.

 

1873년 프로이센을 방문한 이와쿠라 사절단은 제국총리 비스마르크에게 조언을 듣는다. 조약 개정에 실패하고 낙심한 사절단에게 우선 부국강병책으로 국력을 기르라는 철혈재상의 말은 그야말로 복음이었다. 프로이센이 보불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프랑스식 개혁방식을 따랐을 지도 모르겠지만 훗날 군국주의로 치닫게 되는 일본 군부는 프랑스 대신 프로이센식 군제개혁을 추종하게 됐다.

 

한편, 일본에 남아 유수 정부의 총지휘자였던 조슈 번사 사이고 다카모리는 폐번치현 이래 사법 개혁, 학제 공표와 종교 정책 같은 굵직굵직한 일단의 개혁들을 진행시켰다. 그보다 중요했던 진짜 개혁은 바로 지조 개정과 징병령이었다. 사이고가 주도하는 급진적 개혁에 농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사이고의 유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해서 주모자들을 처형하고 사법 처리했다. 하긴 수백 년에 걸친 구습을 어떻게 단박에 고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한홍구 교수님의 강의 영상을 보니, 일본의 개혁과 우리의 것이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메이지 유신에 나섰던 사무라이 지사들이 앞장서서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았다는 점이라고 한다. 조선의 의식 있는 선비들 역시 국가와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는 넘쳤지만, 끝까지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자기희생을 기반으로 해서 전자는 성공했고, 그렇지 못했던 후자는 실패했던 것이다.

 

개항을 요구하는 서계 접수를 차일피일 미루던 조선과의 마찰을 계기로 사이고 일파는 정한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구 각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목격하고 1873년 귀국한 삿초 이너서클의 핵심 멤버들은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사이고와 사가-도사번의 성급한 정한론 주장을 일축한다. 정한론 반대파들은 일왕을 등에 업고 정권의 한 축을 무너트리면서 사이고 일파를 실각시키게 되는데 이를 메이지 6(1873)의 정변이라고 한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도한 급진적 조선출병의 배후는 막부 말기였던 1861년에 벌어진 러시아의 대마도 점거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과 전세계적인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던 러시아는 대마도에서 부동항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6개월 정도 대마도를 점거했던 러시아는 영국의 중재로 쓰시마에서 물러났다.

 

조선과의 무역에 치중하던 쓰시마 후추번은 조선의 지속적인 쇄국정책과 왜관을 통한 무역 퇴조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적 사회개혁과 특권 철폐로 불만이 폭증한 사무라이들을 달래기 위해 요시다 쇼인 일파는 외부침략을 감행해서 내부의 위기를 타개하자는 정한론을 들고 나왔다. 급진파나 온건파 모두 정한론에는 찬성이었지만, 시기와 방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막부 말기, 토막파와 좌막파의 내전에서 삿초동맹 편에 서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던 사가번은 막부 타도에 앞장섰던 조슈번과 사쓰마번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지도 못하고, 각종 개혁으로 보수 사족들의 불만이 폭등하면서 이에 편승한 사가번은 결국 이토 신페이와 시마 요시타케를 필두로 해서 1874년 반란을 일으켰다. 사가반군은 반란 초기, 사가성을 장악하면서 기세를 올리기도 하지만 신식무기로 무장한 정부군이 본격적인 진압에 나서면서 반란은 싱겁게 끝이나 버렸다. 이 장의 말미에 사가 번사 무다구치 모리쓰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 자가 혹시 비밀독립군 렌야의 아버지가 아닌가 추정해 본다. 인터넷으로 무다구치 렌야의 아버지를 검색해 보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18745월에 있었던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생 사이고 쥬도의 주도 아래 진행된 대만 출병은 제국주의 일본이 세계 무대에 등장한 첫 사건이었다.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 일본이 대만에 출병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표착한 류쿠 사람들이 대만에 사는 파이완 족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출병한 일본군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말라리아와 풍토병의 창궐 그리고 더위에 지친 일본군은 북양대신 이홍장과의 협상을 통해 적당한 선에서 철병을 결정했다. 출병에 들어간 비용보다 배상조로 받아낸 금액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그야말로 밑지는 장사였다.

 

다음 무대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노리는 조선이었다. 그동안 대원군 이하응이 고종을 대신해서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제 성년이 되어 제대로 된 군주 노릇하기를 원했던 고종은 아버지의 존재가 거추장스러워졌다. 그런 연유로 해서 고종은 재야의 실력자이자 안티대원군의 수장이었던 유림 최익현의 계유상소를 빌미로 대원군 일파를 실각시키고 자신이 친정에 나섰다. 대원군은 기존의 권력을 행사하던 외척 세력들과 유림 일파를 혁파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지만, 대원군이 적폐로 규정했던 세력과 결탁한 고종의 친위 쿠데타로 모든 것이 무산되고 조선판 앙지앵 레짐 시대로 복귀하게 되었다.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대국 청나라도 일본의 대만 출병을 계기로 통수를 제대로 때린 일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서태후의 치맛바람에 휩싸여 허수아비 노릇을 하던 동치제가 유흥에만 전념하다가 몹쓸 병에 걸려 19세의 나이에 후사 없이 죽었다. 서태후는 다시 한 번 수렴청정을 하기 위해 유력한 인척을 등용하는 대신, 네 살짜리 꼬마 광서제를 후계자로 삼았다. 서태후와 과부가 된 며느리 가순왕후 아로특씨가 벌이는 시월드 스토리도 흥미를 자아냈다.

 

서태후는 이홍장이나 좌종당 같은 상군 출신 한인 관료들을 중용했다. 한족 관리들을 경계하는 만주족 중신들의 우려와 달리 서태후는 이홍장 좌종당 콤비의 이익이 자신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각종 이권과 관직으로 그들을 통제할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서태후는 좌종당에게는 신강 위구르의 반란 진압을 명하고, 이홍장에게는 남양과 북양의 함대를 건설해서 일본 해군을 상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동안 조선의 강제 개국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일본은 운요 호 사건(18755)을 일으켜 강화도조약으로 은자의 나라 조선을 개국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상대로 전면전을 치를 충분한 실력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청나라가 신강 위구르 반란 진압과 해군력 미비로 적극적으로 조선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정한론의 깃발 아래 나름 치밀하게 준비해온 일본과 달리 무기력했던 조선 조정은 아무런 대책이나 검토 없이 덜컥 일본을 상대로 관세 주권도 포기해 버린 불평등조약을 체결해 버렸다. 시시각각 격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그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조선의 정치가들이 내린 최악의 결정이었다.

 

그 후 조선 조정에서는 곧바로 김기수를 수장으로 하는 수신사를 일본에 파견해서 일본의 실정을 파악하도록 했다. 일본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수신사 일행이 귀국하자마자, 메이지 정부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구마모토와 조슈에서 반란의 불길이 치솟은 것이었다. 아마 다음 화에서는 유신삼걸 중의 하나라는 사이고 다카모리가 자신이 설계한 메이지 신정부에 반기를 든 세이난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예정이다.

 

이렇게 다양한 동아시아 삼국의 이야기들을 325쪽에 압축해서 담아낸 굽시니스트 작가의 노고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앞으로 굽시니스트 작가는 1910년 경술국치까지의 역사를 다룰 전망이라고 하는데, 추가적으로 10권 정도가 소용될 전망이라고 한다. 10권 발행하는데 4년이 걸렸으니, 앞으로도 4년이 더 필요하려나 모르겠다. 작가와 출판사 모두 대단한 결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자리를 빌어 완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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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2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 재미있네요. 판다 중국에, 고양이 일본, 가장 쎈 호랑이는 우리나라 ^^

레삭매냐 2021-06-02 19:40   좋아요 2 | URL
굽시니스트 작가가 동양 삼국
의 특징을 잘 잡아낸 동물로
상징을 삼았지 싶습니다.

mini74 2021-06-02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정하는 만화책. 벌써 10권이 나왔나요? 8권까지 읽은 것 같은데 ㅎㅎ 저고 완간을 응원합니다 *^^*

레삭매냐 2021-06-04 10:11   좋아요 0 | URL
20권까지 가리라고는 몰랐네요.
대단한 기획이 아닐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