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읽은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가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 이런 건 구해서 바로 봐야 해!

 

요즘 에드거 모건 포스터 선생의 <인도로 가는 길>을 열심히 읽고 있어서 그런지 드라마로 만들어진 <화이트 타이거>가 왜 그렇게 재밌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면, 포스터 선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인도로 가는 길>을 두 달 전부터 틈틈이 시큰둥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데, 드디어 사건이 최고점에 달하면서 너무 재밌어져 버렸다. 아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나 그래. 식민 종주국 영국의 젠체하는 모습에 참 밥맛이 없었는데 정말 온갖 쑈를 해가면서 마하바르 동굴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선의로 출발한 여정이 억울하게 아델라 퀘스티드 양을 추행했다는 누명을 쓴 닥터 아지즈, 나라면 정말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판이었다. 암튼 그 사연에 얽힌 위선적인 영국인들과 자신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그들에게 대항하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이 완전 꿀잼이다.

 

다시 드라마 <화이트 타이거>로 돌아와서 주인공 발람 할와이는 뱅갈로르에서 아웃소싱 회사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다. 그런데 그는 현재 지명수배 중이다. 자신의 주인이었던 미스터 아쇽을 살해한 혐의로. 뜨앗!

 

첫 장면이 요즘 하루에 30만 명 이상의 코로나 환자들이 발생하면서 공공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 인도의 수도 델리에 있는 간디 선생의 조각상이다. 어때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과자쟁이 카스트에 속한 발람은 학교에서 빼어난 영어 실력을 보여주며 대성할 기미를 보여준다. 그렇다, 인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어 스펙이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 나중에 미국 유학파 미스터 아쇽이나 핑키 마담이 하는 영어는 정말 유창하게 들린다.

 

참 드라마의 초반은 인도의 밝은 빛을 조망해 준다. 난 아직 어두운 사이트까지는 못 보았다. 오늘 밤에 마저 볼 생각이다. 발람은 수탉장(the rooster coop)이야말로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가 창조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카스트라는 해괴망측한 계급 제도로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위계질서를 만들고, 그 안에 사람들을 가두는 것이다. 게다가 인디언 패밀리라는 시스템은 절대로 아래 계급의 사람들이 상층부 계급에게 반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 같은 시스템이다. 만약 계급 간의 하극상이 발생한다면, 지주들은 무력을 동원해서 가족을 몰살시키는 보복에 나선다.

 

드라마에서는 뒤로 손이 묶인 발람이 총살당하는 장면이 상상컷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때부터 비극이 잉태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할와이 패밀리의 지주이신 할머니는 어쨌든 발람의 등교를 막고 찻집에서 형 키샨처럼 일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때부터 발람은 수탉장에 갇혀 가족들을 위한 돈벌이에 나서야했다. 그런데 현재의 사업가 모습과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 발람은 수탉장에서 평생 살다가 릭샤 운전사였던 아버지처럼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한다.

 

, 그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강가에서 화장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이야말로 초반의 밝은 인도를 상징하는 가장 강렬한 시퀀스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례를 맡은 이들이 화장을 위한 장작을 쌓고, 아버지의 발이 뜨거운 불길에 사그러드는 장면은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 견주어 볼 때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놀라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카메라는 상당히 많이 보여준다.

 

발람은 족장에 해당하는 할머니에게 300루피를 뜯어 운전 강습을 받고 고향 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주 황새의 세컨드 운전사로 채용되기에 이른다.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고 미국유학파 미스터 아쇽은 발람에게 나름대로 인간적 대우를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의 형인 몽구스는 회초리로 가혹하게 발람을 체벌하고 폭언을 일삼는다. 하인들은 주인들에게 기어 오르지 못하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사회의 재화를 움켜잡은 이들의 천박한 주인근성의 발현이라고 해야 할까.

 

, 할 말이 많은데 벌써 밥시간이 되었부렀다. 일단 밥부터 먹고 나서 나머지는 다시...

아일 비 백.


=======================================================================================


사악한 과자쟁이 발람은 자신의 선임자가 황새 아저씨가 그렇게 싫어하는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선임자를 짤리게 만들고 결국 자신이 그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어쩌면 이 지점이 발람이 빛에서 어둠으로 들어가는 그런 계기가 된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가난한 인도 농민들을 착취하는 수탈의 알레고리의 하부의 우두머리 격인 황새 아저씨의 집에서 선거 벽보에서만 볼 수 있었던 위대한 사회주의자주 총리 아줌마를 만난다.

 

문제는 주 총리 아줌마가 노골적으로 황새 아저씨에게 뇌물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황새 아저씨가 뇌물 200만 루피가 너무 많다고 하니, 주 총리 아줌마는 격분해서 대번에 250만 루피를 내놓으라고 횡포를 부린다. 먹고 먹히는 정글 같은 인도 사회의 분위기를 이 장면에서 여실하게 볼 수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의 예언 대로 발람은 어쩔 수 없이 정글에서 살아 남기 위해 화이트 타이거로 변신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황새 아저씨는 보다 큰 권력에게 뇌물을 쓰기로 결정하고 몽구스와 미스터 아쇽을 델리에 파견한다. 물론 운전사는 이제 소위 큰물에서 놀게 될 발람이다. 미스터 아쇽과 핑키 마담은 계속해서 발람의 영혼을 자극한다. 더 이상 하인으로 삶에 집착하지 말고, 객체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주문인 것이다. 그런 자극이 어떤 후과를 가져오게 될 지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자.

 

핑키 마담에게 사타구니를 긁고 빤을 빨며, 지저분한 옷차림이라는 고유의 악습을 지적받은 발람은 드디어 각성에 나선다. 왜 자신의 아버지는 사타구니 긁는 게 나쁜 습관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을까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당장 시장에 나가 치약을 가서 그야말로 이빨에 피가 나도록 시원하게 양치질을 시전하기도 한다. 핑키 마담이 발람의 생활습관을 지적했다면, 미스터 아쇽은 미래의 사업가 발람에게 미래 인도에서 유망한 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해 주었다.

 

여기까지가 빛의 인도에 살던 발람 할와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핑키 마담의 생일 파티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점으로 발람은 어둠의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자냥 2021-05-06 11: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인도로 가는 길> 저는 포스터 작품 중에 가장 재미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그 관점에도 동의하기 어려울 거 같아서 아직 안 읽은 책인데, 재미지단 말씀이군요?! 조만간 읽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5-06 13:49   좋아요 3 | URL
포스터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인지라
다른 책과 비교를 해볼 수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저냥 읽었었는데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되더군요.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구해 놓은 영화도
볼 계획입니다. 아 그전에 먼저 <화이
트 타이거>부터 보구 나서요.

미미 2021-05-06 1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기존 인도 영화에다 넷플에서 새로 제작한 작품까지! 리뷰 읽어보니 두 작품 다 흥미진진해요!

레삭매냐 2021-05-06 13:51   좋아요 2 | URL
소설도 흥미진진했었는데,
드라마도 잘 만든 것 같습니다.

현실 세계의 인도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2018년부터 각색 작업을 해서
그런지 제법 완성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coolcat329 2021-05-06 1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반정도 보셨군요. 저는 초반 조금 봤습니다.ㅎㅎ
저는 앞으로 조니워커 블랙 보면 이 소설의 그 잊을 수 없는 장면 떠오를거같아요. 마침 집에 있는데 조만간 마셔야겠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5-06 13:52   좋아요 2 | URL
크하~ 오래전 인삼 뿌리에
꿀을 찍어 먹던 조워블의
추억이란 ... ...

영화 보기 전에 제가 썼던
리뷰를 다시 보기도 했답니다 :>

어제 밤에 보기 시작해서 그냥
달렸다가는 오늘 아침에 출근
하지 못할까봐서리... 아 참 보
면서 산 미구엘 비루 하나 깐 건
안비밀입니다.

바람돌이 2021-05-07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적에 영화 인도로 가는길을 참 힘겹게 봤는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ㅠ.ㅠ

레삭매냐 2021-05-07 09:20   좋아요 0 | URL
소설도 초반에는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거작 전문인 데이빗 린이
<라이언의 딸> 이후 무려 14년
만에 만든 영화라고 하네요...

러닝타임이 아주 ㅎㄷㄷ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