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며칠 전에 서울책보고 2주년 어쩌구 하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온라인으로도 굳이 서울책보고에 방문하지 않고도 책을 살 수 있다나. 회원 가입 절차가 귀찮기도 하거니와... 암튼 책을 몇 권 검색해 보았다. 나의 사냥감인 존 버저를 필두로 해서 내가 중고책으로 사겠노라고 마음 먹은 몇 권의 책들을.

 

그러다 대박이 터졌다. 그건 바로 레바논계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의 <사마르칸드>였다. 책의 상태 따위는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동네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지 않은 아민 말루프의 책이라는 점이다. 당장 결제 방법을 찾는다. 가격도 매우 착하다. 단돈 2,000원이라니. 아마 램프의 요정 배송비가 2,000원이라면 고민했겠지만 지금 그런 게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배송비는 참고로 3,000원이었다. 그러니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지.

 

그리고 책이 어제 도착했다. 다음주에 올 줄 알았는데 이게 머선 129!!! 암튼 읽던 책을 다 때려 치우고, 희생자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아리엘 도르프만의 <아메리카의 망명자>였다, 말루프 선생의 <사마르칸드> 읽기에 나섰다.

 

아니 도대체 이렇게 좋은 책들은 왜 다 절판되는 걸까. 저자는 독자를 11세기 페르시아로 인도한다. , 그전에 화자인 미국인 벤자민 O. 르사즈라는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위대한 책 하나가 1912년 타이태닉호와 함께 대서양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아리송한 말을 남긴 채 말이다.

 

소설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페르시아 출신의 위대한 시인이자 과학자, 점성가이기도 했던 오마르 하이얌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남긴 루바이야트는 지금도 숱한 문학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하던가. 오늘 도서관에 간 김에 2019년에 나온 페르시아어 원어 번역본이 있나 검색해 보았으나 없었다. 하도 많은 시들이 첨가되어 있어서 오늘날에는 진위가 다 의심된다고 했던가.

 

셀주크 투르크 궁정의 피튀기는 권력투쟁에서 고고한 우리의 주인공이자 위대한 시인/학자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데 성공한다. 그의 친구들은 거의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알프 아르슬란에 이은 세 번째 셀주크 술탄이었던 말리크 샤는 물론이고 당대 최고의 재상이자 권력자였던 니잠 엘물크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했던 알라무트 산사나이 하산 사바흐가 파견한 자객에 의해 죽었다.

 

십자군 전쟁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던 산사람들 아사신 일파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지금은 우즈벡의 중요 도시라는 사마르칸드가 주는 매력도 소설을 읽는데 삼삼한 재미를 제공한다. 아 문득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여행은 무슨. 근데 오늘 날씨는 기가 막힐 정도로 좋구나.

 

그렇게 사마르칸드의 절반 정도를 읽었다. 이제 19세기 후반을 사는 남자 벤자민 O. 르사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도 오마르 하이얌의 시대 못지 않게 그런 격동의 시대였다. 보불전쟁과 파리코뮌 그리고 서구 열가의 제국주의가 전세계를 집어 삼킬 그런 기세다. 아마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는 운명적으로 주인공 르사즈를 동방으로 인도할 모양이다.

 

4월에는 아민 말루프를 읽어야 하나. 또다른 절판책 <마니>도 지금 주문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 중이다. <사람 잡는 정체성>도 구해 놓았다. 그래도 왠지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소설에 가까운 <마니>가 더 땡긴다. 그리고 내가 아민 말루프 작가를 처음으로 만난 건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 처음이었구나. 그 시절에는 리뷰를 쓰지 않아서 감상이 어떤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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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04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검색해보니 판매자배송중고 가격이 최저 42000원이예요! 완전 득템하셨네요!👍

레삭매냐 2021-04-04 18:54   좋아요 3 | URL
넘나 재밌고 흥미진진하여
우리 북플 동지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책이지만, 절판이라는 운명에
처해 있어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비슷한 운명
인지라... 전 아무래도 <마니>를 질
러야지 싶습니다.

바람돌이 2021-04-04 2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니는 마니교의 그 마니인가요? 아 갑자기 궁금해지는....
레삭매냐님은 이런 책은 또 어떻게 다 아신대요? 아 정말 고수가 너무 많은 알라딘!
오늘도 자괴감을 느끼며 시무룩 ㅠ.ㅠ

coolcat329 2021-04-04 21:31   좋아요 1 | URL
네 제가 검색해보니 그 마니가 맞는거 같습니다. 오늘 올려주신 바람돌이님 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저는 제 얘기 그렇게 못써요 ㅎㅎ 저도 자괴감이 ㅠㅜ

레삭매냐 2021-04-05 00:21   좋아요 1 | URL
넵, 아래 쿨캣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고 마니가 맞습니다. 아직 영접은 하지
못한 관계로 디테일은...

아민 말루프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
원이자, 공쿠르상에 빛나는 그런 대가
라지요. 국내에 그의 저작들이 널리
소개가 되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레옹 아프리카누스>는 정말 한 번
만나 보고 싶은 전설의 책이네요.

coolcat329 2021-04-04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이 책 기대도 안했는데 만나서 진짜 놀라고 좋으셨겠어요!축하드립니다 🎉

레삭매냐 2021-04-05 00:22   좋아요 1 | URL
말로만 듣던 책을 실제로 영접해 보니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운빨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