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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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514일 이천년간 자기 조상의 땅을 떠나 유랑하던 유대 민족이 팔레스타인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그들에게는 축복이었겠지만, 오랜 시간 그 땅에 살던 아랍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재앙(al-Nakba)이었다. 히브리인들의 디아스포라가 끝나는 극적인 순간이 다른 민족에게는 재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73년이 지나는 오늘까지 팔레스타인은 젖과 꿀이 흐르는 평화의 땅이 아니라 분노와 증오 그리고 유혈의 땅으로 변했다.

 

원래 팔레스타인은 유엔 결의에 따라 유대인과 아랍인 두 개의 국가가 건설될 예정이었다. 이런 타협은 두 민족 모두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고, 결국 전쟁이라는 가장 폭력적 방식으로 해결점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밀리면 그야말로 바다에 빠져 모두 죽는다는 사생결단의 의지로 똘똘 뭉친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놀라운 승리였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핍박받던 민족에서 이제는 아랍인들이 우려한 대로 거대한 파괴자가 등장했다.

 

거장 아모스 오즈의 <유다>(원제는 <유다복음서>라고 한다)는 바로 그런 중동의 비극이 잉태된 시기로부터 대략 10년 정도 지난 예루살렘을 시공간적 무대로 시작한다. 1959년에서 1960년이 되는 시기라고 저자는 밝혔던가. 우리의 주인공은 25세 개혁적 사회주의자 슈무엘 아쉬다. 청년 집안이 소송으로 파산하게 되면서 비교적 유복하게 지내던 청년은 졸지에 살 곳도 그리고 학업도 중단해야 하는 그런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애인도 자신과 결별하고 수문학자와 결혼을 발표한다. 보통 안 좋은 일들은 그렇게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법이지.

 

역사학도이자 비교종교학을 전공하던 청년 슈무엘은 대학에서 <유대인의 눈에 비친 예수>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류 구원이라는 지상과제를 지니고 인자로 세상에 온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모함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배신의 역할을 떠맡은 자가 바로 가룟 유다였다. 신을 죽이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유다는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 그런 가공할 범죄를 저지른 유대인들은 핍박의 대상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아직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랍비로 인정할 따름이다. 히브리인들은 그를 그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금기시한다고 알려졌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배신자 유다의 죄를 왜 죄 없는 다른 히브리인들이 짊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연좌제 적용이 아닌가.

 

다시 현재 슈무엘 아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오갈데가 없어진 슈무엘은 학업을 중단하고 어느 광고지를 보고 기숙하면서 말동무를 원하다는 구인에 응모한다. 칠십대 장애인 노인 게르숌 발드의 오후를 책임지면 숙식과 약간의 보수를 지급한다는 제안은 네게브 사막에 건설 중인 새로운 정착촌 경비라도 나설 용의가 있던 슈무엘에게 축복이었다. 그리고 게르숌 발드와 같은 집에서 살던 미스터리한 여성 아탈리야에게 매력을 느끼는 슈무엘. 게르숌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검은 과부에게 이끌리지 말라는 경고장을 날린다. 경고는 경고일 뿐, 계속해서 아탈리야에게 끌리는 마음을 청년은 다스리지 못한다. 너무 클리셰이였던가. 도대체 이들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대가 아모스 오즈는 이런 긴장감 속에 파묻혀 있던 진실들을 하나둘씩 꺼내든다. 마치 상실된 강호의 비급을 알려 주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이다. 그는 이미 1950년에 죽은 사람이다. 이스라엘 건국에 큰 공헌을 한 다비드 벤구리온이 주창한 시오니즘 광기에 맞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이전처럼 팔레스타인 땅에서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는 이상주의를 설파했다. 아브라바넬은 유대민족에게는 그야말로 유다에 버금가는 그런 배신자 같은 존재다. 아탈리야는 그런 아브라바넬의 딸이고, 게르숌 발드의 아들 수학자 미카의 미망인이다. 미카 발드는 194842, 아랍민병대와의 교전에서 사로 잡혀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당시는 그렇게 상호간에 분노와 증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비이성적인 폭력이 판을 치던 그런 시절이었다.

 

독립 전쟁 당시, 당시 고작 13살 정도였던 슈무엘은 비극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보니 자신의 조부로 라트비아 출신 유대인으로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안테크도 같은 히브리인들에게 영국의 이중첩자로 몰려 살해당하지 않았던가. 사실 안테는 위조문서 전문가로 나치 독일에 저항하는 영국군에 협력했을 뿐인데, 종전 후 점증하는 반영주의 분위기에 그만 희생당하고 말았다. 가룟 유다로부터 시작된 배신의 DNA는 그렇게 사방에서 발견된다.

 

슈무엘의 연구와 사유에 따르면 부유한 이스카리옷 출신의 유다가 고작 은 30세겔에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군에 넘겼다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성전에서 환전상들에게 채찍질한 사건으로 신원이 알려진 나사렛 예수를 유다가 지명한 것도 어불성설이란다. 허구일 지도 모르겠지만, 바리사이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기 위해 가룟 유다를 고용했다고 한다. 문제는 예수를 따르던 유다가 그만 진짜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슈무엘은 한 발 더 나아가, 유다가 첫 번째 기독교인이자 마지막 그리고 최후의 기독도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다의 배신이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유다복음서>의 이단적 주장에 편승한다.

 

아모스 오즈 작가 역시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처럼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주장한 꿈꾸는 사람이었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히브리인과 아랍인이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팔레스타인에서 그런 갈등을 빚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상호 파멸적인 투쟁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한다.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오랜 디아스포라와 차별 그리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히브리 사람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73년 전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다. 거대한 파괴자가 된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추방하기 위해 비무장 시민들에게 압도적 무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아모스 오즈 작가는 벤구리온 이래 유대사회를 지배해온 광기 어린 유대민족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온 광기에 대해 아모스 오즈 같은 소수의 꿈꾸는 이들이 펜으로 저항에 나섰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지 않을까.

 

그동안 아모스 오즈 작가의 책을 한 번 읽어야지 했는데, 2021년 사순절 기간에 그의 마지막 작품인 <유다>를 만났다. 방대한 양에 달하는 주석으로 책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을 다 넘긴 뒤에 느낀 성취감은 기대이상이었다. 이스라엘 독립 과정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책읽기를 멈추고 막연하게 알고만 있던 현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공부도 했다. 모쪼록 조국에서 타민족과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다가 이단아로 몰린 노대가의 이상이 현실화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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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02 16:4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최창모님 번역이네요
예전에 아모스 오즈 민음사에서 출간한 작품 오타가 많아서 읽다가 덮었었는데
현대 문학은 표지도 깔끔하고 편집도 잘된것 같네요
매냐님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서 한권뚝 딱!

레삭매냐 2021-04-02 17:55   좋아요 2 | URL
램프의 요정을 휘리릭 돌려 보니
예상 외로 아모스 오즈 작가의
책들이 많이 없네요. 나온 책들도
많이 절판되었구요.

무언가 알고자 하는 부분을 자극
한다는 점에서 알찬 독서의 시간들
이었습니다.

원더북 2021-04-02 1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 지금 이 책 읽고 있는 중인데^^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이후로 레삭매냐임이랑 뭔가 통하는 듯 ㅎㅎ 저도 아모스 오즈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에요. 집에 몇 권 있지만 읽을 계기가 없어서 소장만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작품부터 거슬러 올라가게 생겼어요. 인상 깊게 읽으셨다는 말씀듣고 저도 완독에 박차를 가해 봅니다~

레삭매냐 2021-04-02 19:05   좋아요 1 | URL
도중에 이 책 저 책 집적거리다가
12일이나 걸려서 읽었네요...

이중 나선(double helix) 구조라는
게 장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기운내셔서 완독하시길 응원합니다!!!

붕붕툐툐 2021-04-02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학구적으로 공부하며 읽으시는 레삭메냐님 대박! 사순절에 어울리는 책을 읽으셨네용~👍

레삭매냐 2021-04-03 10:58   좋아요 0 | URL
제가 찾아 보니 블로그 글이 너튜브 보다
훨씬 낫더군요.

역시 저는 문제적, 아니 문자적 인간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