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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 새를 사랑한 남자 -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ㅣ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10
파비앵 그롤로 & 제레미 루아예 지음, 이희정 옮김, 박병권 감수 / 푸른지식 / 2017년 7월
평점 :
리뷰 제목에 ‘미친’을 넣었다면 아마도 부정적인 의미가 아닐까. 19세기 미국 전역을 돌며, 북미 대륙에 사는 400여종에 달하는 거의 모든 새들을 그린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존 제임스 오듀본(1785~1851). 아이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그는 나폴레옹 군대의 징집을 피해 신대륙으로 망명했던 것 같다. 원래 이름은 장 자크였다고 하지. 존 제임스는 그러니까, 미국식 이름인 셈이다. 그래픽 노블에서 아내 루시는 그를 ‘라포레’라고 부른다.
장 자크가 신생국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곳은 새들의 천국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리라. 아직 개발에 의한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새들이 살아온 터전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곧 대대적인 서부 개척 시대를 맞이하면서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이 훼손되고 생태계가 교란되면서 그곳에 살던 동물들 역시 멸종되거나 서식지를 잃게 되었다.
증기 제재소에 투자했다는 장 자크는 처음부터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새들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사랑하는 아내 루시와 자식들마저 내팽개치고 장 자크는 자연 상태에서 살아 숨쉬는 새들을 포획하고, 그리기 위해 켄터키를 떠나 미시시피와 미주리 일대를 여행한다.
어디선가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하지 말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19세기만 하더라도 자연보호와 동식물 보존은 그야말로 꿈곁 같은 소리였나 보다. 장 자크는 자신이 목표물인 새들을 그리고 관찰하기 위해 살상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사냥은 요즘으로 치자면 자전거 타기나 탁구 혹은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여가활동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수습생인 조지프와 현지인 가이드 쇼건을 앞세운 장 자크는 미지의 세계 탐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폭풍우를 만나 귀중한 그림을 잃을 뻔 하기도 하고, 향토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평생의 꿈인 새 관찰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자신이 그린 새 그림을 더 귀중하게 여겼는 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구사하겠다는 일념 아래, 푸른 어치를 해부하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리려는 노력에 쇼건은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한 때 자신의 동지였던 알렉산더 윌슨(1766~1813)과의 경쟁 구도도 흥미롭다. 윌슨의 <미국의 조류> 때문에 박물관 관료들은 더 이상 오듀본의 책에 투자할 마음이 없었다. 그의 그림들이 예술적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자연주의적이 아니라고 이유로 출간을 거절한다.
결국 자신의 두 번째 조국이었던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오듀본은 시선을 구대륙으로 옮긴다. 영국에서는 자신이 그린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을 제대로 출판할 수 있게 된 오듀본은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한다. 자고로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한 성경의 구절이 연상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국의 새들>(국내에서는 <북미의 새>(The Birds of America:1827~1839)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은 희귀본으로 지금은 권당 100억에 육박하는 그런 진귀한 책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굳이 반 고흐의 케이스를 예로 들 것도 없으리라. 아, 영국에서 오듀본은 어느 젊은이를 만나 자연으로 가 직접 새들을 관찰하라는 충고를 해주는데 그의 이름이 다윈이었다고 한다. 진짜 있었던 일인지 궁금하다(영문판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오듀본의 영국 강연 중에 학생이었던 찰스 다윈도 참석했었다고 한다).
새의 관찰과 그리기에 40년 그리고 출판에 12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장 자크는 결국 아내 루시에게 돌아와 말년을 보내고, 영면에 든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장 자크처럼 꼭 그렇게 새를 총으로 쏴서 잡아야 했을까? 덫이나 올무로 잡은 다음 충분히 관찰하고 나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안 되었을까? 한 때, 북미 대륙의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았다는 나그네 비둘기도 그런 식으로 결국 1914년에 멸종되었다.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자연보호협회들이 지구별의 남은 동식물들을 지키기 위해 맹렬하게 정진하고 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