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일인 이야기 - 회상 1914~1933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이유림 옮김 / 돌베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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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중고서점에서 만난 책이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어느 독일인 이야기>. 내가 지금까지 만난 저자의 책 중(4)에 최고였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참고로 올해 만난 26권의 책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연간 베스트로 꼽아도 좋을 듯 싶다.

 

7세 소년 하프너에게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던 1차 세계대전은 하나의 놀이였다. 여름 휴가를 지내던 소년의 가족은 서둘러서 베를린으로 돌아와야 했다. 전쟁 초기, 연전연승하며 프랑스군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시절 소년과 또래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전쟁 전문가가 되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쟁의 실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매일 후방에 게시되는 전황보고서가 전하는 환상에 젖어 있던 독일 시민들은 4년 뒤에 전쟁에 패한 것도 아닌데 진 사실을 갑자기 강요받는다.

 

반란과 혁명으로 이어지는 대혼란기 속에서 카이저는 퇴위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다. 지리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도래했지만, 이미 다음 전쟁을 위한 불온한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었다. 15년 뒤, 합법적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국가사회주의자 다시 말해 나치들은 이미 우파 테러조직으로 그 전신을 드러냈다. 하프너는 초반에도 언급했다시피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역사가 아닌, 비극의 시대를 체험한 한 소시민의 자격으로 자신의 시대를 증언한다. 바로 그 점이 <어느 독일인 이야기>의 귀중한 가치를 역설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후 혼란한 시기에 어쩌면 독일이야말로 붉은 혁명이 일어날 만한 가장 적합한 조건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그런 혁명을 원하지 않았고, 위정자들은 폭력을 동원해서 일체의 불온한 움직임들을 분쇄하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그 유명한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해당했으며, 혁명 조직들은 우파 폭력조직의 잔혹한 테러 앞에 와해되었다.

 

그 다음에는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앞선 흥청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투기가 난무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일개 고등학생들도 주식 시장에 뛰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왠지 최근 과열된 우리 주식시장이 연상되었다. 이십대 초반의 은행장이 등장하는 등 그야말로 기존의 가치와 질서들이 한 번에 무너지는 그런 아노미적 시대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프로이센 고위 관료인 저자의 아버지는 저자가 얌전하게 제도 교육권 아래 교육을 받은 다음, 사법시험을 치르고 판사나 변호사가 되길 희망했다. 아버지는 자유주의자로 일체의 혁명적 움직임을 혐오했다. 청년 하프너 역시 그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청년다운 패기 없이 아니면 독일 민족성을 따라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하프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나치가 소리 없이 부상하고,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에 대한 알레고리가 담겨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돌프 히틀러가 1923년 뮌헨의 맥주홀 폭동으로 국가권력 전복을 시도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치는 허접한 지역 조직이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나 갖은 간계로 그들이 권력을 잡고 궁극적으로 독일 민족을 패망으로 몰고 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바로 그런 독일 제국 내부의 실상에 대한 하프너의 상세한 리포트야말로 역사적 가치를 가진 기록이다. 우선 정치가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위정자들의 무책임한 방임이 무주공산이 되어 버린 정치무대에 나치의 부상을 도왔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나 영국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취미 생활이 독일 사람들에게는 없었다는 점도 저자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물론 철학이나 사유 혹은 다른 예술 방면에서도 게르만 민족은 특출난 재능을 보였었다. 하지만 개인의 취미생활보다는 프리데리쿠스 이래 형성된 집단주의적 성향은 체제에 순응하는 시민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보불전쟁의 승리로 유럽의 신흥강국의 자리에 오른 다음, 판단 착오로 영국-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패배하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지불하게 된 수모를 당하게 독일 사람들은 민족적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라도 내재된 불만에 불만 당겨준다면 총화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부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흥청거리던 1920년 초반은 예상하지 못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파산이라는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런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같은 해 10월 렌텐마르크의 등장으로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경제적 현상으로 하프너의 아버지 같이 가장 성실하게 국가와 사회에 봉사해온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대신 이번에도 막대한 빚을 내어 투기에 나선 이들만 배를 불리게 되었다. 계속되는 이런 일련의 사회적 부조리는 나치라는 괴물이 등판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독일인 특유의 근면성실함이 가장 큰 문제였다. 히틀러와 나치가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초반에 나치 혁명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조차 그들의 체제 선전에 넘어가 버렸다. 그들의 조직적 기만 전술과 심리전에 독일 국가 전체가 넘어가 버린 것이다. 국가의 올바른 대의에도 독일 시민들은 맹렬하게 돌진했지만, 반대로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레밍 떼처럼 지도자의 영도를 따랐던 게 가장 큰 실책이었다. 그것도 아주 효과적이고 성실하게 말이다. 그 결과, 히틀러 일당이 최종해결책이라는 미명 아래 유대인 절멸정책을 수행할 때조차 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인류적인 범죄에 그야말로 무엇에 홀린 듯 기계적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던 하프너는 당연히 그런 나치에 동조할 수 없었다. 사법시험을 앞둔 사법 연수생이었던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엄정한 프로이센의 법 체제가 조용하게 붕괴되는 것을 목격한다. 히틀러가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빌미로 제국 총리에 임명되면서 1933년 봄과 여름에 유대인들을 차별하는 일련의 가공할 범죄들이 잇따라 벌어진다. 유능한 유대인 대법관을 필두로, 체제에 찬성하지 않는 이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불평불만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주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만약 이런 일들이 대놓고 공개적으로 처리되었다면 분명 거센 반발을 유발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공포를 유포하는 방식을 이미 나치 선전기계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소곤거리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그들을 기가 막히게 이용했다. 나치 제3제국은 이런 식으로 비밀경찰(게슈타포)이 암약하는 경찰국가로 변해갔다. 물론 나치 혁명 초반 돌격대(SA)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중에 보다 세련된 방식의 친위대(SS)가 그 역할을 이어 받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집권으로 위기감을 느낀 현명한 유대인들은 조국을 등지기 시작했다. 하프너의 절친이었던 프랭크 란다우가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문명국가에서 폭력이 횡행하는 야만국가로 변하기 시작한 독일 제국에 더는 남아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폭력 앞에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저항했고, 또 다른 이들은 망명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등지고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은 타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청년 하프너 역시 기괴한 형태로 변해가는 조국의 현실 앞에 좌절하고 정치적 망명을 꿈꾸 시작한다. 같이 스터디 모임을 하던 인물들 중에서도 나치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개화된 지식인들이 아니었던가? 히틀러 일당이 날조한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이들은 어떤 말로도 토론이 되지 않았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답정너라고나 할까. 한 때 점잖게 지식과 문화, 예술을 토론하고 향유하던 이들이 적대자로 변하는 과정을 하프너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스터디 모임의 몇몇 지인들은 결국 나치 부역자로 변신했다. 그나마 하프너 자신을 비밀경찰에게 고발하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 정도였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어느 독일인 이야기>의 수고를 망명지 영국에서 1939년경에 작성했다고 한다. 아직 전쟁이 발발하기 전으로, 여전히 서방 세계를 대표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 유화정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외교정책이나 부분적 영토 할양으로 미치광이 독재자를 달랠 길은 없다는 점을 서방의 지도자들은 몰랐다. 하지만 하프너는 히틀러가 권력을 얻기 전부터 바이마르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들을 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독일 민족의 명운을 걸고 도박판에 나선 독재자를 과소평가했던 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합리적인 독일 시민들은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과정에서 어떤 조직적 저항도 보여주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 이루지 못한 최종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개인의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의식이 독일 시민들 사이에 갑자기 팽배하기 시작했던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되돌리려고 했을 적에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하프너처럼 그런 야만적 시스템 아래서 왜 그들은 자신이 모욕 받고 수치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다수의 그런 이들이 등장해서 저항에 나섰더라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굴러갔을까.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 주었다. 여전히 미스터리한 아돌프 히틀러의 부상과 권력 장악 그리고 최종 파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 하프너가 저술한 <어느 독일인 이야기>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 준다. 아직 2월이지만, 올해 만난 최고의 책으로 꼽을 만한 저술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대를 충족시키는 책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 책이 이룬 성취는 대단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어도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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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2-15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올해라야 이제 2개월 반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26권이라굽쇼? 대단하네요.
연말이 되면 몇권을 만나시게 되나요?
암튼 홧팅입니다!^^

레삭매냐 2021-02-15 15:40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굽시니스트 선생의 만화와
이러저러한 그래픽 노블로 꼼수를
부른 덕분이지효 핫하 ~!

한참 달릴 적에는 300권도 돌파했었
는데 이제는 노쇠하야 -

일단 연초의 목표는 120권이었습니다.

scott 2021-02-15 1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21년 매냐님 독서 이력 26권 0=260권! 홧팅!

레삭매냐 2021-02-15 15:41   좋아요 1 | URL
욕심 내지 않고 달리기로 했습니다.

일다가 꼭 연말에 가서 무리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무슨 의미라고 말이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독서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