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지난달에 윌라 캐더 여사의 책들을 주문하다가 순전히 무료배송을 맞추려고 덤으로 주문한 그런 책이었다. 어젯밤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원래는 옌렌커의 제목도 멋들어진 <레닌의 키스>를 시작하려다가 우연히 집어 들었다. 분량이 적어서 그 길로 다 읽어 버렸다. 요즘은 거의 11독을 하고 있다.

 

데니스 존슨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데, 미국에서 제법 알려진 작가인 모양이다. 전미도서상도 받을 걸 보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아이다호. 주인공은 모이 계곡에 사는 벌목꾼이다 날품팔이 노동자 밥 그레이니어다. 1917, 그의 오두막집에는 사랑하는 아내 글래디스와 이제 갓 태어난 딸 케이트가 살고 있었다.

 

북미대륙 동부의 뉴잉글랜드에서 출발한 신생국가 미국은 서부로 전쟁과 계약을 통해 계속해서 영토를 넓혔다. 아직 개발이 끝나지 않은 시절, 그레이니어는 철도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철마는 미국 개척시대를 상징하는 아이템이었다.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자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철도 부설은 당시 산업개발 시대 국가 경영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소설 초반에 그레이니어는 동료들과 함께 물건을 훔치다 걸린 중국인 노동자를 사적으로 처벌하려는 시도한다. 다른 이는 그에게 총질도 했다지 아마. 결국 불쌍한 중국인 노동자는 자신을 핍박하는 백인들 사이에서 무사히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조실부모한 밥 그레이니어는 고모 내외와 사촌 사이에서 자랐다. 학교에서 글을 쓰고 읽는 법을 배운 그는 자신의 노동을 팔아먹고 사는 그런 성실한 사나이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비극은 순식간에 찾아오는 법이다. 그레이니어 가족의 안식처였던 모이 계곡에 대형 화재가 나고, 그 화재로 밥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 케이트를 잃었다. 가족을 송두리째 잃은 밥은 자신이 산 땅 1에이커에서 그야말로 부랑자 같은 삶을 살기 시작한다.

 

산사나이 밥 그레이니어의 이야기를 만나는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제탈러의 <한평생>이 떠올랐다. 산은 그레이니어에게 안식이자 피난처였다. 동시에 자신의 가족을 앗아간 원수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주는 것도 산이요, 거두어 가는 것도 산이었던가. 그리고 보니 강도당한 부랑자 아저씨를 돕지 않은 탓일 수도, 사소한 범죄에 대한 처벌로 목숨을 요구했던 중국인 노동자의 저주가 아닐까 하는 망상에 젖기도 한다. 자신에게 벌어진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이없는 사건에 대해 밥은 자책 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소설은 어느 시점에서 신화의 영역으로 점프한다. 늑대소녀가 등장하고, 죽은 글래디스의 유령이 밥에게 나타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현시를 보여 주었던가. 알고 보니 늑대소녀가 대화재에서 살아남은 케이트였던가 어쨌던가.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더 이상 산사람으로 살 수 없게 된 밥 그레이니어는 물건을 실어 나르는 유통업자로 변신한다. 유럽에서 터진 전쟁으로 가문비나무를 비롯한 목재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벌목꾼은 호황을 누렸다지. 사실 미국 본토는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한 번도 적의 대규모 공격을 받지 않은 상태로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를 생산해내는 공장으로 변신하지 않았던가. 벌목 과정에서 파편처럼 튀는 나뭇가지는 과부제조기로 불릴 정도로 위험했다고 한다. HBO 드라마<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벌지 전투에 참가한 101공수사단 부대원들이 독일군이 쏜 대포에 맞아 부서진 나뭇가지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신화의 영역과 현실을 오가며 여러 시대를 압축적으로 기술한 데니스 존슨 작가의 서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노동에 근거한 성실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하지만 그 욕망을 현명하게 다스릴 줄 알았던 밥 그레이니어라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 그런데 <기차의 꿈>의 결말이 어떻게 되더라. 불과 얼마 전에 읽은 책인데 소설이 어떻게 끝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도 이 책 저 책 읽다 보니, 기억력과 연관 능력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책을 펼쳐 보니 시간이 영원히 사라졌다로 끝난다. 그렇지 시간은 사라지는 법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