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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10 - 제2부 승자와 패자 10 키요스 회의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15년 10월
평점 :
줄리어스 카이사르가 죽었을 때도 그랬다. 인간은 모름지기 질서를 좋아하는 법이다. 혼란은 예측불허하기 때문일까. 무질서가 계속되면 그 속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이 등장해서 무질서를 끝내려고 경쟁하기 마련이다. 무질서라는 센코쿠 시대, 무력으로 천하통일을 앞두고 있던 효웅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그가 유지하고 있던 질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초청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즈치 성을 방문하고, 일본에서 세계로 향한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카이 지방을 주유하고 있었다. 당시 사카이 지역에서 연간 생산되던 3,000정의 총포는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무력의 기반이었다.
1부의 초반, 중요한 역할을 하던 쿠마 도령 타케노우치 나미타로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서 궁금해 하던 차에 이번 도쿠가와의 순행길에 다시 나야 쇼안이라는 이름의 거상으로 다시 등장한다. 아, 그렇지 한 번 그렇게 비중 있게 등장한 인물이 버려지지는 않겠지. 그리고 미츠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요설을 흘리는 쿠마도령.
우리는 이미 교토의 노부나가가 혼노 사에서 분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쿄토로부터 비보가 잇달아 전해진다. 자신의 동맹이자 사돈이었던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쿄토로 가서 할복하겠다는 말로 가신들을 눙치고, 본국 미카와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국을 거머쥐고 있던 거인의 죽음은 곧바로 예상하지 못했던 혼돈을 초래한다. 산적이며 폭도들로 변한 백성들이 약탈과 방화에 나선다. 이런 상황에서 화려하게 꾸민 다이묘의 행차는 곧바로 그들의 목표가 될 게 분명했다.
말이 꽃이 지는 도시 쿄토에서의 할복이지 본국으로 돌아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우다이진의 복수에 나서겠다는 것이 이에야스의 본심이었다. 마츠다이라 가문에게는 치명적이었던 미카타가하라의 패전만큼이나 중차대한 위기를 넘기고, 이에야스는 자신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백성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한편, 2부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시바 히데요시는 주군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아 6년 째 추코쿠 정벌에 나서 모리 가를 상대로 빗츄의 타카마츠 성을 공략 중에 있었다. 아무리 신출귀몰하는 지략의 히데요시라고 해도, 죽음을 각오하고 농성에 나선 성장 시미즈 무네하루를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히데요시 진영에도 전해진 오다 노부나가의 사망 소식, 자 이제 문제는 사투를 벌이던 모리 가와 화친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속히 쿄토로 돌아가 역신 미츠히데를 토벌하는 복수전을 치러야 노부나가의 유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산을 히데요시는 마쳤다. 생각과 실천을 동시에 이루는 능력은 이제 저승길에 오른 노부나가를 능가하는 게 바로 히데요시였다.
치밀한 전략가인 히데요시는 자신의 라이벌들이 각지에서 적을 상대하느라 주군을 시해한 역신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할 겨를이 없다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자신도 빗츄의 타카마츠 성을 공략하느라 애를 먹고 있지 않았던가. 교활한 히데요시는 주군 시해 소식을 듣자마자, 화친을 청하던 모리 가의 사자를 설득해서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화친을 맺은 뒤, 아케치 미츠히데 토벌의 깃발을 올린다. 그야말로 선빵을 날린 것이다. 노부나가 사후, 무주공산 상태의 혼란을 제압하고 주군의 유산을 통째로 삼키겠다는 배포가 아닐 수 없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전임자가 무자비한 폭력적 방식으로 상대를 제압했다면, 후임자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고전적 방식으로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무력을 하지만 언제라도 자신과 화친/굴종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 바로 휘하에 합류시켰다. 그러니 미츠히데의 사위들인 호소카와 타다오키나 츠츠이 쥰케이가 장인을 배신하고 적군과 합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한편, 차야 시로시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비밀정보원으로 사카이 지역의 상인으로 신분을 위장해서 활동 중이었다. 당시 센코쿠 시대에 각처에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를 수집하여 본국에 전달하는 수많은 세작들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무력에 능한 가신단 뿐 아니라 협상과 외교 그리고 정보전의 필요성도 깨달았던 모양이다. 우직하고 주군에 대한 충성이라는 점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미카와 무사들이었지만, 노부야스 사태에서도 보듯이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훗날 가라시아 부인으로 알려지게 되는 미츠히데의 차녀 키쿄(호소카와 타다오키의 부인)에 대한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천재 전략가답게 히데요시는 무력에만 능한 게 아니었다. 치밀한 정보전으로 자신의 군세를 부풀리고 민심은 이미 주군의 복수전에 나선 히데요시 편에 돌아섰다는 심리전도 구사했다. 군의 보급에도 용의주도한 모습을 보여 사카이 상인들의 지지로 다수의 군량을 확보하고, 훗날 임진왜란 선봉에 서게 되는 코니시 야쿠로 유키나가를 보급대로 삼아 미츠히데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이런 상태에서 야마자키에서 맞붙은 양군은 이미 본격적인 대결을 하기도 전에 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홧김에 큰 별인 오다 노부나가를 처치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의 대비는 전무했던 게 아케치 미츠히데의 치명적 실수였다. 근교원공의 전략을 구사해야했지만, 쓸모도 없는 원거리에 있는 동맹들만 바라보다가 일패도지해서 결국 오구르스의 노부시들에게 아케치 미츠히데는 살해당하고 만다.
야마자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주군의 원수를 갚은 히데요시는 오다의 가신들 중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치쿠젠이 지닌 승부사로서의 기질은 이후 오다 가의 향방을 결정한 키요스 회의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일단 치쿠젠노카미는 장성한 오다의 아들들인 노부타카나 노부오를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없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래서 혼노 사의 변으로 죽은 장남 노부타다의 유아(3살) 산보시를 적자라는 이유로 옹립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다 히데요시의 말장난이고, 꼬맹이를 앞세워 자신이 다 해 먹으려는 속셈이었다. 다음 권에서 대결하게 되는 시바타 카츠이에의 저항을 가볍게 물리치고, 오다 가의 영지와 죽은 미츠히데의 영지까지 야마자키 전투에서 자신을 도운 가신들에게 나눠 주는 논공행상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짓는 히데요시. 일본을 통일하면 모든 게 자신의 것이 되는데, 쩨쩨하게 푼돈이나 코딱지만 한 영지 따위에는 관심 없다는 투의 시크함이 돋보였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킨키에서 천하를 집어 삼키는 포석을 까는 동안, 간난신고 끝에 본국으로 귀국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쪽의 대란에 참전해서 천하를 다투는 대신 내실을 다지기 시작한다. 이미 미카와, 토토우미 그리고 스루가의 태수였던 이에야스의 다음 목표는 카이와 시나노였다. 타케다 가문이 멸망하고 난 뒤, 점령군으로 들어온 오다 가의 대리 성주 카와지리 히데타카는 카이 무사들의 씨를 말리는 정책으로 민심을 일었다. 노부나가의 사망으로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을 때, 연이은 오판으로 대국을 그르쳐 버렸다. 결국 카이 겐지의 영지는 모두 이에야스가 접수하는 것으로 끝났다. 앞서 죽은 타케다 신겐은 미카타가하라에서 자신에게 대패한 이에야스가 미래에 자신의 영지를 접수하리라고 꿈이나 꾸었을까 싶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지도자가 불시에 죽어 버리자, 정국은 다시 혼돈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아마 오다 노부나가가 살아 있었다면, 천하인의 꿈도 꾸지 못했을 오와리 나카무라 출신 ‘코자루’ 키노시타 토키치로가 유력한 다이묘로 부상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인내의 캐릭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국의 소용돌이에서 조금 빗겨난 동부에서 자신의 기반과 실력을 기르면서 대망을 꿈꾸고 있었다. 한 박자 쉬고, 다시 하시바 히데요시와 시바타 카츠이에가 자웅을 겨룰 다음 편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