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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부서
제니 오필 지음, 최세희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1월
평점 :
어느 순간 드럽게 재밌는 그런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애석하게도 책이 흘러넘치는 나의 서가에는 그런 책이 쉬이 눈에 띄지 않더라. 차선책으로 일주일 전에 주문한 제이 오필의 <사색의 부서>를 집어 들었다. 아니 이거 재밌는데. 그런데 그 재밌다는 생각은 딱 절반까지만.
뉴욕 출신 브루클린에 사는 주인공이 오하이오 출신 남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했다. 자연스러운 수순대로 아이도 가지고, 출산과 독박육아에 이러는 과정들이 구렁이 담너머 가듯 그렇게 유려하게 진행된다. 이런 담담한 일상에 대한 조용한 스케치가 나는 마음에 들더라. 그렇지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삶이라는 게 뭐 특별날 게 있나.
아니 어쩌면 어렸을 적에는 그런 특별한 삶을 꿈꾸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살만큼 살고 보니 평화롭게 사는 게 좋다는 걸 깨닫게 됐다. 오늘도 무사히. 아무런 일 없이, 분쟁도 말다툼도 없는 그런 무색무취한 삶 말이다.
주인공은 나에서 아내(the wife) 그리고 그녀로 변신을 거듭한다. 괴물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아이를 기르며 글도 쓰고 대학에서 교수로도 활동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고스트 라이터로 우주비행사가 될 뻔한 남자의 이야기도 써주고 가외로 짭짤한 수익도 올리는 모양이다. 문제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의 사색이 깊어지려는 찰나에 어느 순간 <부부의 세계>가 등장한다. 짜잔! 어떤 공식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될 적에 배우자가 바람이 든다고. 그리고 상대방의 외도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1,000시간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나는 소설의 전반전까지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삶의 허무함 뭐 그런 것들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부부의 세계’로 진입하면서부터 뭐랄까 이야기가 매너리즘에 빠져 버린 느낌이랄까. 바로 그 지점부터 소설이 언제 끝나나 싶어졌다. 빨리 마무리를 짓고 리뷰를 써야지 하는 하나의 강박관념. 시작은 기대 이상으로 창대하였으나 결말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더라.
기대했던 빗속에서의 삼자대면은 시시하게 끝났다. 원래 그런 개싸움은 서로 격렬하게 맞부딪혀야 재미가 상승하는 법인데, 혼자서만 길길이 날뛰니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 그래. 물론 그런 장면도 제니 오필 작가의 냉철한 계산 아래 진행된 것이겠지만. 그것은 마치 한물간 복서가 링 위에서 섀도 복싱을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의 결론은 에이 입맛만 버렸다지 싶다. 책을 읽을 적에는 무언가 상당한 기대감이 밑줄도 좍좍 긋고 그랬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리뷰를 빨리 마무리 짓고만 싶은 그런 느낌. 나의 독서는 어설픈 리뷰로 끝이 나니 말이지. 4B 연필로 죽죽 그은 연필 자국들이나 메모들은 지우개로 잘 지운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하나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