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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연쇄 독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들의 연쇄
김이경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8년 전에 책을 받아 읽기 시작하면서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구? 내가 모르는 미지의 책들이 우수수 소개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연쇄 독서의 위험을 잘 알고 있으니 더더욱 그랬겠지.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니 오죽했을까. 지금도 그 시절에 산 책들을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이다. 사거나 받은 책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언젠가는 읽는다는 신념으로.
그 때 본 책은 다 읽지도 못했으면서도 <마녀의 연쇄 독서>에 소개된 책은 하나 산 기억이 난다. 토니 주니퍼의 <스픽스의 앵무새>. 이미 그 때도 절판된 책이었다. 신기하게도 페미니즘, 환경을 주제로 한 책들의 수명은 너무 짧은 것 같다. 거의 초판만 나오고 그 후에는 다시 찍지 않는 모양이다. 남아메리카 열대 우림에 서식한다는 스픽스금강앵무에 대한 이야기는 하루가 다르게 멸종되어 가는 지구별의 생물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상황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준다. 밀거래 시장에서 한 마리에 자그마치 4만 달러나 하는 금강앵무 잡이에 혈안이 된 밀렵꾼 그리고 그들의 밀렵을 사주하는 부유한 희귀새 수집가들의 악랄함에 그저 치를 떨 뿐이다. 아름다운 금강앵무들이 그냥 원래 살던 곳에 살게 해주면 안 되는 걸까.
우리가 사는 지구별의 모든 것은 순환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다. 오로지 생산과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환경파괴를 사주하고, 은폐하는데 전력투구한다. 보다 나은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이 파괴되니 금강앵무들이 살 터전이 사라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생명공학이 언제부터인가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등장하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의 종자시장에 침투해서 돈벌이에 나섰다. 그 결과 농부들이 수천 년 동안 애써 지켜온 종자의 다양성들은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이익을 내는 효율적 단일경작만이 살 길이라는 모토가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단일경작의 폐해는 정말 심각했다. 병충해나 기근이나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린 물 부족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종자들은 극심한 기후변화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우리 지구별의 수많은 이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현실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또 한편으로 영양과잉으로 비만이나 당뇨 같은 선진국형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반세기도 전에 독일군이 포위한 레닌그라드에서 미래의 인류를 가난과 기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씨종자를 나치의 폭탄과 극심한 기아와 싸우다 죽은 영웅들의 이야기에서는 정말 진한 감동을 먹기도 했다. 내가 <마녀의 연쇄 독서>에서 꼽은 최고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니콜라이 바빌로프, 결국 그의 일대기를 다루고, 식물종 다양성이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책인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읽기 시작했다. 마침 그놈의 코로나 사태로 휴관 중이던 도서관이 문을 열어서 두 달이나 대출했던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냉큼 빌려다 바로 읽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책은 사야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시지 마라. 언제고 살 테니.
내가 처음에 이 책이 상당히 위험한 책이라고 말했던가? 아 제목으로 뽑았구나. 출판사 편집자이자 <스픽스의 앵무새>를 국내에 소개하기도 한 눈 밝은 독자이기도 한 저자처럼 어떤 카테고리를 정해서 달려가는 그런 연쇄 독서가라기보다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읽어제끼는 연쇄독서마에 가까운 나는 당분한 이 책의 영향으로 연쇄 독서에 시달릴 경향이 농후하다. 벌써 나의 장바구니를 채운 책들이 몇 권이던가.
여담으로 우리가 즐겨 먹는 청양고추도 해외 식물기업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즐겨 먹을 때마다 그 기업에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는 좀 충격을 먹었었다. 별 게 다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이구나 하고 말이다.
토크빌이 민주주의 사회의 모델로 삼았던 미국의 현재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프랑스 출신 정치학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최고 정치지도자가 확인도 되지 않은 사실을 국민들에게 무차별 살포하고, 오로지 자신의 재선이라는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로 베트남전에서 죽은 미군 수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질병으로 죽어 나가도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회를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미국식 민주주의의 조종이 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반-반민주의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바로 이게 문제다, 끝없이 연쇄 작동하는 독서와 책에 욕심이 결국 화근이 될 판이다.
책을 읽을 적에는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리뷰로 담아내려니 한계가 느껴진다. 기운도 없고... 결국 저자가 인도하는 연쇄 독서는 어디까지나 독서인에게 참고 사항일 뿐이고, 진짜는 자신이 직접 원전을 읽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때, 이런 종류의 책들이 유행을 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더더욱 책을 읽지 않게 된 시절에 타인의 독서를 읽는다는 건 더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닌가 싶다.
<마녀의 연쇄 독서>를 읽으면서 절판된 많은 책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다행히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책들도 있더라. 그런 책들은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고 그렇지 않은 책들에 대해서는 예의 소유욕이 발동했다. 이제 다시 책사냥에 나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