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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별다방 라떼에 얼음을 부어 마시며 리뷰를 쓰는 즐거움이라... 어제 왼쪽 종아리 비복근 부상으로 얼음 찜질까지 하면서, 더 바랄 게 없구나. 샌드위치 데이라 그런지 나를 성가시게 하는 전화조차 걸려 오지 않는다. 살짝 천국에 발을 담근 그런 느낌이랄까.
점심 때 머리 자르러 가서 대기하는 동안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다 읽었다. 지난달에 사서 바로 4개의 에피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당일로 다 읽을 줄 알았는데 세풀베다의 책에, 츠바이크의 카스텔리오를 위한 변명 등등을 읽다 보니 후순위로 밀렸다. 하지만 마저 읽는 건 누워서 떡먹기 프로젝트여서 금세 다 읽었다.
어느 100자평인가를 보니 서울깍쟁이 여성의 이야기라고 되어 있는데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작금의 염량세태를 대변하는 수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감상은 아무래도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게다가 무척 직설적이고, 감각적이다. 예전에는 돌려치기가 문학의 감수성을 대변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돌려까지 말고 무조건 직진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인스타 열컷 만화로 미리 만난 우동마켓에서 신상을 판매하는 거북이알이 등장하는 이야기와 필요할 때만 부르는 회사 언니에 대한 이야기(아, 제목도 잊어 먹었다)에 어찌 공감하지 않으리오. 결혼식에서 1차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말을 절감했다.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청첩장을 받아가 놓고선 나타나지 않는 건 기본이었다. <잘 살겠습니다>의 빛나 언니는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정확하게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요즘 사람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사람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 나도 얼마 전에 친척분이 돌아가셔서 부조 접수를 보았는데 455,000원을 내신 분이 있더라. 아무래도 5만원으로 5천원으로 착각하시지 않았나 싶다. 부조는 갚아야 하는 돈인데, 그럼 갚을 때도 455,000원으로 돌려 드려야 하나 싶더라.
영어학원도 아니고 회사에서 영어식 이름을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대표이사 같은 상사야 누구든 하대를 하니 상관없겠지만, 중간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좀 그럴 것 같은데. 오래 전 영어 학원 다닐 적에 맥스란 이름을 사용했더니 모두가 앞에다 ‘매드’를 달아서 한동안 곤욕을 치렀던 것 같다.
요즘 세대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도 그리고 누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도 거부한다. 가만 보니 예정에 정이라고 불리던 것들이 어떻게 보면 간섭일 수도 있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가령 예를 들어 반세기 전에는 백만 명이던 출산인구가 이제는 28만 명 정도로 1/3 토막이 나버렸다. 그 시절에는 인구폭발로 아이를 더 낳지 말라고 난리였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였는데, 이젠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 그 저변에는 자식 세대를 위해 희생한 부모 세대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도움의 손길>에서는 고단한 가사 일에 도움을 받고자 업체를 통해 도우미 아줌마를 요청한 주인공의 관찰일기가 등장한다. 아마 집안 청소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청소라는 게 정말 아무리 해도 태도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바쁜 회사일 만으로도 번잡한 마당에 합리적(어쩌면 이 단어가 이 소설의 주제를 타격하는 핵심 키워드일 지도 모르겠다) 비용으로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럴 만한 비용일 수도 있겠지. 인간은 만족할 줄을 모른다. 어느 아줌마의 꼼꼼한 청소 솜씨에 반해 정기적으로 방문을 요청하지만, 아줌마는 초심을 잃고 어느 순간부터 매너리즘에 빠져 청소며 빨래를 대충하기 시작한다. 아, 주인공이 요청한 창틀 청소는 정말 고난이도의 작업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 원 더 드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합리적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관계의 파국이 예상되지 않는가.
<탐페레 공항>에서는 평생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던 소녀가 현실을 직시하고 보통의 회사원이 되는 그런 과정을 담담하게 적어낸다. 피디가 되기 위해, 이력서에 얹을 경험을 얻기 위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는 환승지였던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은퇴한 사진작가 양반과의 인연이 중심을 잡고 있다. 눈도 잘 보이지 않는 분이 찍은 자신의 사진이 귀국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답장하려는 주인공의 시도는 먹고사니즘에 바빠서 그리고 취뽀를 위해 맹진해야할 시간이라는 자기변명과 합리화로 소멸된다. 그런다고 과거의 애잔한 추억이 기억에서 사라지리라고 생각하는 건 오판이다. 언제고 해결해야 하는 일의 유예일 따름이다.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치환될.
에두르지 않고 직진하는 장류진 작가의 스타일과 작법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호흡이 짧은 단편과 장편은 또 다르지 않을까. 장류진 작가가 장편을 쓴다면 과연 어떤 스타일로 이 경쾌한 스타일의 리듬감을 이어갈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거는 아시는지. 일에 기쁨이나 슬픔 따위는 없다는 거. 매달 노동과 스트레스의 대가로 주어지는 통장에 따박따박 찍히는 숫자가 제공하는 푹신함만 존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