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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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산 책인데, 퇴사하는 동료가 사무실에 있는 책을 빌려 갔다. 책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읽지도 못한 책인데... 그래서 다시 중고서점에서 샀고, 이번에는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독일 출신으로 제3제국으로 성장한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현대 독일사의 목격자의 입장에서 1848년 혁명으로 전 유럽을 들끓던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히틀러의 패망에 이르는 독일 현대사의 영광과 오욕의 순간들을 짚어낸다.

 

신성로마제국 아래 수많은 영방국가로 존속하고 있던 19세기 독일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딛고, 유로 권에서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독일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중심으로 한 대독일주의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소독일주의 통합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었다. 군국주의 프로이센은 1848년 덴마크와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가면서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성장해 가기 시작했다.

 

프로이센 융커 계급 출신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영도 아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도이치 제2제국이 탄생했다. 프랑스의 괴제 나폴레옹 3세와의 전쟁에서의 전격적 승전은 유럽에서 어느 누구도 프로이센 제국의 탄생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50억 프랑에 달하는 전쟁배상금과 알자스-로렌의 영토 할양이라는 보상은 프랑스에게 치욕을 안겨 주었으며, 결국 다른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프랑스가 지불한 50억 프랑이라는 자금은 독일 경제 부흥의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풍부해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던 프로이센에 수많은 기업들이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필수적인 자본의 축적을 전쟁 배상금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군국주의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바탕(역시 전쟁 배상금과 영토 할양)으로 동아시아의 패자로 등장하는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우리에게는 철혈재상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비스마르크는 각성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운동을 달래기 위해 서구에서 최초로 의료보험 시스템과 연금 같은 복지 시스템을 도입한 보수주의 지도자라는 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지적한다. 독일의 유서 깊은 정당인 사회민주당(SPD)은 이런 과정에서 혁명정당에서 개혁정당으로 변신하게 되게 된다. 자본가와 지주가 연합한 지배계급을 대표하는 비스마르크로 대변되는 독일 지배층의 선제적 대응에 이러한 사회민주당의 변신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 순서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1차 세계대전이다. 그동안 첫 번째 세계대전은 전 세계에서 벌어진 식민지 쟁탈전의 결과라고 알고 있었는데, 도이치 제2제국의 탄생에서부터 독일은 유럽 내부 경영에 오히려 중점을 두고 있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물론 대 프랑스 전쟁 이후, 1895년대까지 계속된 경제 불황 이후에는 독일도 식민지 경영에 나서긴 했지만 이미 세계를 나눠 먹은 영국과 프랑스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결국 독일의 진출 방향을 슬라브 족이 살고 있는 동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레벤스라움을 주장하면서 독소전쟁을 시작한 히틀러 역시 도이치 제2제국의 충실한 후계자였던 모양이다. 비스마르크 이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던 유럽의 정치적 상황은 결국 화약고였던 발칸에서 폭발하고 만다.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하면서도 전 유럽은 미증유의 전쟁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전쟁 이래 패배를 몰랐던 전쟁기계 독일은 중립을 기대했던 영국이 전쟁에 뛰어 들면서, 유럽의 3대 강국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 최고의 생산국가 미국까지 서부와 동부전선에서 상대해야만 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당시, 독일이 러시아로 보낸 비밀병기 레닌의 활약으로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하면서 독일이 훗날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 당시 얻은 영토만큼의 성공을 이미 거두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거시적인 시점에서 역사를 다루다 보니, 타넨베르크 전투 같은 미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저자의 저술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인데, 2도이치 제국이 전쟁에서 전투를 못해서 진 것이 아니라는 통설이 당시 독일 내부에서 횡행했다는 점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알자스의 반환과 굴욕적인 무장해제는 대 프랑스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또 다른 전쟁을 잉태하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였다. 독일이 갚지도 못할 전쟁배상금을 설정한 연합군의 정치적 오판과 더불어 오스트리아 출신 하사관의 갑작스러운 정치적 부상으로 새로운 전쟁으로 돌입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제3제국 치하를 직접 경험한 이의 증언이 이어진다.

 

어떻게 해서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등장하게 되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그것도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었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혼란을 일소하고 완전 고용이라는 신화를 창출한 국가지도자의 출현을 독일 사람들은 바랬던 게 아닐까. 굴욕적인 무장해제를 마치 곡예를 하듯 피해 나가면서 도이치 민족의 부흥은 물론이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주데텐란트를 아우르면서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킨 히틀러에게 독일 민족은 열광했다. 전격전으로 폴란드를 비롯해 1차 세계대전의 실패를 뛰어넘어 단 6주 만에 프랑스를 굴복시킨 시점까지가 히틀러가 추구한 성공의 최대치였다. 독소전의 개전과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 같은 실책이 이어지면서 결국 패망의 수순을 밟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패전 후, 승전국인 네 개 열강이 독일을 분할 통치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소련의 스탈린은 이미 1952년 독일을 통일시켜, 중립국으로 만들 것을 제의했지만 스탈린의 의도를 의심한 서방 국가들의 저항으로 재통일은 무산되었다. 사후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스탈린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면 통일 독일의 탄생은 그만큼 더 앞당겨졌을지 의문이다.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한 세기에 달하는 숨 막히는 도이치 제국의 흥망사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읽은 것을 바탕으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주도하는 정치 군사적 독일의 통일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배후에 담긴 사회경제적 요소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독서의 체험이었다. 아무래도 거시적인 점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당대 개론서로는 충분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히틀러 시대를 직접 체험한 저자의 체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제 저자의 <어느 독일인 이야기>만 읽으면 국내에 나온 그의 책은 모두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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