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손님 (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국내에 소개된 안드레 애시먼의 첫 번째 책이다. 이미 읽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하도 평을 많이 들은지라 읽으면서도 영 낯설지가 않았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주인공 엘리오와 울리바(올리버)가 보르디게라에서 만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다. 이 책은 표지갈이를 하면서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는데, 처음 나온 책의 표지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양장본으로 나온 책을 샀다. 이미지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그래. 그렇다고 해서 다른 표지가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원작대로 새로 단장해서 나오기까지 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원제로 갈 것이지.

 

소설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매해 여름마다 B(보르디게라)에서 지낼 하숙생이 엘리오 아버지의 집을 찾는다. 소설은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교수인 아버지 덕분인지 감수성과 지성이 풍부한 17세 소년 엘리오가 7세 연상의 울리바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보르디게라, 그 둘이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들을 보낸 로마 그리고 재회를 갖게 되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나는 각각의 공간들을 침잠, 열정 그리고 회한으로 표현하고 싶다.

 

과연 엘리오는 울리바에게 첫눈에 반했을까? 울리바의 냉랭한 감정선은 어쩌면 민감한 소년 엘리오에게 보내는 하나의 경고였을 지도 모르겠다.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는다면 너는 과연 감당할 수 있겠니라는.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 가다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보르디게라 모네의 언덕에서 지루한 게임을 끝내고 둘은 첫 키스를 했던가. 궁금한 마음에 보르디게라를 찾아 봤다. 내가 오래 전에 갔던 모나코를 조금 더 지나면 보르디게라가 나오더라. 이탈리아 리비에라 정도일까. 소설의 어디선가 본 망통(구글 지도에서는 멍똥으로 표시되어 있더라)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곳이 바로 보르디게라였다. 그 때 소설 <향수>의 도시 그라스를 찾았던 것처럼,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보르디게라도 가지 않았을까. 이 책에 앞서 애시먼의 <알리바이>를 먼저 읽었는데, <그해, 여름 손님>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울리바는 소년이 느끼는 갈망의 지향점이다. 둘은 모두 보르디게라의 빛나는 여름이 끝나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도유망한 청년 울리바는 뉴잉글랜드의 하버드로 그리고 어쩌면 엘리오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갈망을 안고 유학길에 오를 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걱정하기에 그들은 너무 어리거나 젊었고,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변에 쏟아지는 햇살은 너무 강렬했다. 그들의 감정들이 시기 혹은 질투로 마구 뒤엉키는 선선한 오후의 나름함이 얼마나 매혹적이던지.

 

그렇게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영원한 도시로 이별여행길에 나선다. 시인 문인들과의 만남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한 엘리오와 울리바가 로마의 어느 광장에서 키스를 나눈다. 앨리오는 평생의 기억으로 그 순간을 기억한다. 물론 그런 둘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니 그전에 울리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고 했던가.

 

불길이 사그라지고 보르디게라로 돌아온 엘리오가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정말 놀랍다. 어쩌면 안드레 애시먼은 바로 이 장면을 쓰기 위해 찬란한 태양으로 빛나는 이탈리아 리비에라라는 무대에 엘리오와 울리바를 올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모른 척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훗날 울리바와 재회한 엘리오는 그 사실을 울리바에게 말한다. 아마 울리바의 아버지라면 당장에 교화 시설에 보냈을 거라고 했던가.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을 격려하는 아버지... 아들은 과연 그가 자신이 아는 아버지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식구라고 하지만, 누군가를 전적으로 아는 게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다.

 

소설 <그해, 여름 손님>에서 나는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냥 이렇게 끝내도 소설의 완성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뒤에 이어지는 울리바와의 재회는 그냥 사족 같은 느낌이랄까. 오랜 시간이 지나 그해 여름의 기억들이 임의대로 왜곡되고 어느 아름달움의 잔향만이 남은 상태에서 다시 만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게다가 울리바는 이미 결혼해서 두 명의 아들들까지 둔 상태가 아니던가. 아름다운 추억은 추억 그대로 간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모두 미련일 뿐.

 

나는 아마 이 소설의 후속편이라는 <파인드 미>는 읽지 않을 것 같다. <그해, 여름 손님>을 읽다 보면 나도 보르디게라의 여름 손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두 번 만난 지중해의 여름은 참 즐거웠었다. , 지난에 주문한 안드레 애시먼의 <하버드 스퀘어>가 발송되었다고 한다. 다음 주에나 도착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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