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크 에프 그래픽 컬렉션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에밀리 캐럴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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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교 다니면서 많이도 맞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히지가 않는구나. 그런데 딱히 무슨 이유로 맞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수업시간이 떠든다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문제를 제대로 못 풀었다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맞은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매를 맞아서 해결될 문제였나. 그리고 학교에서의 체벌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두 없어져 버렸다. 로리 할스 앤더슨과 에밀리 캐럴의 멋진 그래픽 노블 <스피크>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

 

그래픽 노블의 주인공은 멜린다 소비노다. 9학년 메리웨더 고등학교 신입생인 모양이다. 미국의 학제를 모르니 9학년이 정확하게 몇 살인지 모르겠다. 멜린다는 학교에서 왕따소녀로 통한다. 모두가 그녀의 존재를 불편하게 생각한다. 발을 걸고, 휴지를 던지고 못살게 괴롭히는데 모두가 한 마음이다. 이유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제시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이유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 그래픽 노블이 목표하는 지점으로 보인다.

 

멜린다는 친구도 없이 지루한 학교생활을 버텨야 한다. 점심시간도 즐겁지가 않다. 누구도 그녀와 함께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슬 드러나는 진실의 가닥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카일네 집에서 있었던 파티에서, 멜린다가 경찰을 부르면서 모든 게 틀어진 모양이다. 멜린다의 학교생활은 엉망진창으로 흘러간다. 미술 선생님이 주신 나무 그리기 과제 정도만 받아들일 뿐이다. 당연히 성적도 수직으로 추락한 모양이다. 또래 친구 사이에서 존재감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 참전용사로 추정되는 역사 교사 넥은 최악이다. 수업시간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데이빗 페트라키스라는 친구가 강하게 항의를 시작한다. 대다수는 불의를 못본 척한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소설의 핵심을 풀 수 있는 단서가 있는 게 아닐까. 학교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마야 안젤루의 책을 금서로 지정한다. 그녀는 이제 멜린다의 우상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놈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멜린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의 고통스러운 회상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왜 멜린다는 자신이 잘못한 일도 아닌데 그 일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흉포한 포식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그런 멜린다가 절실하게 느끼는 고통의 본질에 접근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되돌아온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격렬한 저항을 시도하는 순간 멜린다는 비로소 고통으로 해방되게 된다.

 

멜린다에게 조력자들이 많이 필요했지만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교사들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실을 스스로 가둘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슬아슬한 위기를 벗어나 엔딩으로 치닫는 구성은 <스피크>의 백미였다. 저자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의기투합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통을 딛고 도약하는 멜린다의 승리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픽 노블이 갖는 놀라운 흡입력에 371쪽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다시 한 번 정독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마야 안젤루, 줄리아 알바레스, 나다니엘 호손 같은 작가의 작품이 갖는 함의에 대해서도 말해보고 싶지만, 안젤루 여사의 자전적 글 외에는 읽어본 게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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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12-18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멋진 리뷰에 두근두근@_@;

레삭매냐 2019-12-18 13:43   좋아요 1 | URL
바보만들기에만 치중하는 교육현실에
대한 슬픈 조망도 들어 있는 수작이
라고 생각합니다.

강추합니다.

psyche 2019-12-20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래픽 노블로 나왔군요.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미국은 동네마다 학제가 달라 그런지 그냥 1학년에서 12학년까지로 쭉 쓰더라고요. 같은 6학년도 어디서는 초등학교이고 어디서는 중학교이고 그렇거든요. 그래도 보통 고등학교는 4년이라 9-12까지가 고등학생이고 나이로 보면 9학년은 한국의 중3이라 보면 됩니다.

레삭매냐 2019-12-20 10:53   좋아요 1 | URL
역시 그만큼 지방분권의 나라라는
말이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의 학제는 복잡한 것 같아요.
우리와는 달라서 그럴까요?

이제 곧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을 읽을 계획인데, 교육 문제에 대
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psyche 2019-12-20 23:01   좋아요 1 | URL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은 처음 들어보는데 책 소개보니 흥미롭네요. 레삭매냐님은 정말 다양한 책을 읽으시는 거 같아요. 대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