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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평점 :
초보 운전을 하던 시절, 접촉사고를 냈었다.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멀쩡하게 서 있는 차를 부주의로 들이 받았으니. 다행히 인사사고는 없었고, 100% 나의 과실로 처리했다. 그 다음에는 사고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 사고가 날 뻔 했으나 정말 종잇장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빗겨간 적도 있다. 모든 건 순간의 판단이 빚어낸 실수에서 비롯된다.
1991년에 발표된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교통경찰의 밤>을 만났다. 모두 6건의 교통사고와 연루된 사건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내가 여섯 편의 단편에서 뽑아낸 핵심 주제는 사소한 실수에서 발화된 교통사고 그리고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아 사적 응징에 나선다는 점이다.
<천사의 귀>에는 교통사고로 오빠를 잃은 앞을 볼 수 없는 소녀가 맹인 특유의 기억력과 청각을 이용해서 사건 해결에 나선다는 설정이다. 놀랍다. 초 단위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소녀 앞에 교통경찰들은 무너진다. 여기에 단점은 우리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작가는 파고든다. 가해자도 그리고 피해자도. 소녀 나호의 도움으로 사건이 해결되는가 싶지만, 후반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이 대기하고 있다.
나의 경우처럼 정지 상태의 차를 들이 받아 100%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가해자의 경우,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을 덜기 위해 발뺌을 하기 마련이다. <중앙분리대>에서도 그렇게 법망을 빠져 나가려는 가해자에게 사적 응징을 가하는 설정이 등장한다. 실제 현실세계에서도 수년 전에 일가족이 노상주차 때문에 큰 사고로 이어진 경우가 있지 않은가. 길 위에서 벌어지는 대응 불가한 상황들은 정말 답이 없어 보인다. 법과 원칙을 잘 아는 이들일수록, 법망의 빈틈을 이용해서 빠져 나가는 수가 많다는 걸 우리는 현실에서 잘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선택적 정의는 더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험한 초보운전>과 <건너가세요>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책에서 줄기차게 제기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사적 응징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실 가해자의 양심에 호소하지 않는 이상, 아마도 소설 속의 그들처럼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상실을 교묘하게 이용한 피해자의 복수도, 유지를 자신의 별장으로 유인해서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너도 한 번 당해봐라’는 식의 보복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통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리지 말아 줘>는 교통사고와 관계된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하루미와의 불륜을 아내에게 걸린 사이토는 아내를 죽이기 위해 내연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마신 커피 캔을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아무 생각 없이 내던진다. 문제는 그 캔에 맞아 뒤따라 달리던 차에 탔던 여성이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됐다. 이것도 하나의 교통사고일까. 인사사고라면 몰라도 교통경찰들의 반응은 어디서나 뜨뜨미지근할 따름이다. 사이토가 마련한 범죄계획은 엉뚱한 피해자에게 적용되고, 피해자 커플은 범인 추적을 포기하지만 역시 우연의 작용으로 사이토의 범죄가 발각되고 처벌을 받게 된다. 반전과 결국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단죄에까지 거의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역시 타인에게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경고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작이다.
마지막 <거울 속에서>. 야무진 예비신부 야스코와 하와이 신혼여행을 앞두고 있는 오다 형사는 교통사고로 스쿠터 운전을 하던 19세 청년이 죽는 인사사고를 맡게 된다. 평범해 보이는 사건에서 무언가 의심쩍은 상황을 접한 오다는 적당하게 마무리된 사건을 파헤쳐 결국 진실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단서는 우측통행이라는 한 단어였다. 추리에 살을 붙이고, 가설에 대입해서 마침내 완벽 범죄로 위장될 뻔한 사건을 명쾌하게 밝혀내는 장면에서는 속이 다 시원했다. 마지막에 하와이에 가서 렌터카는 그만 두자는 제의로 마무리하는 장면이 얼마나 멋지던지.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선택적 정의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공평무사한 정의를 원한다. 과연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그러할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통경찰의 밤>의 피해자들처럼 사적 응징에 나서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명인에게는 시스템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다만 그것은 운영하는 이들의 생각이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일 뿐. 그래서 집행자들이 가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정의의 집행자 행세를 그만 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