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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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북글을 쓰기 전에 두 가지를 하고 싶었다. 하나는 1989년에 코스타 가브라스가 발표한 <뮤직 박스>라는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최근에 출간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평전을 읽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전자는 가능했지만, 후자는 시간 부족으로 미처 하지 못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와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데뷔작 <저지대>를 통해 그녀의 작품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았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가장 최신작인 <숨그네>를 만났다. 보통의 독서 속도라면 금세 다 읽으리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깨져 버렸다. 그녀의 글에 담긴 숨결의 무거움을 탓이었을까? <숨그네>를 읽는 동안, 나의 책읽기 진도는 여느 때와 비교해서 현저하게 느려졌다. 짤막한 이야기가 빚어내는 편린을 긴 호흡으로 읽어야 했다.

 

<숨그네>의 주인공은 헤르타 뮐러와 공동 작업을 하던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문학적 페르소나 레오폴드 아우베르크다. 히틀러의 충실한 파시스트 동맹국으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루마니아는 2차 세계대전 말기, 서쪽으로 맹렬하게 진격하던 러시아에게 점령당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살던 독일계 주민을 모두 러시아 수용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겨울바람이 그렇게 매섭게 불던 어느 날, 레오를 포함한 일단의 작센족들은 가축 화차에 실려 러시아의 모처로 끌려간다.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레오는 배고픈 천사심장삽을 벗 삼아,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곱씹으며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다. 한창 자랄 나이의 청소년에게 목숨을 겨우 연명할 정도의 빵과 양배추 수프는 턱없이 부족한 음식이었다.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분신인 레오는 허기를 이기지 못해, 음식쓰레기를 뒤져 감자껍질을 집어 먹는다. 아마 그는 한 개의 감자조각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기꺼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아넘겼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가졌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욕망은 절박했고, 어떤 방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서 그의 절망은 커져만 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지상과제는 그들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향수마저도 사치로 치부해버린다.

 

먹는 것만큼이나 생존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입성 또한 레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차례로 죽어나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데 추호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인간성 말살의 현장을 헤르타 뮐러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들에게 닥친 걱정은 시체가 사후경직을 일으키기 전에 신속하게 쓸 만한 옷가지를 챙기는 것이었다. 도대체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작가는 생생한 육성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런 비참함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점점 더디어져 간다.

 

한편, 생존을 위한 어떤 기술도 가지지 않은 레오는 수용소의 기계적인 노동을 자신이 그리는 판타지 속의 예술로 승화시켜 나간다. 그런 판타지야말로, 권태와 무료가 지배하는 수용소 생활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까? 이제는 친근해진 배고픈 천사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위를 맴돌고 먹는 것과 추위를 피하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만이 악다구니를 부리는 수용소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공포는 종종 한밤중에 간수에게 불려나가 담벼락에 서는 섬망(譫妄)으로 이어진다. 가족이라는 희망의 끈은, 어느 날 어머니가 보내준 대리형제의 사진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갓 태어난 자신의 대리형제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망상이 레오를 괴롭힌다. 과연 이런 참혹한 수용소의 현실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고향으로 복귀하더라도 과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오랜 교정 생활 끝에 출소한 늙은 재소자가 사회를 등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궁금하게 했던 것은, 레오와 다른 작센족들이 과연 아무 죄 없이 러시아로 끌려갔을 까라는 의문이었다.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이었던 쿠르트 발트하임, 현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좋은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귄터 그라스의 과거에 드리워진 나치의 그림자가 버티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더더욱 <숨그네>의 북글을 쓰기 전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뮤직 박스>를 보고 싶었다. 자신의 가족에게마저 자신의 끔찍한 전쟁범죄를 철저하게 위장한 어느 파시스트 전범의 이야기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나에게 전후 억울하게러시아의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의 고통을 당한 무고한 양민들에 대한 동정심과 더불어 나치 군대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재건을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벌충하기 위해 점령국 주민들을 강제 동원한 러시아에 대한 이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도 17세 레오가 체험한 5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단순하게 시대의 비극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짊어져야만 했던 버거운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이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숨그네>를 다 읽고 나서, 자꾸만 미뤄오던 숙제를 다 마친 것 같이 후련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헤르타 뮐러는 귄터 그라스 이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German writer)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왠지 그녀의 조국 루마니아가 휘발해 버린 느낌이 들어서 아쉬운 마음이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독일 작가로 귀결이 되었던 것 같다. 숨그네, 심장삽, 볼빵 같이 그녀가 구사하는 독일식 조어(造語)가 과문한 독자에게 원전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작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노벨문학상 수상작, 역시나 어렵다.


[뱀다리] 9년 전에 노벨상의 후광으로 그녀의 작품들이 연달아 5권 소개가 된 뒤, 저자의 신간이나 구간 출간소식이 들리지 않아 아쉽다. 그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신간이 계속 나오는 데도 소개가 되지 않아 더 그렇다. 창비에서 올 12월에 대작 <까떼드랄에서의 대화>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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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10-02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지대‘를 읽었는데 딱히 기억나는 내용이 없네요. 제 독서가 워낙 깊은 읽기가 부족해서 늘 아쉽습니다. 지난 주말에 읽은 ‘그날의 비밀‘을 보니 직접적인 학살이나 유대인말살정책에 관여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전범‘들이 집유로 풀려나서 잘 살았더라구요. ‘작센족‘들의 유무죄에 대한 의문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레삭매냐 2019-10-02 09:27   좋아요 1 | URL
작센 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 가게 되었다
고 하는데...

안슐루스나 나치의 체코 병합 당시
연도에서 환호하던 독일계 주민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습니다.

헤르타 뮐러의 책들은 역자가 모두
달라서인지 몰라도 같은 작가가 쓴
책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뒷북소녀 2019-11-05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리커버판. 저는 리커버판 별로 안 좋아해서요...
이 작품은 저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찜해뒀던 책이랍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일시적인 관심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독자도, 출판사도요.^^

레삭매냐 2019-11-08 16:52   좋아요 0 | URL
ㅋㅋ 사실 이 리뷰도 표지갈이
아니 리뷰갈이랍니다.

헤르타 뮐러의 책들은 노벨상 수상
즈음해서 왕창 읽었었는데 저하고
는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게다가 그 뒤에는 신간 소식도 없고.
아마 그렇게 가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