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도
산티아고 감보아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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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송병선 교수의 초역으로 콜롬비아 보고타 출신 산티아고 감보아의 <밤 기도>가 소개됐다. 나는 다시 한 번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괜찮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밤 기도>는 그동안 10편의 소설을 발표한 감보아 작가가 지난 201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감보아 작가와 한국의 인연은 3년 전에 그가 문학 수다를 위해 서울국제문학축제에 참석한 것으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시인과 비행사>라는 짧은 에세이가 소개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판사들에서 사전에 준비해서 책이라도 출간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09년에 발표한 <네크로폴리스>라는 작품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감보아 작가의 작은아버지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우리와 인연이 있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밤 기도>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이다. 두바이에서 방콕을 거쳐 도쿄로 가려던 콜롬비아 출신 27세 청년 철학자(국립대학 박사 과정) 마누엘 만리케가 태국 경찰에 의해 마약 소지죄로 체포된다. 지난 24년 동안 작가이자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활동해온 델리주재 콜롬비아 영사는 대사관계가 없는 태국의 자국 교포를 구하기 위해 정부의 명령으로 방콕으로 향한다. 사건을 맡은 태국 검사는 처음부터 까놓고 섹스관광과 그 이상을 위해 자국을 찾은 외국인들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는다. 어쨌든 방쾅 교도소에 갇힌 피의자 만리케는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인정하면 비교적 관대한 30년형을 아니면 사형도 선고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영사는 전해 듣는다.

 

소설의 진행은 영사, 만리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전환 수술자로 보이는 세 명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패멀라 앤더슨처럼 되고 싶어하는 세 번째 인물에 대한 정보는 모호하기만 하다. 영사의 진술이 현재 태국 교정시설에 구금된 만리케를 구하는 데 집중된다. 영사는 만리케와의 첫 대면을 통해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청년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닫는다. 반면 만리케의 진술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별 볼 일 없는 은행원으로 식탁의 독재자이자 콜롬비아 대통령이자 우파 민병대의 지도자였던 알바로 우리베를 지지하는 아버지 알베르토에 대한 회상으로 가득하다. 아슬아슬한 콜롬비아의 평범하고 아슬아슬한중산층 가정 출신의 소년 마누엘에게 삶은 무의미해 보일 따름이었다. , 여기서 중요한 인물에 대한 소개가 하나 빠졌군. 마누엘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자신의 누나 후아나. 그녀 때문에 마누엘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발산하는 그라피티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후아나는 국립대학 사회학과로 진학하면서 파시스트 아버지와 개인적 전쟁을 시작한다.

 

후아나가 거침없이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아버지는 그녀를 게릴라로 간주한다. 이것을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으로 보아야 할까. 다시 영사가 개입해서 마누엘의 스승이었던 자신의 친구 구스타보의 도움으로 마누엘의 과거를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마누엘의 과거는 정말 클린 그 자체였다. 그는 몇 년 전 실종된 누나 후아나를 찾기 위해 그야말로 세계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모험을 시작했고, 방콕에서 횡액을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누엘은 왜 다음 기착지였던 도쿄로 가려고 했는지 궁금해진다. 감보아 작가는 희미하지만 강력한 단서라는 떡밥들을 통해 <밤 기도>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바로 후아나의 실종이었다. 후아나가 실종된 것은 200811월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차라리 공개적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나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종이라는 죽음과 삶의 경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희망고문이라는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 후아나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그녀가 게릴라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장녀의 실종에 절망한 알베르토는 비로소 우파 정권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근본적인 변신을 하게 된다. 마누엘은 그런 아버지를 난생 처음 존경하게 되지만, 어머니 베르타는 그런 남편을 조롱한 기회만을 노린다. 개인의 정치적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보아 작가는 만리케 가정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3년 만에 실낱같은 단서를 추적해 가던 마누엘은 누나 후아나가 도쿄에서 에스코트 서비스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키토와 상파울루, 두바이, 방콕을 거쳐 도쿄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후아나가 했다는 사실에 독자는 마누엘 역시 비슷한 코스를 밟으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27세 청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일견 무모해 보이는 누이 찾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소설 <밤 기도>의 진짜 주인공이 마누엘 만리케가 아니라 어쩌면 작가 출신 외교관인 델리 영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외교관들에게 콜롬비아 영사 같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을까? 나는 왠지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직접 경험해 봐서 잘 알지만 말이다. 자신을 파산으로 몰아넣을 지도 모를 도쿄행을 감행하고, 대사관계가 없는 이란에서 다른 목적을 지니고 이동대사관 서비스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테헤란으로 건너가는 그의 열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울러 마누엘이 아주 결백한 사나이가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도대체 내가 간과한 진실은 무엇이고, 마누엘의 부탁으로 후아나 구하기에 나선 영사는 목적을 이룰 것인가.

 

나는 감보아의 책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별이 된 로베르토 볼라뇨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일찍이 볼라뇨가 자신의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보아 역시 무수한 내가 전혀 들어 보지도 못한 숱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을 소개한다. 대표 주자는 스페인 출신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이었다. 나는 순전히 감보아 덕분에 그의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호르헤 볼피의 이름을 책에서 발견하는 순간, 너무나도 반가웠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자신이 번역하고 싶은 책을 우선적으로 번역한다는 역자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구원은 존재하는가. 내가 타인을 구원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나 스스로의 구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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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9-23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괜찮은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일이 레삭매냐님이 알라딘에서 맡은 바 역할 같아 보일 때가 많아요. 오늘도 한 건 하시네요.

전 처음에 감보아를 김보아로 읽고, 송병선 쌤이 한국어를 스페인어로 초역한 건가보다 생각했지 뭐예요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9-23 09:48   좋아요 0 | URL
역시 우리의 비어 아니 호프
시오님의 센스란... 김.보.아. 따악

그나마 영미권 작가는 어줍잖은
영어로 더듬더듬 한다지만,
그외 문화권에 대해서는 정말 노답
이지요.

순전히 출판사와 역자에 의존해야
하는 시츄가 참 거시키하지요.

겨울호랑이 2019-09-25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는 이들에게 인정받기는 쉬워도, 가까운 이들에게서 인정받는 이는 극히 드문 것처럼, 타인에 대한 구원보다 자신의 구원이 어려움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레삭매냐 2019-09-25 10:00   좋아요 1 | URL
성경에 나오는 문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선지자/예언자가 오히려 자신의 고향에서
는 인정받지 못한다였던가요...

본질적으로 삶이라는 게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길일 지도 모르는데, 나를 구원하는
일에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
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