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년의 삶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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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바이어스 울프에 대해 알게 된 게 벌써 3년 전이었나 보다. 그 당시에만 하더라도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서 일단 원서로 그의 책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올드 스쿨>, <이 소년의 삶> 그리고 <질문의 밤> 등을 사 모았다. 일부는 읽기도 했고, 오늘 막 읽은 <이 소년의 삶>은 읽다 말아서 그런지 기시감에 아주 반가웠다. 달궁 모임으로 알게 된 브랜던 친구가 추천해서 알게 된 작가가 바로 토바이어스 울프였다.

 

토바이어스 울프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올드 스쿨>에 앞선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올드 스쿨>이 동부의 소위 말하는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면, 소년 토비가 환골탈태하기 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게 바로 <이 소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 아서와 이혼한 토비의 엄마 로즈메리는 둘째 아들 토비를 데리고 플로리다의 새러토가에서 출발해서 유타의 솔트레이크시티 그리고 워싱턴의 웨스트시애틀과 치누크에 이르는 방대한 여정을 감행한다. 로즈메리는 지지리도 남자 복이 없다고 해야 할까. 토비의 아빠 아서부터 시작해서 만나는 남자들이 하나 같이 자신에게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이들이 아니라 고통의 근원이었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치누크에 사는 드와이트였다.

 

드와이트는 애 딸린 이혼녀 로즈메리와의 새 출발을 원하며 그녀에게 청혼한다. 토비라는 이름 대신 잭으로 불리기 원하는 영특한 소년 토비는 불길한 조짐을 알면서도,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드와이트와 로즈메리의 결합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년의 고난이 시작된다.

 

드와이트는 철저하게 위선자였다. 본색을 드러낸 계부의 학대는 끝이 없었다. 11살 먹은 소년에게 수많은 마로니에 열매를 까게 하고, 토비가 어렵사리 신문 배달을 해서 번 돈을 갈취하고, 엄마의 이전 남자친구이자 전직 군인인 로이에게 받은 윈체스터 소총을 쓸모없는 개와 바꾼다. 유사가정을 원했던 소년 토비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화목한 가정에 대한 희망과 계부의 인정을 바랐던 모양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비극이 시작된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훗날 토바이어스 울프 작가는 성인이 되어 그 시절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았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어쩌면 울프 같은 글쟁이에게 남들이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이야말로 귀한 글감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트라우마겠지만 나중에는 또 밑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쨌든 소년 토비의 고난은 멈출 줄 몰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렵사리 들어간 힐 고등학교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입대해서 베트남의 전쟁터로 향한다. 아마 이 부분은 그의 회고록 3부작 가운데 <파라오의 군대>에서 다뤄지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곳곳에서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언제 나올 지도 모를 <파라오의 군대>가 너무 궁금하다.

 

비행 청소년이 될 수밖에 없었던 토비의 돌파구는 다른 곳에서 찾아오게 된다. 바로 프린스턴에 진학한 형 제프리와 연락이 닿으면서 아버지와 형이 그랬던 것처럼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 진학을 꿈꾼다. 철저하게 속물이었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던 토비는 자신이 회고록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뛰어난 거짓말쟁이에 도둑이었다. 어쩌면 이제는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하나가 된 토바이어스 울프의 스토리텔링에는 바로 이런 바탕이 절실했던 게 아닐까 뭐 그런 추론도 해본다.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명문대는 들어가기도 쉽지 않지만 진짜 승부는 그전 단계인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서 이미 결판이 난다는 걸 소년은 깨달았다. 그런데 싸움질에 온갖 비행으로 무장한 토비가 무슨 수로 그런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단 말인가. 토비는 추천서와 성적표를 조작하고, 시애틀에 사는 하워드 씨마저 철저하게 속여서 마침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한다. 놀랍다 놀라워. 아무리 전후 세대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스토리텔링은 지금처럼 사회가 견고한 시대에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이젠하워와 맞붙은 아들라이 스티븐슨이나, 토비의 엄마가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섰던 케네디 같은 이름들이 등장하는 50년대 후반의 풍경은 아무래도 낯설다. 게다가 미국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당대 차량이나 텔레비전 커머셜 같은 부분도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전에 읽기 시작한 <늑대의 역사>에 등장하는 냉전 시대 보수주의에 경도된 교사들의 모습도 등장해서 흥미로웠다. 베를린이 아니라 모스크바로 진격해야 했다는 신박해 보이는 주장들 말이다. 꼬마 소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총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헌법 수정 조항이 언론의 자유 대신 무기를 소지할 권리라고 부추기는 선생님의 발언은 또 무언가. 얼핏 총기 사고로 얼룩진 미국 사회의 단면을 엿보는 느낌도 들었다.

 


소설을 읽다가 우리 브랜던 친구가 최고의 단편으로 꼽은 토바이어스 울프의 <Bullet in the Brain>15분 짜리 단편영화를 유투브로 봤다. 예전에 단편집으로 읽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 they is, they is 가 도대체 뭔 말인지 브랜던 친구에게 물었는데 한창 술 마시면서 듣는 바람에 또 이해를 하지 못했다.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어쨌든 <이 소년의 삶>은 대단한 작품이었다.

 

[뱀다리] 오래 전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영화도 한 번 보고 싶다. 그나저나 도대체 킹스턴 트리오의 <늪지>는 원제가 뭘까. 역시나 원서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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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7-17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저도 이 책 기다리고 있었는데 레삭매냐 리뷰 읽으니 설레이네요. 사실 토바이어스 울프는 유튜브에서 카메라 앞에서 장시간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고백한 인터뷰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한 작가였어요. <올드스쿨> 참 좋더라고요.

레삭매냐 2019-07-17 21:09   좋아요 0 | URL
유튜브 토선생의 인터뷰도 한 번 찾아 봐야
겠네요 :>

책은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속히 <파라오의 군대> 그리고 단편집들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회고록 3부작의 완간
을 고대해 봅니다.

서니데이 2019-07-18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휴가 잘 다녀오셨나요.
시원하고 좋은 밤 되세요.^^

레삭매냐 2019-07-19 07:08   좋아요 0 | URL
휴가 전반부에 비가 오긴 했지만
잘 다녀왔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