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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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줄리안 반스다. 난 이제 아무리 줄리언 반스의 팬이 아니라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줄리언 반스의 책을 꾸역꾸역 읽고 있는데 어찌 그의 팬이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부엌의 현학자(pedant)가 이번에 도전장을 들이민 분야는 바로 요리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 보자, 요리는 과학인가? 아니면 예술인가? 부엌에서 나의 주임무는 설거지다. 요리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지난 이십년 동안 꾸준하게 설거지를 해와서 이제는 거의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신할 수 있다. 이제는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는 꼴을 도저히 참고 넘길 수가 없다. 예전에 아는 동생이 룸메이트와의 불화로 설거지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하던데 진짜 개수대에서 징그럽게 생긴 그런 벌레들이 출몰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일찍이 유시민 선생은 가사 중에서 요리만이 유일하게 창조적인 일이라고 하셨었다. 요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엌의 현학자는 글쟁이답게 책에 등장한 레시피의 도움을 받은 모양이다. 문제는 책에 나온 레시피 대로 만든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만들 수가 없다는 점이다. 600개나 되는 토마토를 반으로 가르고 씨를 빼는 짓을 나는 도저히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양파의 사이즈도 천양지차가 아니던가. 서커스단의 거인의 한 주먹과 나의 한 주먹이 어찌 같을 수가 있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가장 어려운 미션은 바로 ‘적당히’가 아닐까. 요리에 맞는 적당히란 용어는 최소한 가스레인지 앞에 이십년 정도는 서 본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 이 장면에서는 왜 나는 최현석 솁의 허세 소금치기 신공이 떠오르는 걸까.

 

에두아르 드 포미안이라는 프랑스 이단아이자 선동가적인 요소를 다분히 가진 요리사를 인용하는 줄리안 반스를 만나 보자.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프랑스 코스 요리가 사실은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비밀을 밝혀낸 사람이라고? 이렇게 혹할 수가 있나 그래. 여러분 그런 대가들이 소개하는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니, 가볍게 무시하고 저항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줄리언 반스가 이 요리 에세이에서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 그리고 에세이에는 진짜 띵언들도 넘쳐흐른다. 자고로 업소용 요리도구와 집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요리도구들이 다르기 마련이다. 중국집에서 활활 타오르는 직화를 집에서 어찌 마련한단 말인가. 그러니 당연히 예의 ‘불맛’이 날 리가 없지. 그래서 줄리언 반스는 어떤 음식의 경우에는 집에서 요리해 먹지 말고, 식당에 가서 먹을 것을 정중하게 권한다.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특히 디저트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아니 밀푀유 같이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디저트를 아무리 친절한 레시피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아, 예전에 용산의 세탁소 2층 디저트 전문점에서 만난 밀푀유를 다시 맛보고 싶다. 가격은 그날 네 명이서 먹은 저녁값에 아마 육박했다지. 뭐 그땐 그랬지.

 

솔직히 말하자. 나는 줄리언 반스의 이번 요리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어떤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흠뻑 매료되었다. 문학을 인용해 가면서 부엌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는 현학자가 마음에 들었단 말이다. 동시에 그동안 내가 이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종의 편견이 잘못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일거에 교정이 되진 않겠지만.

 

“요리는 있는 것을 가지고 때우는 것”이라는 주장에 그 어느 때보다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우리 주방부터 혁식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많은 요리 도구들이 도대체 왜 필요하지? 사실 지난 이사를 감행하면서 부엌 정리를 남모르게 하면서 안 쓰는 도구들을 상당 부분 처치해 버렸다. 줄리언 반스가 그랬던 것처럼 남자답게! 그런데도 여전히 쓰지 않는 도구들이 넘쳐흐른다. 부엌에 미니멀리즘이라도 도입해야 하는 걸까. 언젠가 쓰게 될 거라는 헛된 망상에 젖어 버리지 못하니... 대나무 젓가락(상당히 유용하다)을 포함해서 상당히 많은 나무젓가락들이 서랍장을 채우고 있다. 말을 말자.

 

지인들에게 네 코스 요리를 대접하면서 가정에서 만들기 쉽지 않은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를 사다가 공급하는 건 속임수가 아니라고 했겠다. 그런데 이 부엌의 현학자는 대범하게도 메인 요리를 인근 이탈리안 델리에서 공수했다. 포르치니 라자냐를 통째로 델리에서 자신의 식기에 담아낸 것이다. 요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살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대화와 소통 그리고 나눔을 위한 것이라면 이런 속임수 정도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맛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지. 이런 속임수는 나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써먹어야겠다. 부엌의 동지들이여, 줄리언 반스의 요리 에세이를 읽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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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5-24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반스에 대한 편견 비스므리한 것이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더는 신간을 만나도 반갑지가 않던데... 음~~~ 이번 에세이는 뭔가 좀 다른 것 같네요. 제목부터가 수상해서 쳐다도 안봤는데 리뷰보고 급 궁금해졌어요~ ㅋㅋㅋ
저도 간만에 주말에 주방 정리좀 해야겠어요. 제 서랍장도 한 칸엔 나무젓가락만 한가득...ㅋㅋ

레삭매냐 2019-05-24 16:45   좋아요 0 | URL
어찌어찌 하여 줄리언 반스의 책을 꾸준하게
만나게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연세가 드시매, 좀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부엌의 현학자>는 2003년에 나온 책이라
그런진 몰라도 빛나는 유머가 돋보이네요.

뒷북소녀 2019-06-03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조리도구들은... 없으면 또 아쉽단 말이죠.

레삭매냐 2019-06-03 13:10   좋아요 0 | URL
있으면 안 쓰구, 없으면 아쉬운 ^^

제가 요리에는 젬병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