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한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연말 연휴를 보내다 보니 출근한 뒤의 후유증이 어마무시했다. 이런 된장 맞을...
노는 건 좋으나, 업무 복귀해서 정상보다 더 빡시게 뛰려니 죽갔더라.
뭐 그래도 시간을 흐르고 흘러 주말이 됐고, 내일 또 다시 출근이다.
쓰고 보니 무간지옥이로구나.
새해가 되니 여기저기서 새해 기대작이니 어쩌구를 열심으로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책쟁이다 보니 궁금해서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는데, 기성 신문들의 논조는 대동소이하다. 아무래도 서로 동업자 마인드로 우라까이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엇비슷하다. 하긴 국내 문학시장은 좁아 터져서, 옆 동네에서 방귀뀌는 소리가 죄다 들리니 그 바닥에 엎어져서 생업으로 삼는 이들의 글발도 뭐 색다를 게 없겠지 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닌 듯 싶다. 뭐 다른 게 있어야 다른 썰을 풀지!
작년에 드디어 충격적으로 국내 작가들의 책보다 이웃 섬나라 작가들의 책이 더 많이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출처는 모르겠다. 특유의 귀차니즘 덕분에 검색을 하면 찾을 수도 있겠으나 그냥 패스하도록 하자.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가뜩이나 국내 문학시장이 위축된다고 하는 마당에 국내 문학이 추월당하는 수준에까지 왔단 말인가.
그냥 내 느낌으로 적어 보겠다. 전혀 객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그냥 한낱 책쟁이의 넋두리로 보아 주시면 될 듯 싶다. 하나의 날적이 정도로 봐도 전혀 무방하다.
예전에 섬나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나온다 하면 줄을 서서 책을 사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그마저도 맛탱이가 가 버려서, 읽다만 마지막 책은 아직도 진도를 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나. 이 양반이 드디어 판타지의 세계에 입문하셨구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국내 작가 중에서 그만큼 구매력을 촉진할 만한 작가나 작품이 있었던가?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썰은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노라.
나와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최근에 나온 황정은 작가의 책도 심드렁하다. 정유정, 장강명, 권여선 등등의 작가들이 신작이 예고되었는데 전혀 무관심하다. 오히려 점점 더 오른쪽으로 치닫고 있는 우엘벡의 신간 <세로토닌>이 궁금할 따름이다. 신문기사를 따르면 거의 극우 또라이 작가로 보인다. 어쨌건 이 정도 화제를 불러올 정도의 작가가 없다는 게 우리 문학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아무래도 전자에 무게추가 기우는 것 같다) 이슈 파이팅이 되어야 문단 전체가 좀 들썩이고 그럴 텐데, 아예 그런 첨예한 문제들에 대한 글쓰기는 그야말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된 모양이다. 모두가 외면하는 것 같아 보인다. 아니면 블랙리스트 시절 정권 차원의 갈굼에 대한 반대급부일까. 한없이 개인의 문제만 파고드는 침잠의 서사도 너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수박겉핡기식의 라이트노벨의 유행도 한몫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느 신문의 신춘문예에서는 타인의 블로그 글을 베껴서 투고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고, 표절을 표절이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판 불호부호형 개그빅리그가 목전에서 진행 중이다.
독자들의 지갑을 화끈하게 열게 할 만한 깊이 있으면서도 매력적인 서사물의 부족도 하나의 문제겠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종의 다양성이 아닐까. 그동안 국내문학계는 오로지 순문학만이 장땡이다라는 순혈주의를 고수해 오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신예작가들이 유일하게 등단할 수 등용문의 요지를 지키는 수문장들 역시 줄기차게 순문학만을 애정해 왔다. 그러니 좀 더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 문학들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물론 순문학의 순기능에 대해 태클을 걸자는 게 아니다. 순문학은 순문학 대로, 그리고 장르물을 비롯한 기타 장르들도 숨쉴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날 읽어봐야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타인의 성공담과 자기개발서는 무엇하러 시간과 돈을 들여 읽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들처럼 개발이 덜 되어서 이 모양 이 꼴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오죽하면 태극기부대에 가까운 우리 사쪼까지 나서서 인문학 타령을 해대는 판이 되었다. 인간과 그들이 빚어내는 문학에 대한 사랑 없이 오로지 인문학으로 포장된 신상이 주는 달콤한 과실만 챙기겠다는 속셈이 너무 빤히 보여서 속이 좀 좋지 않았다. 어떤 감언이설이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매출증대로 귀결되는 결말이 너무 클리셰이스럽지 않은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다. 한국 사람들은 왜 점점 더 책을 읽지 않게 되는가? 역설적으로 램프의 요정 북플이나 인스타에 등장하는 수많은 강호의 책쟁이 고수들은 연간 수백권의 책을 섭렵했다며 자랑질을 일삼는다(돌이켜 보면 나도 그런 닝겡 중의 하나처럼 보인다). 그 어떤 즐거움보다 강력한 독서가 제공하는 극강의 쾌락을 모르는 이들에게, 책읽기의 훈련이 되지 않고 랜선에 떠다니는 짤의 즐거움만이 유일한 쾌락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 고민해 볼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 이렇게 가다간 정말 기해년은 한국 문학 몰락의 원년으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