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 개정판
장한식 지음 / 산수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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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눈여겨 오던 책을 지난 주말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장한식 작가의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가 바로 그 책이다. 도도한 역사의 미스터리 중의 하나로, 고작 100만 남짓한 변방의 오랑캐가 1억 인구를 자랑하는 명나라를 정복하고 중원의 지배자가 되었나 하는 의문점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우리는 왜 병자호란으로 욱일승천하는 만주국, 훗날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고 청나라는 중원의 패자가 되었는가. 21세기 시진핑의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시대에 우리가 꼭 한 번 되짚어 봐야할 역사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KBS기자 출신 장한식 저자는 역사학자 찜 쪄 먹는 실력으로 16세기 후반, 인삼전쟁부터 시작된 농업국가 조선과 상업국가 여진족의 만주국(일본의 괴뢰국 만주국과 다른 나라다)의 대결로부터 시작해서 대국 명나라에서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국가 정책이 중원공략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동아시아 질서 재편기를 정확하게 타격한다.

 

우선 출발점은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으로 인한 해양무역의 발전과 신대륙에서 채굴된 막대한 양의 은광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16세기 유통과 상업의 혁명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명나라는 세계 최강국이었다. 명나라에서 생산되는 비단을 비롯한 온갖 물자들은 서양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스페인 상인들은 앞 다투어 중국과 거래를 하고 싶어했고, 그 결과 신대륙의 어마어마한 은이 중국으로 향했다. 일조편법으로 대표되는 은본위제는 명대의 상업과 유통을 촉진시켰고, 국가재정 또한 번영일로를 달리게 되었다.

 

한편,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이었던 임진왜란을 즈음해서 만주 여진족의 족장 누르하치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원래 상인으로 출발한 누르하치는 조부와 부친을 명나라 장수 이성량의 판단착오로 잃게 되면서, 대국 명나라를 원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명나라의 상업 부흥은 중국인들이 선호하던 백두산 부근에서 채취한 인삼 거래에 절호의 기회를 부여했다. 명나라의 막대한 은이 여진족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은이라는 자산의 축적에 힘입은 누르하치는 팔기로 대변되는 군사력을 더해 세 개의 부족으로 나뉜 여진 통일에 나선다. 여진족을 복속하고 명나라와의 본격적인 대결에 나서게 되는 1619년 사르후 전투는 동아시아 질서 개편의 일대 신호탄이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누르하치는 국가 목표는 명나라의 기미체제를 벗어난 만주 지방에 독립국가 건설이었다. 욱일승천하는 기세의 동방 오랑캐에 대해 명나라 조정에서 사르후 전투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수성에 집중했다. 그동안 누르하치의 독점무역권을 보장하는 칙서경쟁은 사르후 전투 이후 명에서 만주국과의 교역을 금지하면서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유목 수렵민족인 여진족의 생산성은 농경민족인 한족의 그것에 비해 절대적으로 떨어졌다. 부족국가 정도로만 머물고 싶다면, 상시적인 전시 약탈경제로 만족하겠지만 만주의 독립국가 더 나아가서는 중원 경영이라는 웅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대국 명나라와의 교역이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중원의 진상(晋商)들은 조국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명리에 더 중점을 둔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 특수는 상인들에게는 호기였다. 임진왜란이 첫 번째 전쟁 특수였다면, 명청 교체기의 막대한 군자금 투하는 진상들에게는 축복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전쟁이 일본 기업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홍타이지가 등장하기까지 너무 서론이 길었다. 만주국의 창업군주 누르하치는 중원 공략에 나섰다가 영원성에서 버티는 명의 명장 원숭환의 저항과 홍이포라는 당시 핵폭탄급 무기에 가로막혀 전투 중에 부상을 입고 죽고 만다. 다음 후계자로 누르하치의 팔남이자 유력한 버일러 홍타이지가 등극하게 된다. 중원제국에서는 후계자 선정에 있어 장자상속이 원칙이라면, 유목수렵국가에서는 가장 능력이 뛰어난 자가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일로 치부되었다. 권력욕에 있어서는 누르하치의 어느 아들보다 뛰어났던 홍타이지가 세력 간의 알력과 권모술수를 이용해서 제위에 오르는 과정도 주목할 만하다.

 

누르하치에 이어 제위에 오른 홍타이지는 우선 만주족과 비슷한 성격의 유목민족이나 한 때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족을 복속시키는데 성공한다. 다음 목표는 소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쳐 후방을 위협할 수 있는 조선이었다. 정묘년에 용장 잉걸타이에게 3만 정병을 주어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조선을 따끔하게 혼내주고 형제지맹을 맺은 홍타이지는 비로소 중원 공략에 나서게 된다. 물론 홍타이지의 후금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위하는 순간부터 내부결속에 나서고, 만주족 뿐 아니라 몽골족 그리고 요동정벌 과정에서 포로로 잡은 한족들까지 아우른 팔기제로 소문난 만주 철기병을 육성해냈다.

 

현대판 선군주의 국가 후금은 총 인구의 10%가 병사들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명나라와 비교해 보면, 1,500만 명 정도가 군인이라는 것이다. 명나라 같은 농업국가에서 상비군의 존재는 국가재정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다. 병사들의 급료를 비롯해서, 그들을 먹이는 비용 그리고 군마들의 마초 따위의 비용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반면, 약탈 전시경제를 추구하는 정복국가 만주국의 경우는 다르다. 병사들에게 전쟁은 약탈을 통해 전리품을 얻고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마디로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는 것이다. 명나라 군대가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자면, 만주 군대는 상대방이 지키는 것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송나라를 비롯한 중국 제국들은 세폐를 오랑캐 국가들에게 제공했는데 이 또한 전쟁을 위한 비용으로 대치되길 일쑤였다. 한 마디로 말해 자신들이 제공한 세폐로 오랑캐들은 새로운 전쟁을 준비했다고 한다면 과언일까.

 

홍타이지와 만주 귀족으로 구성된 버일러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중원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명의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는 제국의 동방을 어지럽히는 홍타이지의 만주족에 대해 아무런 국가적 전략 없이 침략하는 대로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몽골족마저 복속시킨 홍타이지는 전통적인 서방침공 대신, 몽골족의 근거지인 막남을 통한 새로운 루트를 이용해서 금성, 북경을 공략하는 신묘한 전략을 보여주기도 했다. 명의 황성이 자금성 앞에 무적이라는 만주족의 철기병이 등장했을 당시 명나라 사람들의 충격과 공포가 어떠했을 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1636년 홍타이지는 마침내 대청의 설립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이 선언은 명나라 천하를 빼앗아 중원의 패자가 되겠다는 만주국의 새로운 국가 목표를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영명한 군주였던 홍타이지는 부친 누르하치의 만한 차별정책 대신, 만주족과 몽골족의 통혼을 통한 민족적 결합을 시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수의 한인 관료들을 등용하면서 본격적인 제국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 중에는 홍타이지의 참모로 제국의 실질적인 기초를 닦은 범문정의 존재감이 특히 부각되었다. 만주 문자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미래의 중원의 패자가 될 것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법제들을 정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형사취수제 같이 대륙의 한족들이 오랑캐의 법도라며 무시하던 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중원 공략 과정에서 요서 회랑에서 눈엣가시처럼 자신을 저지하던 원숭환을 반간계로 처치한 홍타이지는 범문정의 계책을 받아 들여 자신이 직접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자성이나 장헌충 같은 유적들의 반란을 이용한 차도살인계를 이용해서 마침내 명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실 명나라는 막대한 군비를 동북 지방에 투입하는 바람에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 결과 각지에서 유적들이 봉기해서 국가권력에 도전했지만, 유능한 장수들의 부족과 농민반란 전략의 부재로 결국 궤멸 직전에 몰렸던 이자성이 극적으로 부활해서 명나라의 숨통을 끊는데 성공한다.

 

홍타이지는 중원을 통째로 먹어 치우는 대신, 권투로 표현하자만 강력한 스트레이트나 어퍼컷 대신 지저분한 잽을 수시로 구사하면서 강력한 대국 명나라를 그로기 상태로 몰고간 것이다. 그리고 만력제 이후 몰락의 길을 걷던 명나라는 내부의 농민반란으로 자멸하게 되었다. 물론, 명나라의 자멸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홍타이지가 이끄는 청나라의 집요한 침공이었지만 말이다. 중원정복 직전에 병사한 홍타이지를 대신해서 이복동생 도르곤이 어린 순치제(6)를 대신해서 섭정왕이 되어 중국 정복을 완성한다. 물론 완벽한 중원 대륙의 복속은 강희제 시대에 완성된다.

 

<책 속의 책> 코너에서는 병자호란이라는 청의 홍타이지가 계획한 국제적 이벤트를 우리의 시각에서 풀어준다. 변방의 오랑캐 군주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홍타이지는 첫 번째 이벤트로 조선 공략을 계획한다. 명나라 천하라는 기존 질서를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조선을 철저하게 항복시키는 것은 중원 공략에 앞선 대내외적인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치욕적인 패배로 가뜩이나 현실파악을 하지 못하는 척화론자들을 자극해서 현실적이지 않는 옥쇄전을 택하는 대신, 나름 종주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군주 이종을 복속시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홍타이지의 12만 대군은 압록강을 건넌다.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조 최고의 못난 임금 인조는 즉위 기간 동안 세 번이나 수도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는 신기록을 세운다. 문신 위주의 척화론자들은 나라가 결딴나는 한이 있어도 재조지은의 부모 나라 명을 배신할 수 없다는 철저한 사대주의 이데올로기를 버리지 못하고 국가를 존망의 위기로 몰고 간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강화할 수 있었지만,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면서 실기한 게 치욕적인 삼전도 항복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실리 보다는 그놈의 명분을 중시하는 자신도 명나라에게는 오랑캐 취급을 당하면서 사대주의자 행세를 하는 지식인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국가 경영을 받은 위정자라면 더더욱 큰 문제일 것이고.

 

우리는 현재 G2로 부상한 이웃의 대국이 다시 한 번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적 종속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으로 이웃국가의 굴기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본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모름지기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수성의 군주 홍타이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마침내 중원 공략이라는 대망의 꿈을 이루는 초석을 닦지 않았던가. 우리도 작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위기가 곧 기회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재편기에 맞는 국가전략으로 다가오는 파고를 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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