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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링조르를 찾아서 1
호르헤 볼피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6년 3월
평점 :
경이의 연속이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양자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이라는 양대산맥이 구축한 현대 과학을 관통하는 멕시코 출신 작가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과학 교양과 심리 스릴러에 기반한 오락적 요소까지 아우르는 일대 역작이었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겐 여전히 미지의 대륙으로 남아있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단연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책 중의 하나였다.
소설은 1944년 7월 20일,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고 모반에 연루된 수많은 인사들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기록필름에 담아 계속해서 그것을 지켜보는 히틀러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당대 최고 석학 중의 한 명이었던 수학자 구스타프 링스 교수 역시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당할 위기였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42년 만에 과거를 회상한다.
유럽 대륙의 주인공 구스타프 링스 교수가 있었다면 대서양 건너 미국에는 프랜시스 P. 베이컨 박사가 있었다. 원자와 전자를 추적하며 우주의 비밀의 밝히려는 양자물리학자들의 노력과 경쟁이 사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때, 독일식 표현에 따르자면 분더킨트 다운 베이컨은 프린스턴에서 출발점을 찍는다. 총통의 압제 견디지 못한 유럽의 석학들은 앞다투어 신대륙으로 건너가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우주 생성과 소립자, 우리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의 비밀을 밝히겠다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는 역설적으로 인류 자체를 파멸로 몰아넣을 지도 모를 대량살상무기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히틀러의 전쟁기계는 동방의 대적 스탈린을 상대하면서 공격의 날이 무디어졌고, 1944년 미영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독일 제국의 패배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총통에 충성하는 일단의 무리들은 끝까지 패전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 바탕에는 전세를 한 번에 역전할 수 있는 핵폭탄 프로젝트가 있었다. 거의 독일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원된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익명의 학술고문이 있었다. 그의 코드명은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 등장하는 악당 기사 “클링조르”였다.
멕시코 출신 호르헤 볼피가 전후 원자폭탄 개발에 이렇게 정통할 줄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베이컨 중위와 구스타프 링스 모두 과학자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수학에 대한 사랑으로 출발한, 젊고 촉망받는 물리학도였던 베이컨 중위는 고등연구소에서 존 폰 노이만의 제자로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 한 자락하는 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당시만 하더라도 새로운 영역이었던 양자역학 연구를 계속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흑인 애인 비비안과 상류층 출신 약혼녀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게임에 돌입했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운명의 여신은 물리학자를 인간사냥꾼으로 변모시켰다.
독일 출신 구스타프 링스는 1차 세계대전의 기묘한 패배 이후, 혼란으로 가득했던 독일에서 수학 연구에 매진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집합론의 창시자 게오르크 루드비히 필리프 칸토어가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무한에 대한 영역이었다. 호르헤 볼피 작가는 독자에게 유려한 필치로 무한의 세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과학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그림의 떡같은 이야기일 따름이었다. 다만 수의 신비에 이끌린 학자들이 우주창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유년 시절 뜨거운 우정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였던 하인리히와 함께 구스타프는 전후 세계 문화수도였던 베를린에서 쾌락적 삶을 누렸다. 물론 이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집권하면서 베를린의 활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결혼까지 해서 평안한 시절이 계속될 것 같았던 시절은 총통의 집권으로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하게 된다. 어느 날 하이니가 철학자의 꿈을 추구하는 대신, 총통의 군대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구스타프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독일 과학자 집단을 소개해둔 괴팅겐에서 클링조르에 대한 실낱같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베이컨은 추적에 나선다. 한편, 구스타프 링스가 베이컨 중위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베이컨의 스승 존 폰 노이만은 모든 것은 게임의 법칙에 준거해서 진행된다는 가설 아래, 애제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제3제국 출신 과학자들이 모두 클링조르 후보자라는 가설을 세우고, 유력한 용의자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이 베이컨과 링스 교수는 합의한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 만큼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자료가 필요한 걸까. 문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외교관 생활을 경험한 호르헤 볼피가 <클링조르를 찾아서>를 저술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현대 양자물리학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자신들의 논리와 가설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정말 나같은 과학 문외한이 들어도 황홀할 지경이었다. 양자역학의 아버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초반부터 소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실제 전쟁 말기,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써 가며 베이컨 중위는 알소스 특명 팀의 일원으로 고향 우르펠트에 칩거해 있던 하이젠베르크를 체포해서 호송하지 않았던가. 많은 과학자들이 조국 독일을 떠나 학문적 자유를 구가했지만, 열렬한 애국자였던 하이젠베르크는 고향을 등지지 않고 남아 히틀러에게 협력했다. 철저하게 이론물리학자였던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약점 중의 하나였던 실험에 충실해서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했다면 과연 역사는 바뀌지 않았을까.
호르헤 볼피는 철저하게 하이젠베르크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는데,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대량생산무기 개발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에 대해서는 나도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결국 정치과 관계없는 과학연구에만 열중했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일단 개발에 성공한 원자폭탄을 동서 양쪽 전선에서 절대적인 수세에 몰린 히틀러가 사용하지 않았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아인슈타인을 숭배하는 과학도 베이컨 박사가 그의 산책길을 따라 다니는 장면, 막스 플랑크와 슈뢰딩거(현대 물리학계의 돈 후안이다) 그리고 닐스 보어를 찾아다니며 클링조르에 대해 탐문하는 장면들은 마치 현대 물리학에 대한 한 편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내러티브의 한 축에 베이컨의 수치스러운 스캔들이 있다면, 링스 교수 역시 스캔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그런 처지였다. 아내 마리안네와 절친이지만 히틀러를 추종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절교선언을 한 하인리히(하이니)와 그의 아내 나탈리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관계는 치명적이었다. 우주의 비밀을 품은 양자물리학의 세계 만큼이나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음모로 점철된 인간관계 역시 하이젠베르크가 주창한 불확실성의 원리에 버금가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었을까. 베이컨 곁에 느닷없이 등장해서, 지나치게 클링조르 추적에 개입하는 이레네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려진 게 전혀 없는데 왜 그녀는 그렇게 클링조르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걸까.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구스타프 링스 교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이 추적하는 클링조르가 등장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베이컨에게 들려준다. 어쩌면 호르헤 볼피는 <파르지팔>의 스토리라인에 깊은 감명을 받아 현대 물리학이라는 요소에 우라늄 프로젝트를 결합한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를 재조립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링조르는 그 누구도 될 수 있었고, 또 반대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었다. 그를 추적하는 가운데 들었던 경고처럼, 전자처럼 빨리 움직이면서 자신을 쫓는 인간사냥꾼들을 비웃었고 또 한 편으로는 처절한 복수를 도모하기도 했다.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현대 과학에서 추구해온 양자역학의 비밀만큼이나 복잡한 애증으로 점철된 인간사를 아우르는 하나의 서사시였다. 내가 읽은 호르헤 볼피의 첫 작품이었지만, 이 한 편의 소설만으로도 볼피 작가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에게 쏟아진 대가들의 성찬이 단순히 겉치레가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닫게 됐다. 역사적 사실을 근본 삼아 빈 공간을 있을 법한 허구의 이야기와 오페라 <파르지팔>에서 차용한 코드들로 채우는 작가의 문학적 시도들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시작에서 결말까지 그야말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작품이라고나 할까. 대망의 2018년 200권 읽기 프로젝트의 200번째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대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