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 - 만화로 배우는 미국의 모든 것
래리 고닉 지음, 노승영 옮김 / 궁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신간을 읽는 재미는 언제나 쏠쏠하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래리 고닉의 신간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은 제법 두툼한 분량을 제공한다. 오늘 도서관에서 이언 매큐언의 <솔라>와 함께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듣고는 폭염을 뚫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도서관에 다녀왔다. 그야말로 땀이 줄줄 났다. 마침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한 그 재밌는 로즈 트레마인의 <구스타프 소나타>를 잠시 보류하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부터 읽기 시작했다. <솔라>는 제법 두꺼워서 당장 읽을 수가 없으니 일단 다음으로 읽기를 미뤘다. 바쁘다 바빠.

 

미국 역사의 시작은 정말 오래 전, 아시아 대륙에서 알류션 열도를 거쳐 몽골계 사람들이 북미 대륙으로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에도 서유럽에서 바이킹들과 수도사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갔었다는 썰들이 무성하게 전해진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역사에 등장하는 건 역시나 불한당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나 다 알듯이 서유럽 국가들은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신항로 개척에 나섰다. 아마 그만큼 돈이 된다는 방증이겠다. 그런데 그렇게 발견된 신대륙에서 향신료 대신 더 가치 있는 것들(금과 은)이 나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문을 한시절 유럽 최강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훗날 대영제국으로 알려지게 되는 잉글랜드는 스페인보다 100여년 정도 늦게 식민지경영에 나서게 됐다. 자국내 사정으로 해외 식민지 경영은 사실 역부족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북미대륙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버지니아였다. 그런데 버지니아에서는 무엇이 돈이 되었던가? 바로 담배였다. 전 세계 담배제국의 아버지 필립 모리스의 출발을 이곳에서 찾을 수가 있을까. 인디언들에게 신성한 풀이었지만, 유럽인들에게는 절호의 기호식품으로 돈벌이 수단으로 작용했다. 미국 연방정부에서는 여전히 담배산업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지.

 

그 외에도 방대한 아메라카 대륙의 천연자원인 숲도 한몫했다고 한다. 풍부한 목재를 바탕으로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조선업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당시 북미대륙 베이 식민지 최대 제조업 상품은 바로 럼주였다. 아니 청교도들이 문화 사회적으로 지배하는 곳에서 술이라니. 게다가 베이식민지와 바베이도스의 당밀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노예무역의 삼각축을 그대로 래리 고닉 저자는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 시절의 핵심으로 지목한다. 미국 건국의 역사에서 흑인 노예의 노동은 빠질 수 없는 그런 요소였던 것이다.

 

영국 국교회에 밀려 다수의 청교도들이 정착한 곳이 지금의 뉴잉글랜드 지방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구사하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여전히 정치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남부의 주들만큼이나 보수적인 그네들의 실상이 이해가 갔다. 지금은 철폐되었지만, 보스턴 리쿼스토어에서 일요일에는 술을 팔지 않았지만, 일반 주점에서는 무제한으로 술을 팔지 않았던가. 만 21세 미만의 사람들에게 술을 팔았다가는 큰 일이 나는데, 정작 술집에서 서빙하는 사람들은 언더 에이지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흔히 보스턴 티파티 사건으로 미국 독립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미 그전에 인지세 문제로 영국 아메리카 식민지와 영국 본국 간의 갈등은 최고조로 달려 가고 있었다. 타르와 깃털로 대표되는 조롱이라는 방식으로 무장한 식민지 이주민들의 자치권과 대표권 문제도 역시나 쟁점 중의 하나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 패트릭 헨리, 내가 좋아하는 맥주 샘 애덤스 브라더스, 토마스 제퍼슨 같이 쟁쟁한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들은 수차례에 걸친 대륙회의를 거쳐 천부인권이 담긴 독립선언문이라는 걸출한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래리 고닉 저자가 날카롭게 꼬집는 문제 중의 하나는 과연 흑인의 인권도 해당하느냐다. 아마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로 적당히 타협한 무장한 식민지 민병대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영국군을 상대로 새라토가 전투와 요크타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한 게 아니었을까. 인종주의 문제는 그러니까 미국 건국부터 유래된 복잡한 문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미국독립전쟁에서 신생국가인 아메리카 합중국 편을 들었는데, 그렇게 당겨진 혁명의 도화선이 훗날 자신의 목을 기요틴에 날리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럴 줄 알았으면 불구대천의 원수 영국에 맞서지 않았겠지만.

 

영국 귀족 스타일의 재무장관 해밀턴이 이끄는 연방당과 이중인격을 지닌 민주주의자 토마스 제퍼슨의 공화당(훗날 민주당)의 대결은 건국 시절부터 예고되었다. 건국 이래 미국의 팽창주의는 위헌 시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내륙으로 뻗쳐 나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으로부터 광대한 루이지애나를 매입하고, 좀 이르긴 하지만 서부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토착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강제이주시키면서 그야말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국시로 삼았다. 멕시코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는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애리조나 그리고 텍사스까지 집어 삼키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북부연방주와 귀족 스타일의 대농장 노예제를 고수하는 남부연방주 간의 대결은 마주 보고 달려오는 기차 같은 형세였다. 여러 번의 타협으로 연방에 가입하는 신생주에 대해 노예제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자유주 선언을 할 것인지 선택하게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타협은 남부 제주의 고립을 불러왔다. 남부 노예지지 이데올로그들의 논리는 절대적으로 역부족이었고, 도덕적으로도 청교도 북부인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즈음에 등장한 공화당 출신 대통령 링컨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예해방의 선구자와는 많이 달랐다. 그가 노예해방은 지지한 것은 어디까지나 연방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흑인 노예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남부 제주들이 연방 잔류를 한다면 그들의 노예제 유지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링컨의 생각이었다.

 

어쨌든 남북전쟁 초기 남부 출신의 뛰어난 장군들인 로버트 리와 스톤월 장군의 뛰어난 활약에 연전연승을 거두던 남부군은 해방된 흑인노예 병사들이 전선에 투입되어 가공할 만한 능력을 보여주고, 북군의 남군 동서분리 작전이 성공하고 해군의 해안봉쇄마저 효율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게다가 노예해방이라는 선전전에서도 남군은 밀리지 않았던가. 저자는 미국의 남북전쟁이 다가올 현대식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고 하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18세기 제도를 지키기 위해 20세기 방식으로 19세기 전쟁을 치렀다는 표현이 정말 정확한 남북전쟁에 대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멋지군 그래.

 

여기까지가 미국 건국에서부터 시작된 미국 역사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이고 이제 겨우 절반인데 분량이 장난이 아니군 그래. 조면기 발명 이래 남부 제주의 목화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흑인 노예 수요를 폭발시킨 것처럼, 남북전쟁을 기점으로 미국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광대한 미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태평향횡단 철도 사업이야말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게 되는 발화점이 아니었을까. 막대한 자본과 기술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한 철도사업은 태생적으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재벌, 트러스트의 탄생을 예고했다. 실제로 미국의 산업을 지금까지도 지배하는 거대 트러스트들의 탄생이 1860년대에 즈음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명심해야할 것 같다. 우리에게도 너무 흔한 정경유착이라는 방식으로 자본계급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그런 트러스트를 형식적으로 나마 막기 위한 법안 제정들이 이루어졌지만, 자본가 계급이 국가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양태는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 버렸다. 조금 부언하자면, 미국에서는 영화 산업에서 제작과 배급을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작자가 배급까지 겸하는 시스템이 안착되면서 비정상적인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괴물이 등장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제작과 배급은 미국식으로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건 안 배우고, 하지 말라는 나쁜 건 역사에서 그대로 배우는 데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자본 계급의 득세에 맞춰 미국 노동계급의 각성에도 저자가 상당히 관심을 기울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8시간 근무제, 급여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 등의 문제가 그 시절에 등장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저자는 아마 당시 유럽사회를 휩쓸던 마르크스 사회주의 영향과 그 세례를 받은 다수 유럽 이주민들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내세운다. 충분히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자본가들은 불법 파업이라고 여론전을 주도하면서 군대 혹은 경찰력이라는 공권력을 동원해서 물리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을 분쇄하라는 주문을 계속한다. 어쩌면 이렇게 시대가 지나도 똑같은 방식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그 땐 그랬다 치고 지금은 상상력의 빈곤 때문에 고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워런 G 하딩으로 대표되는 흥청망청의 시대는 곧 지나가고, 미래의 수요를 예상하지 못한 공급과잉으로 그 유명한 대공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남북전쟁 이래 가뭄에 콩 나듯이 선출된 민주당 출신 대통령인 루즈벨트가 등장해서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에 맞서지만 완전한 경기회복은 요원하기만 했다. 역시 경기회복에는 전쟁만한 게 없다는 속설 대로 전쟁국가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2차 세계대전에 뛰어 들게 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 완전고용의 신화를 달성하면서 바야흐로 대영제국의 세계 지배를 뒤로 하고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현대 소련을 상대로 한 냉전 이야기라 그런지 1부만큼의 다이내믹한 스토리들 같은 재미가 떨어졌다. 한국전에서 처음으로 소련을 상대로 한 냉전을 치른 미국은 공산주의의 전 세계적인 확산을 막기 위해 CIA를 동원해서 과테말라과 이란에서 재미를 보기도 했다. 물론 쿠바와 베트남에서는 뜨거운 맛을 보기도 했지만, 남북전쟁 당시 남군을 상대로 한 소모전과 유사해 보이는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한 번 세계의 주인이 누구인지 만방에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력을 과시했다.

 

미국 건국 이래 서부개척, 흑인 노예제 문제 그리고 국가통합 같은 커다란 이슈들이 미국 역사의 줄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현대 미국에 인권문제, 흑백통합, 생태 및 환경문제 그리고 성소수자 문제 같이 정말 다양한 문제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미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사회적 진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득 토마스 제퍼슨의 후예로 대중정당을 표방해온 미국 민주당이 부자들과 은행가, 산업가 및 소수 엘리트를 전통적으로 대변하는 공화당과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대항마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이야말로 최상위 대학출신의 엘리트 변호사, 대통령 영부인,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전혀 대중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가. 물론 트럼프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계급 투표에서 적어도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에서 대한 정체성 혼란은 없을 테니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의 부제는 “만화로 배우는 미국의 모든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충분히 공감한다. 아주 재밌고 심지어 교훈적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뱀다리1]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한 명인 재무장관 출신 왕당파 알렉산더 해밀턴이 결투로 사망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결투가 금지된 뉴욕주에서 결투를 벌일 수가 없어, 이웃 뉴저지주에서 결투를 벌였다지. 해밀턴의 아들도 역시 결투로 사망했다고 한다. 달러 지폐 중에 유이하게 프랭클린과 함께 대통령 출신이 아닌 인물(10달러)이라고 한다.

 


[뱀다리2] 1812~13년 영미전쟁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터미네이터’ 앤드루 잭슨(미국 7대 대통령, 아일랜드계 비귀족 출신)은 인디언 대학살의 주범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훗날 남부에세 악명을 떨치게 되는 strange fruits 못지 않게 병사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던 모양이다. 래리 고닉에 따르면, 그가 지나간 길마다 병사들의 시신들이 매달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탈영, 명령 불복종 그리고 짬밥에 대한 불만. 마지막은 진짜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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