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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이제는 누구나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솔로몬 왕의 고뇌>가 발표되던 시절만 해도, 모두가 두 명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전자는 <자기 앞의 생>으로 그야말로 떠오르는 프랑스 문단의 총아였고, 후자는 한물간 늙다리 호색한 작가였으니 말이다. 그 점을 감안한다면, 소설의 주인공이자 내레이터 장/자노 라팽 혹은 마르셀 케르모디는 노년의 로맹 가리가 꿈꾼 젊은 시절 자신의 페르소나가 분명하다.
2014년에 읽다만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솔로몬 왕의 고뇌>를 이제야 다 읽었다. 이제 로맹 가리 읽기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는데, 사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솔로몬>은 생각처럼 재밌는 소설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2쇄나 찍었네? 주인공 청년은 25세의 장 혹은 자노 라팽이라고 불리는 아미엥 출신의 택시운전사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서 기성복 바지의 왕, 그가 솔로몬 왕(본명은 솔로몬 루빈슈타인 84세)이라고 부르는 부유한 노신사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련되고 현명한 솔로몬 왕에게 발탁되어 잔금이 남은 택시 할부도 대신 납부해준 대가로 그의 전속 택시운전사로 활동하게 된다.
노신사 솔로몬 왕의 곁에서 밀착경호하면서 그의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둘씩 벗겨진다. 현직에서 은퇴한 선한 사마리아 인 솔로몬은 신의 대리인으로 변신해서 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우정의 구조회’라는 단체를 통해 대신한다. 자원봉사자들을 고용해서 전화선을 타고 들어오는 온갖 고민을 가진 이들의 우환을 들어주는 조직을 운영하고, 파리 시내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과일바구니 혹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제공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노신사에게 고뇌가 존재할까. 로맹 가리는 단언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뇌를 안고 산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솔로몬 왕의 고뇌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랑이었다. 그 중심에는 한물 간 60대 샹송 레알리스트 가수 마드무아젤 코라 라므네르가 있었다. 독자들은 곧 알게 되겠지만 그녀는 나치 독일 점령 시절에 한가닥 샹송가수였다. 자신을 사랑하는 솔로몬 왕 대신, 나치 꼴라보 모리스에 사랑보다는 열정과 광기에 빠져 솔로몬을 걷어차 버렸다. 문제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었던 솔로몬은 나치의 유대인 절멸정책을 피해 샹젤리제의 지하에서 4년 동안이나 숨을 죽여야 했다는 것이다.
그후 몰락한 마드무아젤 코라는 화장실 마담으로 전락해 버리고, 35년의 세월이 지나 마침내 그녀를 발견하게 된 솔로몬 왕은 그녀에게 아파트를 마련해 주고 두둑한 연금으로 복수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더 복잡해 지는 것은, 자노 라팽 청년이 연민에서 시작된 마드무아 코라에 대한 감정이 자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랑으로 발전해 갔다는 것이지. 게다가 우리의 우락부락하고 프랑스 전통적 골족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상남자 장이 서점에서 일하는 예쁜 아가씨 알린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삼각관계 아니 이건 사각관계로 보아야 하나.
겨우 초등학교 졸업한 독학자 장은 도서관과 사전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다. 가끔은 서점 직원인 알린을 놀라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독서력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모름지긴 겉모습만 보고서 사람을 예단하면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장을 채용한 이유가 그의 겉모습 때문이 아니었던가. 어느 순간 주인공 장이야말로 내가 보이게는 전형적 프랑스인의 초상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오염된 브르타뉴 바다에서 석유를 뒤집어 쓴 갈매기나 캐나다에서 사냥꾼의 몽둥이에 곧 죽을 운명인 새끼 바다표범을 곧 멸종될 운명에 처한 샹송 레알리스트 마드무아젤 코라에 비견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이런 서술이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경험한 노년의 작가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내러티브가 아닌가 말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 예전의 전성기 같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마드무아젤 코라의 모습은 어쩌면 남자 로맹 가리의 현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로맹 가리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여성성에 대한 찬미도 변주되어 반복된다. 불로뉴 숲으로 뱃놀이를 가자는 깜찍한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마치 인상파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의 재현에 호기심이 발동한 장의 친구들이 총출동한다. 심지어 장의 애인 알린은 콧수염까지 준비해 두지 않았던가. 혼란에 빠진 장이 모든 걸 다 집어치우고, 솔로몬 왕에게 돈을 좀 빌려 앤틸러스에 가서 책방이나 하자는 제안에 현실주의자 알린은 완곡하게 거절한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 균형감은 그렇게 위태로워 보리는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만큼이나 아슬아슬하다. 물론 소설의 긴장감이 솟구쳐 오르는 지점도 바로 그 곳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한 솔로몬 왕이 새로운 찾아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연애대상 찾기란을 뒤적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오래전 신문에 실린 암호 같은 글들을 풀어 보려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땐 그랬지. 솔로몬 왕의 진정한 고뇌는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라기 보다, 모든 것을 잃는 게 두려워 포기하는 거라고 우리의 장은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의 다른 이름은 두려움이라고. 어디 그게 솔로몬 왕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인가. 우리 인간이라면 모두 하는 고민이지.
나의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14번째 독서가 끝났다. 이제 앞으로 6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