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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에이모 토울스 작가에 관심이 많아 신간 <모스크바의 신사>가 출간되기 전부터 그의 전작 <우아한 연인>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출판사에서 출간 전 연재를 한다는 뉴스를 듣고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이 나온 뒤에 바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다시는 출간 전 연재를 읽지 않기로 했다. 출간 전 연재는 전문게재도 아니고, 요약본 스타일로 나오는데 본 독서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본문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특히 문제다.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로 읽지 않겠다, 아주 치명적이었다.
초반에 144쪽 정도까지 읽다가 로맹 가리 전작도전을 시작하는 바람에 우선순위에서 좀 밀렸다. 소설의 주인공은 알렉산드르(사샤)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다. 시간적 배경은 1922년, 볼셰비키 혁명 5년이 지난 모스크바다. 모스크바 사교계에서 저명한 인사로 알려진 로스토프 백작은 현재 메트로폴 호텔에 거주하고 있다. 내무 인민위원회이 열려 그에 대한 연금형을 선고했다. 앙시앵 레짐의 일원인 구세대의 일원으로 숙청되어야 마땅한 인물이지만, 혁명 이전 혁명시를 발표하는 등 영웅으로 간주될 만한 행동으로 인해 그나마 시베리아 유형은 면한 것이다. 게다가 다른 이들에게 내려진 6대 도시 거주 금지형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으리으리한 호텔 생활이라고 하지만, 갇혀 산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사샤는 자신이 살던 스위트룸에서 쫓겨나 다락방 신세가 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인간은 모름지기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평생 해온 루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친이 남겨주신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섭렵하면서 백작은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교양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백작은 혁명 시기 굳이 러시아로 돌아와서 할머니는 서방으로 탈출시키고 자신은 미래가 불투명한 볼셰비키가 지배하는 조국에 남게 된 걸까라는 질문이 소설 초반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우매한 독자여, 조금만 기다리시라, 그 이유도 곧 밝혀질 테니.
로스토프 백작이 지겨운 호텔 연금생활을 버텨 내기 위해선 단순히 책읽기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연히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물론 경제적 생활과 백작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한 금전도 필요했겠지. 백작은 특유의 사교성과 기지를 발휘해서 다급한 문제들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메트로폴 호텔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는 전설적 식당 보야르스키의 지배인 안드레이와 주방장 에밀은 백작(훗날 웨이터 주임이 된다)과 삼총사를 구성해서 제한적이지만 다양한 모험을 시작한다.
8살 꼬마 소녀 니나 쿨리코바와의 우정 또한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 전개에 한 부분으로 잡혀 있다. 공주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당돌한 소녀에게 백작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교양과 예절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주변인들과의 누리는 이런 사소한 즐거움이 없었다면 호텔에 갇힌 백작의 삶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백작은 당대 최고의 영화스타 중에 한 명이었던 안나 우르바노바의 숨겨진 애인이 되는 영예도 누리지 않았던가. 물론 절친 미시카의 관계 역전 때문에 고뇌할 때도 있었지만, 체호프 서신 사건으로 미시카가 유배형에 처해지면서 백작은 자신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친구를 잃게 된다.
서구사회 자본가 계급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볼셰비키들에게 백작은 구세대의 일원일 따름이었지만, 혁명의 혼란을 딛고 최악의 독재자 스탈린의 영도 아래 서구사회와 관계 회복을 위해 프랑스와 영국사회의 문화를 공부하려던 당간부 오시프는 호텔의 노란방에서 백작에게 과외를 청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했다는 저자 에이모 토울스는 지난한 고증과정을 통해 1920년대부터 시작된 러시아 볼셰비키 시절을 절묘하게 재창조하는데 성공했다. 어쩌면 사소한 예법 하나에까지 신경써야 하는 게 신사의 본질이라는 백작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부르주아식 사고방식이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로스토프 백작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해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체현해낸 점은 칭찬하고 싶다.
로스토프 백작은 음악이면 음악, 춤이면 춤, 귀족 사교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구시대의 마지막 신사로 묘사된다. 아마 어느 누구라도 보야르스키 식당에서 웨이터 주임으로 활약 중인 백작에게 서비스를 받게 된다면 아마 영광이지 않을까 싶다. 그의 애인 안나 우르바노바는 서구사회, 특히 미국에서 진행 중인 온갖 형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기계문명의 발전을 찬양하지만 반대로 사샤는 올드스쿨 스타일의 품격 있는 서비스야말로 인간 삶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그대로 유지한다. 아마 노동해방을 꿈꾸는 볼셰비키 혁명가들이 들었다면 당장에 총살을 시키라고 주장했을 지도 모를 그런 위험한 생각이 아니었던가.
줄리언 반스는 자신의 저작 <소음의 시대>에서 스탈린 폭정의 시대를 살았던 천재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불안을 정확하게 타격해냈다. 그런 반스와는 상대적으로 토울스는 스탈린 시대를 간략하게 그려냈다. 히틀러를 상대로 한 애국전쟁에서 조국을 지켜낸 독재자 스탈린의 죽음을 조문하는 기이한 시민들의 행렬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백작은 청년 시절, 이념 논쟁으로 시절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본주의 사회의 최선봉에 서 있었던 투자자문가 출신 소설가는 그런 이데올로기 논쟁보다는 엄혹한 볼셰비키 시절을 견뎌내야 했던 백작 주변의 소시민들의 삶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예를 들어, 애국전쟁 당시 마지막 베를린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외아들의 방을 유지하고 싶은 지배인 안드레이의 소박한 희망이 그렇다. 그리고 표트르 대제와 이반 뇌제의 경우를 들어 러시아인들은 역사적으로 자기파멸적인 경향이 있더라는 식으로 백작이 고뇌하는 장면도 간략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가.
공산주의 세례를 받아 콤소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니나는 어느 날 갑자기 백작 앞에 등장해서 6살짜리 딸아이 소피야를 봐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는 남편을 따라나선다. 물론 우리는 니나가 다시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까스로 연금생활에 적응하고 있던 백작에게 소피야의 등장은 새로운 문제에 다름이 아니었다. 물론 조금 느슨해지던 스토리텔링에 힘을 실어 주는 건 불문가지다. 그건 마치 체스 고수가 몇 수 앞을 예상하고 준비한 수를 던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토울스의 작법과 스타일은 정말 대단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을 고수한 사샤에게 소피야의 존재는 그야말로 특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게다가 그녀가 음악 연주에 소질을 보여 깜짝 놀랄 정도로 실력을 피아니스트가 되어 성공가도를 질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소설이 시작된 1922년으로부터 시작되어 자그마치 32년이 되어 백작은 마침내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그런 일탈을 감행한다.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혁명과 전쟁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킨 로스토프 백작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귀족 신분으로 볼셰비키 시절에 당연히 처단되어야 할 처지에서, 친구 미쉬카가 대필한 시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백작에게 연금형은 어쩌면 축복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가 메트로폴 호텔에서 환경을 지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외부세계에는 치열한 체제경쟁, 다른 이름으로 냉전이라는 이름의 열전이 시작되었다. 백작은 ‘무식한 야만인’ 니키타 흐루쇼프가 말렌코프를 필두로 한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러시아 최고권력자가 되는 장면을 목격했고, 오브닌스크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로 모스크바의 불빛이 깔리는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다. 에밀과 안드레이 삼인조와 결합해서 한밤의 부야베스 파티를 벌인 장면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훗날 파리 대사가 되는 리처드 밴더와일의 스파이 제안도 거부한 사샤가 오로지 자신의 딸 소피야의 미래를 위해 조국 지도자들에 대한 정보를 넘기고, 자기 역시 망명길에 오르는 장면에서는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시장자본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체제 승리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끝까지 첩보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뒤로하고 역시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장면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에이모 토울스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 필력이라면 정말 두 번째 소설이 아니라 열 번째로 발표한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출간 전 사전연재 때문에 초반에 고전하긴 했지만, 예의 고비를 넘기고 나자 그야말로 거칠 게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달려온 느낌이다. 700쪽이나 되는 작품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구성 덕분에 분량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제 역주행해서 에이모 토울수의 데뷔작 <우아한 연인>을 읽어봐야겠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올해 읽은 최고의 책 중에 하나로 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