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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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기나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주말 저녁, 서가에서 아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크리스티안 크라흐트의 제목도 엄청나게 긴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속에>를 집어서 읽기 시작했다. 비교적 최신작인 <제국>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미처 다 읽지 못했다. 이번 여름에는 역시 읽다만 책들을 하나씩 마저 읽어야겠다. <파저란트>로 독일 문단에서 엄청난 논란을 빚은 작가라고 하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나 여기 있으리>200쪽이 채 되지 않는 적은 분량의 책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담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1917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독일 점령지를 거쳐 러시아로 돌아간 게 아니라 스위스에 남아 스위스 소비에트 공화국(Swiss Soviet Republics)를 건설하고 파시스트 국가인 독일과 영국을 상대로 96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는 가상역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인 지도원 동지는 백인이 아닌 아프리카 말라위 치체와 말을 사용하는 장교다. 아니 스위스 공산당 장교가 말라위 흑인이라니, 상상만 해도 놀랍지 않은가.

 

레닌의 소비에트 이념에 충실하게 모든 인종주의를 배격하고, 파시스트 압제자들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 스위스인들은 동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끝없는 전쟁에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 미래의 병사들을 모집하기에 이른다. 니안자 족들은 미처 몰랐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노예라는 것을 모르는 노예들이었던 것이다. 소비에트 국가에 충성할 전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스위스 당국은 조직적으로 인종차별을 엄격하게 배격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뭐 배경 설명은 그 정도로 해두고, 뉴베른을 최근에 독일군으로부터 탈환한 SSR의 지도원 동지 나는 혁명위원회로부터 유대계 폴란드인 브라친스키 대령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전달받는다. 그를 추격하는 과정 중에 나와 접촉한 파브르 소장과 우리엘이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말라위의 군사 아카데미와 킬리만자로 등반을 거쳐 알프스 전장에 투입된 전사인 나는 어쩌면 북방의 전장터에서 역병과도 존재가 아니었을까.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처럼 주인공이 가는 곳에는 죽음의 연무가 짙게 피어 오른다.

 

마침내 요사화된 알프스 산속에서 군의관이자 치유사로 활동하던 브라친스키 대령을 만나게 된 나는 가공할 만한 전력을 동원해서 요새를 폭격한 독일공군의 화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게 된다. 브라친스키와의 대화를 통해, 모든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온 미사일 개발계획은 가공의 것이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결국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심장이 있는 나는, 갈색 눈의 홍채에서 아쿠아마린 블루 빛깔의 홍채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리고 SSR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이아적 모험에 나서게 된다.

 

대체역사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해리스의 <당신들의 조국>을 아직 읽지 않아 서로 비교할 수 없지만, 크라흐트 작가의 <나 여기 있으리> 역시 만만찮은 내공을 과시한다. 서구적 인종주의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세상에서, 아프리카 출신 공산주의자 지도원 동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만나게 되는 위기는 스릴러 못지 않은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파시스트 국가들과의 백년전쟁을 끝낼 절호를 맞았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게 허구와 공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이 느낀 공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소품적인 성격의 작품이긴 하지만, 울림은 적지 않았다.

 

말라위로 대변되는 검은대륙 아프리카는 여전히 서구의 착취대상이었을 뿐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SSR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예들이 자신들이 노예 상태인 줄 모르고,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충성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짜 빼어난 정치기술이 아니었던가. 물론 개개의 연결점들이 빈약하긴 했지만, 크라흐트 작가가 구사하는 압축적인 문장들의 행간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이 절실하게 요구된 점 또한 흥미로웠다.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절대 쉬운 독법으로 작가가 의도한 지점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뭐 그런 식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 저녁에 <나 여기 있으리 햇빛 속에 그리고 그늘 <>를 다 읽고 나서 바로 그의 문제적 데뷔작이라는 <파저란트>를 읽기 시작했다. 21세기 인간의 정체성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역시 여름은 독서의 계절이다. 이견이 필요없을 것 같다.

 

[뱀다리] 인도와 북한 그리고 아마도 아프리카에서의 저널리스트 경험이 이 책에 다분히 녹아 있다는 점을 읽을 수가 있었다. 정말 말라위 니안자 사람들이나 힌두스탄 혹은 동방의 제국으로 등장하는 한국에 대한 서술들은 직접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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