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세인 이부생 노인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바램이 있다면 한 10 년 쯤 더 사는 건데 이는 매일 새벽 잠이 깨면 간밤 잘 자고 눈 뜬 것에 감사하고. 십년 쯤 더 살게 해 달라고 신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으니 그건 하나님 섭리에 맡겨 버렸다. 그리고  지금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며 현재 삶에 집중했다.


 유난히 좋은 날이다. 겨울이 오기 전 하나님의 은헤로운 마지막 기을의 햇살이 띠시롭고 그 빛나는 햇살에 게으르던 벼이삭의 알이 알차게 여물고 과육의 달콤함,콩이나 팥이 깍지 안에서 바스락대며 터져 나갈 날을 초조하게 준비하는 자연의 혜택이 대기 안에 가득한 날.

 이부생 노인은 오늘 유난히 마음이 들떠 있다. 그녀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까,  과거 수학과 교수로 오래 재직하던 시절부터 습관이 된 수치로 예상할 때, 예쓰와 노우의 확률은 50:50으로 잡아 본다. 이 노인이 인생을 살아오며 여성에게 프로포즈를 한 적은 대학 시절에 한 번 있었고-물론 그 사건은 이국, 촌구석 한국 학생의 어설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번이 두 번 째의 서바이벌이다. 그는 물론 결혼도 하고 사십 여 년 긴 부부생활 중 두 아들을 낳아 소위 말하는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 왔지만 아내와의 사이에선 이토록 애틋하고 가슴 설레인 여운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 조그만 오차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수학과 전공 학문에 시달리고, 가족에게는 책임감과 부담 등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쵸이,그녀는 예뻤다.생태적으로 70 넘은 나이지만 하얗고 주름살 없이 매끄러운 피부하며 의상도 언제나 새것인듯 새것 아닌, 눈에 거슬리지 않는 세련된 차림, 그녀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고운가. 낮으면서 카랑한 목소리는 언제나 이 부생 노인의 청각 신경을 끌었고 기분이 좋을 때 그녀의 살짝 굴곡지는 비음은 노인의 오랜 동안 마르고 갈라진 심장의 율동을 자극하고 촉촉하게 따사롭게 녹여  주었다. 저런 매력적인 여인을 먼 데서 바라보기만은 너무 안타깝다. 한 번 터놓고 사귀어 보고 싶다. 젊은이들 처럼 데이트를 하며 맛있는 음식을 함쎄 먹고 또 같이 먼 거리 여행도 한다면 ,하는 노인의 소망은 나날이 부풀어 가는 것이다.

 노인은 수양딸 삼아 가깝게 지내는 안나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 안나, 네가 그 분에게 내 마음을 전해 줘.만약 허락해 준다면 나는 그이를 정말 행복하게 해 주겠어."

안나는 노인의 하소연을 듣자 우선 눈을 하얗게 흘겼다.

" 파파, 이 안나만으로는 부족한가 봐요, 서운해.---- " 하고 한 참 뜸을 들이다 한 숨을 포옥 쉬며

" 하지만 우리 파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사랑의 메신저가 되 드릴께요"  쿨하게 한 눈을 깜박하곤 일단 기다려 보라고 했다.

기다려 보라던 날짜가 오늘이다. 아, 어떨까? 부정적인 예측으로 미리 우울해지기는 싫다.

  안나로 부터 문자 메세지가 왔다.

< 파파 ,안 됐지만 단념하세요 >

비록 50%의 인파시블을 예상했던 바이지만 파시블리티 50%가 엄청나게 진동했다. 노여웠다. 나, 이래뵈도 꽤 괜찮은 남자야.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안다면 나를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지 못할껀데.

이부생 노인의 생애에 흔치 않았던 타인으로 부터의 거부는 이노인의 자부심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1930 년대 한국의 시골 구석 촌에서 태어난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어려서 부터 인물이 좋았고 영리하여 부모로 부터 또 동네 사람들에게 까지 사랑받고 소중하게 키워졌다.고교 재학 중 육이오사변이 일어 나 전쟁에 참전, 치열한 전장을 누볐으나 언제나 총알이나 파편은 그를 피해 갔다. 아니 그가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위기를 재빠르게 모면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태생적으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동작이 민첩했으니까. 한국전이 종전되며 그는 미군 부대 카츄샤로 복무했다. 만기 제대를 하거나 또는 만년 상사로 말둑을 콱 박아 다른  이로운 병과로 갈 기회도 있었지만 그는 카츄샤로 전역하여 미장교 오피스에서 통역 일을 자원하였다. 거기서 영어를 배우며 미국으로의 유학을 꿈꾸었다. 대망의 꿈이 이루어져 도미했지만 대학에서의 학업 생활도 만만한게 아니었다. 그는 닦치는대로 허드렛 일을 하여 의식을 해결하고 역경 속에서 그래도 치열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그가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분야는 수학이었다.수학은 비교적 경쟁력이 낮고 언어 실력도 크게 요구되지 않아 그에게는 더욱 안성맞춤의 전공이었다. 뛰어난 수리 능력과 노력으로 학사 코스를 무난히 마스터하고 석사와 박사는 크게 돈 들이지 않아도 장학금으로 이럭저럭 메꾸어졌다. 박사학위를 딴 후 그는 불안했던 보따리 강사 시절을 떨치고 대학 정교수로 미국에서의 첫 번듯한 직업을 갖었다. 그 때가 1972 년 그의 나이 41 세.

' 나, 그 힘 들었던 세월을 잘 견뎌 대학 교수를 40 년이나 해 온 사람이야. 나를 뭘로 알고 '

 그러나 그는 문득 그녀 또한 어려운 한국의 역사를 살아 왔다는 생각에 애써 노여움을 누르고 그녀의 인생 역사가 궁금해졌다. 그는 핸폰을 들어 안나에게 전화를 넣었다.

" 헤이 안나, 지금 뭐 하고 있어? 지금 통화할 수 있어?"

" 하이 파파, 좀 늦은 시간이지만 파파가 딸에게 할 급한 말이라면? 오케이" 안나의 목소리는 낭낭했다.

" 미세스 쵸이가 왜 거절했어? 너한테는 솔직히 말했을텐데. 내가 알고 싶어.이유를 말해 봐"

"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어요. 파파는 너무 나이가 많아서 믿고 의지할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거얘요. 이해되지 않아요? 물론 초이도 젊다고 말할 순 없지만 파파와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다는 건 맞는 말 아닌가요"

안나는 마치 초이의 부정적인 대답을 즐기고 있는 듯 달콤한 소리로 느긋하게 말했다.

" 흥 나는 앞으로 10 년은 버틸 수 있어, 년금으로 매달 $5000, 싫컷 쓰고도 남는 돈이 은행에 쌓여있고 커다란 집에다 버지니아 해안의 발라, 너도 알다시피 우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어. 나는 지금도 내 건강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항상 운동과 식이요법을 착실하게 실천하고 있어. 아마도 그 여자는 나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일꺼야" 열내서 하는 노인의 말을 듣는 둥 마는둥,안나는 '으흥,으흥' 헛대답만 하다가

" 파파 다른데서 전화 들어 와요. 다음에 얘기해요" 하고 끊는 것이다.

이노인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체력 단련을 위해 각종 기계들이 들어선 지하실로 내려가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과연 그는 척추가 곧게 뻗어 등판과 허리가 꼿꼿했고 두 다리의 근력도 단단하여 웬만큼 자신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름 잘 살아온 인생 아닌가.


   이 부생 노인은 그레이 모직 줄 선 바지에 매치가 멋진 체크 스포츠 쟈켓, 좁은 챙 스캇치 풍 모자로 잘 차려 입고 유리창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커다란 독립 빌딩으로 들어섰다. 시니어 센터는 늘 개방돠어 있다.푸론트에 있는 무인 기계에 아이디 카드를 입력하면 그 안의 모든 시설물을 자유로히 이용할 수 있다. 교육관에는 항상 노인들을 위한 평생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각자 취미를 활용하는 특기방, 그리고 여럿이 모여 편하게 담소하는 로비가 있고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면 아침 점심 저녁 별, 각종 메뉴를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껒 골라 먹을 수 있다. 오래 살아 온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무한 여유 공간이다.

' 지금은 쵸이여사가 라인댄스하는 시간이겠지, 거기로 가면 그녀를 볼 수 있을꺼야' 이부생 노인은 당당하게 걸어 음악이 크게 울려나오는 자하 2 층 체육관으로 갔다.거기에는 실버 여인들이 티샤쓰와 쫄바지를 입고 능동적인 율동에 열중하고 있었다.과연 초이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팔 다리 동작을 크고 활발하게 움직이 며 열심히 도취해 있다.양 팔을 허리 골반 위에 걸치고 살랑살랑 회전하는 그 모습은 --- 이 노인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아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섰다. 열기로 가득한 분위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여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자신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뚜벅뚜벅 걸어가 그녀 앞에 버티고 섰다. 놀란 그룹 여인들이 동작을 멈추고 그에게 시선을 꼿으며 급히 음악도 중단됐다.

" 초이여사, 내가 아내를 사별하고 15 년을 견디며 살아 온 건 아직 내 눈에 차는 여인이 없어서였소, 내 여인이 되는 기준은 이렇소, 나이는 60대, 결혼한 적 없이 흠이 없는 여자, 재산이 좀 있는 여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예쁜 여자요, " 그의 소리는 강당 안을 크게 울려 퍼졌다. 웃는 여자, 비난하는 여자 수근대는 여자 들 사이로 쵸이는 순간 핼쓱게 굳은 얼굴이 되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 다행이네요, 나는 나이도 그 기준보다 많고 결혼도 했었고,돈도 그렇게 없으며 그리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어이없게 생긋 웃었다. " 그러나 내가 나이에 비해 좀 이쁘긴 하죠?" 호기심으로 바라보던 여인들이 박수를 치며 야유를 퍼부으며 크게 웃었다. 이 노인은 붉어진 얼굴로 그 곳을 나왔다.


 " 오빠, 대단해요, 시니어 센터에 오빠 소문이 엄청나더라구요, "

영애씨는 언제나 먼저 연락을 해 왔다. 늘 저녁을 근사하게 사겠다고 유혹하는 것이다. 이 노인은 때로  영애씨의 집요한 애정 공세에 방패막이로 수양딸 안나를 데리고 나갔지만 오늘은 혼자 그녀를 만났다.

" 무슨 소문이 났다는게요? " 이 노인은 시침을 떼고 점잖게 물었다.

영애는 초승달 눈으로 애교있게 웃으며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 오빠 너무 멋져요.무슨 용기로 그렇게 당당하게 여자들만 가득한 거기에 가서 큰소리를 쳤을까요?"

" 뭘 오히려 내가 무안당하고 나왔는데" 그는 씩 웃었다.

그일이 있은 뒤 와글거리던 자존심의 상처가 어느 만큼 치유되고 마음이 후련해진 거였다. 그리고 지금도 소녀처럼 재치있고 당찬 초이가 밉지 않았다.

"비록 오빠가 채인건 맞지만 그 나이에 그런 청년 같은 기백이 너무 매력있다고 야단들이었어요."

이부생 노인은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 합죽한 입으로 오물오물 스테이크 조각을 씹고 있는 영애씨를 찬찬히 살펴 보았다. 반올림 숫자로 80에 가까운 주름진 얼굴이지만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푸릴이 가득 달린 검은 색 고급스런 상의에 손가락에는 푸른색 비취 반지가 그녀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그녀의 등이 눈에 띄게 굽은 건 젊은 시절 한때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는다는데, 피아노 연습을 너무 많이 한 후유증이라고 했다. 호남 지주 딸로 태어나 일제시대 일본 동경 음대를 졸업하고 한국 최초 피아니스트가 되어 당시 서울 제일 큰 시공관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던 여인, 촉망받는 의사 남편을 만나 미국에 와서도 시대의 첨단을 향유했던 행운의 여인이 이 늙으막 라스트 챤스를 왜 짝사랑으로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살짝 안스런 생각도 들었다.

" 영애씨, 오늘은 내 카드로 쏠테니 최고의 맛난 것으로 디저트를 시켜요. 좋은 저녁 아니요?" 호탕하게 말하는 이부생 노인은 그러나 집을 나올 때 이 여인을 진지하게 사귀어 볼까 싶은 들떴던 낭만은 설풋 식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 우리는 언제나 뜻이 통하는 좋은 친구요, 깊은 속마음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진실한 친구가 당신 아니겠소?"

이부생 노인은 와인잔을 들어 영애씨의 잔에 가볍게 부딪치며 쾌활하게 말했다.

" 그래요, 우리가 무슨 젊은 애들처럼 스킨쉽에 연연한 것도 아니고 저는 그저 이렇게 가끔 만나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 행복하답니다. 먼저 간 남편에게도 덜 미안하구요. 저는 결국 남편 곁으로 갈거니까요"


  집 뒤뜰에서 이부생 노인이 아들과 맨손 체조를 하고 있다. 하나 둘, 하나 둘,구령을 하며 노인이 시범을 보이면 아들은 천진하게 팔 다리를 흔들며 따라 한다.한참 운동을 하여 온 몸이 담으로 젖자 집안으로 들어 와

" 지후야, 오늘은 다다하고 목욕하자.욕조에 물 받아 놓고 물장난도 치고 때도 씻고 놀자" 간만에 아버지와 목욕을 한다니 지후도 좋아서 당장 옷을 훌훌 벗는다.지후의 몸은 160 파운드 육박하는 40대 거구지만 지능은 겨우 7,8 세 수준 아이다. 태어나면서 부터 걸음마도 늦고 말도 늦고 성장이 느렸다. 그때 처음 엄마,아빠를 마마, 다다라 부르던 명칭을 아직도 사용하는 정신이 어리고 단순한 천사의 영혼이다. 큰 아들이 하나 더 있지만 미국 서부에 자리잡아 좋은 직업을 갖고 일가를 이루어 잘 살고 있으니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와주면 고맙고 소식이 없어도 별로 서운하지 않다.둘째 지후는 사회 적응이 전혀 안되는, 은둔형,자폐 지적 장애자이다. 제 어미가 살아 생전 저 아이 때문에 얼마나 애를 태우며 병원이고 교육기관이고 쫒아다니며 정상으로 키우려 고생했던가. 저 못난 자식 거두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고 발버둥 쳤건만 저승사자에게 질질 끌려가듯 가고 말았다. 가기 전 피를 토하듯 남편 이부생에게 당부했다.' 지 힘으로 살아갈 능력 없는 가엾은 지후 잘 부탁해요,우리 아들 불쌍한 지후 사는 동안 잘 거둬 줘요' 그는 사실 교수로서 계속 학문에 몰두하고 학술 논문 쓰는 일과 강의 등 하는 일이 무거워  지후의 양육은 거의 아내에게 맡기고 관심을 크게 두지 못했었다. 그러나 아내가 간 후, 자기 앞에 전담 책임이 떨어지자,새삼 지후의 심각한 장애에 적잖이 놀라며 개선점을 심각하게 궁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지후의 모자란 점을 늘 애처러워 하며 왕자처럼 떠받들어 지성껒 키웠다. 결과 지후는 30세 넘은 나이에도 스스로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이 노인은 어디서 부터 손을 써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심했다.지후는 지능은 낮았지만 기운이 세다. 그 기운쓰는 마땅한 일을 가리켜 보자. 제 방 청소부터 시켰다. 마음이 착해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따랐다. 차츰 집 안 모든 곳의 청소를 맡기고 베큠 돌리는 법과 걸레질하는 것도 몸소 시범을 보이며 기르쳤다. 지호는 당연히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음식 만드는 일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간단한 음식을 시켜 보았다.제가 만든 음식을 먹어 보는 게 신기했던 모양이다.

" 지후야 다다 말 잘 듣고 네 방 청소도 깨끗이 하면 널 요리학교 보내서 유명한 쉐프가 되게 해 줄께" 하는 격려가 꽤 효과적이었는지 지후와 다다의 사이는 점점 부드러워지고 상부상조 집 안 청소와 음식은 거의 지후가 맡아 부자가 서로 조화롭게 잘 지내게 되었다. 따듯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 들어앉아 애기들처럼 얘기를 주고 받고 서로 등을 밀어주며 덩치 큰 아들을 찬찬히 구석구석 닦아주는 이부생 노인은 자상하고 따뜻한 아비이다.

" 지후야 이따 오후 세 시에 안나 누나가 네 동생들을 데리고 온단다.오후에 우리 바베큐 해 먹자."

" 야! 다다, 해리와 세라가 와? 그레잇,내가 갈비를 해 둘께"

미각과 손맛이 특출난 지후의 쇠고기 갈비를 포식하고 아이들은 뒷 뜰로 나가 놀고 이 노인과 안나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 파파 해리가 조기 입학 신청한 칼레지에서 합격 통지서가 왔어요,하지만 난 포기하라고 말했어요"

" 안나야,배우는 것도 적당한 때가 있어. 기회를 놓치면 나증에 후회하게 돼" 대학 강단에서 긴 세월을 보낸 이노인은 당연히 대학 진학을 권장한다.

" 알아요, 하지만 이혼하고 한국으로 내뺀 지 아빠는 연락도 안 되고 나 혼자 살림꾸려가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그 비싼 프리스턴 대학을 보내냐구요?" 안나는 보험사 에이젼시로 일하고 있으나 수입은 별로다.

" 안나야 내가 네게 준 커다란  다이야 반지는 왜 안 끼고 있는게냐? "

" 아, 파파 깜박했어요,너무 귀한거라 늘 빼 놓고 아끼고 있어요" 하며 안니는 백을 열고 작은 파우치에 간직했던 반지를 꺼내 약지에 낀다. 그 반지는 이노인이 과거 외국 출장 갔다가 큰 맘먹고 아내에게 선물한 꽤 큰 알알이 휘황하게 반짝이는 특별한 반지였다.이 반지를 받으며 아내는 얼마나 기뻐했던가,아내도 반지를 잃어버릴까 걱정된다고 곽 속에 고이 보관해 두고 가끔 들여다 보기만 했는데.

이 노인은 안나의 손을 잡았다.

" 네 손에 내 아내 반지가 끼어 있을 때 너는 우리 딸이란다. 그럼 너의 딸은 내 손녀이기도 하지. 이 할애비를 믿고 네 모든 걱정을 맡기거라" 안나는 기대하던 파파의 말을 들으며 은근히 웃음지었다.

" 파파가 있어 정말 든든하고 힘이 나요" 안나는 이노인의 나무 껍질같이 메마른 손등에 뺨을 비비었다.

'조상은 으례 후손의 밥이니라, 그 밥 많이 먹고 튼실하게 살아갈찌니' 이노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밖에선 지후가 조카뻘 되는 안나의 두 딸 해리와 세라 앞에서 뽐내듯 트랙터를 몰며 잔디를 깎고 해리와 세라는 사가지고 온 꽃모종을 화단에 심으며 뭐가 재밋는지 유쾌하게 깔깔대고 있다.해마다 소녀들이 심어주는 꽃으로 노인의 집은 여름꽃이 무성하다.

' 좀 늦었지만 지후에게도 짝을 지어 줘야 하나' 노인은 또 갈피없는 생각에 잠기며 생기찬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봄이 무르익는 4 월이다.



건강 검진의 날이다.

이부생 노인은 샤워를 한 후 허리에 차고 있던 변 주머니를 떼어내고 피부 보호판을 새것으로 교환했다. 변 주머니 내용물을 비워내고 물로 헹구어 주머니 입구를 단단히 여미고 다시 제 자리에 끼어 넣는다. 외출시에는 반드시 허리 보정 벨트로 몸의 균형을 잡는다. 8 년 전 직장암에 걸려 수술로 15 센치 쯤 대장 끝부분과 항문 괄약근을 잘라내고 배 옆구리를 뚫어 영구 장루 시술을 받았었다.  직장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 병변을 알았으므로 그 때는 죽음을 각오했었고 수술실로 들어갈 땐 죽도록 두려웠으며 배를 뚫어 장을 꺼내고 피부 보호판을 부착하여 연결한 주머니에 변을 배출한다는 데에는 엄청나게 공포스럽고 기괴망칙했다. 그러나 오늘 날엔 이력이 나서 능숙하게 관리하고 약간의 불편은 있을지라도 이만큼 건강하게 산다는게 고맙기만 하다. 세 달마다 주치의 사무실에 가서 장루 부분을 체크하고 피검사와 심전도,때로는 혈류 검사도 하고 의사와 대면하여 먹고 있는 약과 건강상태들을 상담한다. 이노인은 항상 검진하는 날은 긴장한다. 내 몸의 모든 상태가 잘 유지되고 있으려나?

의사 오피스는 아담한 일층 건물이다, 넓은 대기실에 들어가 푸론트 안내에게 시간 예약을 확인하고 등록을 한다. 그리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대기실 긴 의자에는 여러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잡지를 보거나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부분이 비슷한 또래 노인들이다. 노인들이 이렇게 최첨단 의료 혜택을 받고 있으니 장수 노인이 많아지는게 확실하다. 젊은이들은 노인의 장수로 인한 소셜 연금이나 의료비용의 적자를 걱정하지만 역시 노인들이 장수한다는 건 그만큼 살만한 좋은 세상으로 된게 아닐까. 상념에 잠기며 무심코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여인을 보았다. '아, 초이를 여기서 보다니, 이 곳은 주로 대장암이나 방관암 환자들이 오는 곳인데 혹시 저 여자는?'

" 하이,미세스 쵸이"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서 아는체를 한다.

쵸이여사는 무척 당황한듯

" 안녕하세요? 정기 체크업하러 오셨나 봐요" 마지못해 그래도 상냥하게 인사한다.

"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주치의가 누구신데?"

그 때 쵸이를 호명하며 낮익은 간호사가 나왔다. 쵸이가 얼른 대답하며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방은 이노인 주치의의 방이다.


며칠 후 이노인은 시니어센터 라이브러리에 들렀다. 깔끔하고 조용한 방에는 책들이 꽂쳐있는 서가가 열 맞추어 늘어서 있고 오픈 열람할 수 있게 책상과 의자가 가지런히 구비되어 있다. 발자국 소리조차 조심하며 살금살금 둘러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 초이가 있다. 그녀는 골똘이 책읽기에 열중하고 있다. 노인은 옆으로 살그머니 다가가 앉으며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넘겨다 보았다. 인체해부도가 그려진 의학 서적으로 보인다.인기척에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는 '아'하고 짧게 놀란다. 그리고 의아함 85% 15%의 엷은 반가움으로 억지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 잠깐 나가서 얘기할까요" 이노인은 눈짓을 한다.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얘기하고 싶다.그녀는 책을 덮고 순순히 따라 로비로 나왔다.이 노인은 자판대에서 오렌지 쥬스를 두 개를 꺼내 와 그녀와 마주 앉았다.

" 수술을 하셨다구요? 얘기 듣고 놀랐어요. 고생했지요?"

" 어떻게 아셨어요? 난 광고하고 싶지 않아 비밀이었는데요."

" 다 아는 수가 있어요, 세상에 비밀이 있나요? 그래 회복은 잘 되고 있는거지요?"

" 아,몰라 그렇게 꼬치꼬치 알려고 하지 마세요.아시면 괴로와요" 그여자는 배시시 웃었다.

" 그 괴로움 함께 나눕시다.기쁨은 나누면 두 배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셈법 모르세요?"

이부생 노인은 마주앉은 쵸이를 자세히 살폈다. 관심이 있었으니 먼 빛으로 늘 봐왔고 지난 번 라인댄스 때 만남은 너무 긴장해서 머리가 하앳었고 오늘에사 가까이 그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녀는 눈매가 어글어글해서 웃는 상으로 주름이 몇 가닥 있고 다정하고 온화해 보여 어떤 말에도 친절하게 응답해 줄 것 같은 따뜻한 인상이다.'아,사람을 편안하게 해 줄 것 같은 저 모습에 내가 끌렸던 거구나 그러나 이면에 독성있는 가시에 대한 경계도 안심할 수 없어, 한 번 당해봤잖아, 긴장하지만 역시나 가슴이 쩡해 진다.

" 나도 대장을 잘라내 옆구리로 변을 빼낸다오,벌써 8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럭저럭 잘 살고 있어요"

" 어머 어머," 쵸이는 눈을 호동그레 뜨며 커다란 놀라움으로 입을 막는다. " 어쩜 어쩜 그래도 건강해 보이세요"

정면으로 촛점을 맞추어 노인을 직시하는 쵸이의 눈길이 따깝다.노인의 얼굴이 또 붉어진다.

"그래봤자 마른 무말랭이처럼 쪼그라진 얼굴이요,나이는 어쩔 수 없는거지요." 노인은 멋쩍게 말하며 슬며시 웃는다.

"저는 방광암 수술로 방관을 절제했어요, 소장을 연결해 요루주머니를 차게 됐어요.수술한지 이제 한 달 됐어요. 엊그제는 요루 주머니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러 갔던 거얘요.아직까진 방문 간호사가 도와 주었지만 이젠 나도 직접 해 보려구요.하지만 너무 겁나고 끔찍했어요"

" 염려 말아요, 내가 옆에서 도와 주리다. 동병상린이란 말도 있지않소?"

"옆에서 도와 주다니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호다닥 놀라는 초이의 과장스런 몸짓에는 앙큼한 여인의 향기가 묻어났다.


 오랜만에 절친 김박사로 부터 전화가 왔다.그 역시 오랜동안 수술전문 의사로,또 대학교 교수로 바쁜 세월을 보내고 이제사 여유롭고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

" 날씨 좋은데 골프나 한 라운딩 돌자구, 어서 나와"

김박사는 여전히 두툼한 몸매에 혈색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빨간색 바지와 빨간색 스트라이프가 들어 간 폴로셔츠, 이마를 가리는 챙 넓은 모자,그를 보면 언제나 삶의 활기가 넘친다.

" 이교수,요새 자네의 알록달록한 소문이 우리 늙은이들에게 화제거리라네"

역시 그게 궁금해서 불러낸 거구나, 생각하면서도 불쾌하지 않다.오히려 광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골프 라운딩은 핑게거리고 뜻이 맡는 친구끼리 만나면 남자들도 무척 수다스러워진다. 몇 코스 돌다가 흐지부지 발걸음은 휴식처 정자아래 벤치로 향한다.오월의 연초록 잔디와 프르른 하늘 무한공간을 거쳐오는 오월의 바람이 상큼하고 감미롭다.

"한 공식 만찬회장에 크린턴 대통령,조지 부시,버럭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초대를 받았다네.그런데 보좌관들의 실수로 이들은 이 행사를 하오의 가든파티 쯤으로 생각하고 넥타이 없이 오픈 셔츠와 캐주얼 복장으로 갔는데,웬걸, 다른 이들은 모두 정장 턱시도 차림이었다네"

"먼저 클린턴은 캐주얼 복장을 해도 큰 실례가 아님을 설득하니 그 말빨에 넘어가 참석자 중에는 자기 넥타이를 푸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네도 그 칼럼을 읽었나 보네"

"한 냉소자가 말했지,'구라'하고는"

"다음 부시는 어쨋었지?"

"부시는 놀란 기색으로 이딴 장소에는 오지 않겠노라며 곧장 집으로 돌아가 아직도 분을 사기지 못하고 그 따위 사교파티나 디너파티는 모두 시간 낭비고 사회악이라며 금지령을 운운했다네,"

" 역시 뒷말이 있었지 '그 성질머리하구는---' 그런데 오바마는?"

" 오바마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조용히 세면실에 들어가 셔츠 목 단추를 채우고 만찬장 한 구석에 말없이 앉아 저녁을 먹고 자기 어중간한 복장에 눈길이 쏠리지 않도록 얼른 나갔대요."

" 누군가 말했다나, '소심하기는' 하하 그런데 트럼프는 역시 스케일이 달라.날씨도 좋은데 왜 이 갑갑한 실내에서 저녁을 먹나,자리를 정원으로 옮겨 가든파티를 하자는거야,결국 정원에다 다시 세팅한 가든 파티에서 트럼프만 골프셔츠에 쟈켓, 특유의 야구모자 까지 완벽하게 어울리는 복장이 되었지. 그는 매우 만족해서 엄지 척했다는 거야"

"역시 뒷말이 있었지,'욕심하나는---'큭큭! 이제 김정은도 국제무대에서 한 몫하잖아, 빠질 수 없지"

"트럼프나 정은이나 삐까빼까 맞먹는 악당들인데 정은이 억지가 한 수 위지,자기 캐주얼 양복에 맞추어 정원의 나무를 모두 베어 파티장 안으로 옮겨 오라는거야,하아 또 누군가 말했다네 '뱃짱 하나는---"

두 노인은 한가로이 떠도는 솜뭉치 구름을 보며 으핫핫 웃고

"누가 만든 말인지 참 그럴듯 해"

이들은 항상 만나면 공통의 관심사나 화제를 이야기로 나누며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다. 본관 건물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시원한 맥주도 한 잔 마신 후 서로에게 건강에 유념할 것을  당부하며 헤어지려는데 순간 문득 이노인이 김박사를 불렀다.

"어이 한 번 자네 부인 모시고 식사나 하자구, 소개할 사람이 있어"

"아, 알아듣겠네,이제 우리 각자 짝들 데리고 자주 만날 수 있겠구만, 그동안 자네가 홀아비라 내 처와 같이 나오는걸 삼가했거든"

"아니 내가 자네 처 눈독 들일까봐 숨겨놨던게야? 에끼,이 사람! 이젠 내가 자네를 조심해야겠어"

"제수님이 꽤 미인이신가 보네,덩달아 내 가슴이 뛰는군"

두 사람은 그렇게 또 한 번 요란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