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다가온 너> 


  이제 너를 생각하면 나는 너를 자세하게 묘사할 자신이 없다. 네 얼굴의 눈 코 입 어느 것도 기억이 안 난다.심지어는 너의 말소리, 네가 좋아했던 음식이나 취향도 뚜렷이 아는게 없다.

다만 너를 처음 보았을 때, 강렬했던 이미지, 네 전체가 하나의 큰 빛덩어리로 다가왔던 걸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다.청바지로 성큼성큼 걷는 다리가 길쭉했고 힙을 덮은 헐렁한 귤감색 울 쟈켓이 네 스스로 뿜어내는 아우라 속에 흐릿한 윤곽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너의 뽀얀 자연피부,쌩얼을 디테일하게 보았다기 보다 그것마져 순수하고 맑은 아침 첫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방울의 이미지로 뭉뚱그려 브레인 기억 창고에 톡 떨어졌었다.

네가 처음 나를 보며 미소지었던가.알 수 없다. 다만 하나의 커다란 광채로만 보였으니까.

 "오빤 왜 잔뜩 찌푸리고 나를 봐요? 뭐 잘 못 됐어요?"

 참으로 천진한 어린 목소리에 나는 움찔 놀랐다. 처음 보는 낯선 아이다. 순간 자각한, 내가 선배라는 우월감으로 슬쩍 목소리를 깔아 거만하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엊그제 입학한 캠퍼스 초보 쟈니키타예요. 같은 과 선배님께 인사하고 있는데요."

 "쟈니키타, 그런 이름이 어딨냐? 농담 따먹기는 집어치우구"

 "너무 길다면 키타는 빼시던지요."

너는 별 일 아니라는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알았다, 쟈니라고 부르면 되겠구나.오늘은 햇볕이 쎄구만, 난 먼저 들어간다."

 난 우리 노탱들이 모여앉아 지나다니는 애들 품평이나 하고 쓸데없는 개그놀이나 하는 본관 건물 앞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강의실로 들어갔다.'무신 개풀 씹어먹는 소리, 쟈니키타가 이름이라니 말야' 마음속으로는 투덜댔지만 여전히 눈이 부셔 찌그러졌던 눈은 아직 제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채 건물 안 어둑컴컴한 복도에서 잠시 휘청거렸다.


"요즘 한국서 유학이랍시고 오는 애들 말이야. 현지에 적응해서 열공할 생각은 개뿔도 없고 지들 끼리끼리 모여 잘도 놀더라. 주말 저녁이면 뉴욕씨티 나이트로 튀는거야, 간도 크지,"

 평소 쓸데없이 흥분 잘하는 탐이 포문을 열었다.

 "요새 젊은 것들을 어째 막냐  지들 하고싶은대로 살다가 죽는거지"

 노탱 멤버들이 대여섯 모였으니 대화가 제법 활기차다.노탱은 글자 그대로 대학생치고 몇 년씩 꿇어 나이 좀 들은 '아재' 같은 애들이다.따라서 이들의 대화는 약간 노파심 비슷하고 회고성 다분한  대화들이 오간다.

필라델피아 시티 한 복판에 자리한 템플 대학교는 공룡대학이다. 전 세계에 해외 켐퍼스를 두고 유학 컨설런트를 파견하여 미국으로 유학오고 싶어 안달하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하였다 . 입학 과정이 까다롭지 않고 학비도 비교적 저렴하다. 따라서 세계 각처에서 몰려온 학생수가 대단히 많고 이들의 수요충족을 위해 학교 시설 규모도 해마다 커져 이제는 손 꼽히는 매머드 대학이 되었다.

캠퍼스에서 한국 유학생들도 꽤 많이 보게 된다. 또한  교포 학생들도 미주 원근각지에서 모여들어 한인 학생들은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얼굴도 비슷하고 언어도 동일권인 유학생들과 본토 학생들은 결코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학생파와 본토파로 나뉘어져 서로 눈도 맞추지 않고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왜일까, 여러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교포측 노탱들은 불만이 많았다.

 "쨔식들이 말이야 한국에서 시시한 대학은 가기 싫구 인서울In seoul 대는 실력이 딸리니 핑게좋게 유학이랍시고  온거 아니냐, 집에서 또박또박 부쳐주는 돈에 잔소리하는 부모도 없겠다 시간은 널널하겠다 가뜩이나 날나리 노는데 이골난 놈들이 이 신천지에 와서 공부에 집중이 되겠냐?"

상당히 신랄한 에릭의 말이다.


"그래두 굼벵이도 굴르는 재주가 있다고 그치들 똘똘 뭉쳐서 족보돌리며 학점 메꾸는거 보통 통빡 아니더라. 족보가 선배부터 착착 대물림이 되어 학점은 어영부영 채우며 넘어가는거야. 쨔식들 눈치만 빠삭해 갖구 말야"

탐이 아니꼽다는듯 침을 찍 뱉으며 말했다.

 " 와우! 걔들 뒷배경 장난 아니더라, 오자마자, 락세스,비엠더불유, 쌈쌈한 스포츠카 포르셰,그런 죽여주는 신차를 빼서 몰고 다니니 계집애들이 안 꼬이겠니?

이십 년이 다 되어 털털거리는 쉐비 웨건을 끌고 다니는 창수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여기 노탱들은 사실 그런 호사를 누릴 처지가 아니다. 강의가 없을 땐 부모 옆에서 비지니스를 도와야 하고 용돈도 노동과 바꾸며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장학금이 아니면 부모에게 학비를 기댈 수 없으니 공부하는게 온통 론(학자금 대출)이고 그나마 학업에 올인할 형편이 안되면  과목 별로 수강 신청해서 졸업 학점을 맞추려니 하세월 나이만 먹고 학업에도 요령이나 부리는 능구렁이가 되었다.

 "야 밥,아까부터 왜 길만 보냐? 누구 기달려 ?"

탐의 말에 몽롱하던 나는 고개를 돌렸다.딱히 누구라 할 거 없이 자꾸 정문 쪽에서 들어오는 애들에게 눈길이 가고 있었다.누구를 기다리는지는 스스로도 확실하지 않다. 역시 말없이 우르르우르르 몰려들고 나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아담이 불쑥 말했다.

"이번 학기에 새로 들어온 법대지망  신입생, 쟈니라고 했던가 ,그 기집애는 유학파니? 본토파니?"

 불쑥 여럿에게 물었다.

 "걔 유학생 아니다, 쨔식아, 말 좀 인격적으로 써라.기집애가 뭐니"

 나는 대답인지 뭔지 화가 난 목소리를 퉁명스럽게 아담에게 던졌다.

"햐 저는 더한 말도 잘 하면서 새삼, 뭐 못 먹을거 먹었니?"  

 아담이 내게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자 나는 대꾸 없이 벌떡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젯 밤 너의 집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네 생각을 했다.

너는 어제 저녁 7 시 반에 집에 들어왔다. 네 방에는 9시 쯤에 불이 켜졌고 그 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너의 오렌지 빛 환한 창문을 바라보며 네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머리 속에 그려보는게 무척 흥미로웠다. 너는 방에 들어오자 백팩을 책상 위에 던지고 네 연한 살구색 피부를 감싸고 있던 투박한 청바지를 벗어던진다. 베스룸으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바디클린져를 풀어 온 몸에 골고루 칠한다.레이스같은 비누방울로 뒤덮힌, 물줄기 속의 너의 나신, 거기서도 눈부신 빛을 뿜을까,잠깐 상상속의 유리문이 수증기로 덮힌듯 뿌얘지며 현기증이 났다. 젖은 긴 머리는 해초같이 네 어깨를 덮고 너는 기분좋은 콧노래를 부를까.상상은 한없이 이어진다.늦도록 불 켜진 네 창문을 바라보며  마감이 빠듯한 리포트 작성에 잠을 잊은 걸까 짐작해 보기도 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네 방 창문에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며 나도 서서히 네 집 앞을 떠났다. 네게 주려고 준비해 간 꽃다발은 이미 시들고, 시들어가는 장미향이 차 안에 숨 막히도록 가득해 차창을  내려 심호흡을 했다.

오늘, 너를 꼬셔 보려  준비했던 꽃다발을 주지 않은게 다행이야

쟈니, 넌 바라보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내 맘이 가득차, 잘 자라. 내 사랑 쟈니

쟈니, 나는 좋은 놈이 못 돼, 20 대 초반, 젊은 놈이 해볼 만한 나쁜짓은 칼 든 강도짓 빼곤 다 해봤고 계집애들도 수없이 건드렷다 걷어차서  눈물께나 빼게했지.대개의 계집애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사내에게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초대받고 꽃다발로 프로포즈까지 받으면 꼴닥 넘어가거든. 특히 너같은 애송이 초짜들 말이야. 너를 대상으로 그런 사기성 코스프레를 할 맘이 싹 가셨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난 내 수준에 맞는 다른 계집애한테나 가서 이 허전한 맘을  풀어내야겠구나. 쟈니 너에게 내 더러운 욕망의 꾸정물을 덮어씌울 수 없어. 잘 자라 순결한 쟈니


"오빠, 오빠는 나를 되게 좋아하는구나"

너의 한 옥타브 쯤 높은 목소리에  펄쩍 놀라 나는 우선 주위부터 둘러 보았다. ' 얘가, 얘가 뭘 믿고 이렇게 앞서가니' 독심술이라도 배웠던거야. 하지만 난 무심한 척 말했다.

"너 도끼병이 단단히 든게야, 너무 드리대지 마라. 소문 나면 네가 곤란하다"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를 몇 가지로 대 볼까요?"

너는 장난꾸러기가 되어 거리낌 없이 다가오며 킥킥 웃었다.

 "첫 째, 오빠의 시선은 늘 나를 따라다녀요. 근데 웃기는 건 내가 보면 얼른 시침을 떼고 딴데를 봐요.

 둘 째 ,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 유쾌하고 재미있다가도 나를 보면 갑자기 무뚝뚝하고 부자연스럽게 버벅대다 머쓱하게 자리를 뜨고 말아요"

 흠, 제법 논거가 그럴듯 해, 나도 모르는 사이 흥미를 느끼며 세 번 째는 뭐냐고 물었다. 쟈니는 더욱 얼굴을 내 가까이 디밀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왜 번번히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감시하지요? 나 점점 무서워지려 해요"

아, 그건, 그건 하며 손이 머리로 갔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마구 긁적댄다.

"그러니까 오빠, 의심스런 행동말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구요. 쟈니는 품이 넓은 여자랍니다"

 나는 앞뒤 없이 불쑥 말했다.

  "너, 너 볼링 좋아하니? 생각있으면 토요일에 볼링장으로 나와라"


 그래서 너는 우리 노팅팀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함께 어울렸다. 때로는 네 친구들 까지도 합세해  우리 노팅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주었다. 진정 우리 노팅들은 너희들의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자 아주 신바람이 나서 꺼칠하던 얼굴에 쉐이브도 자주 하고 그리고 제법 오데콜론의 향기까지 풍기는 거였다. 너는 늘 내 곁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내 주인 행세를 하였다.나는 네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건 내가 너를 마크하지 않으면 어짜피 다른 놈이 접근할텐데 그 꼴은 내가 못 보지.그렇찮아도 아담 녀석은 항상 너를 넋놓고 보잖아? 언젠가는 내게 불평도 하는거였다.

" 얌마, 넌 애리는 어쩌구 양다리냐?내가 확 애리한테 꼰지를거다." 하며 제법 엄포까지 놓는거다.

'아, 애리' 생각하자 갑짜기 짜증이 차올랐다.그 계집애를 어떻게 너와 나란히 비교한단 말인가.애리는 애초 순수하지 못하게 나한테 접근해 왔다. 부잣집 아들, 앞길이 확 트인 공부 잘하는 법대생, 졸업한 후 변호사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지 미래는 따놓은 당상이다.하며  육신공양도 서슴치 않는 거 나는 알고 있다.그런 속셈을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나는 또 뭐냐.다루기 쉽다고 함부로 이용해 먹는 나란 놈은 또 괜찮은 놈이냐.욕지걸이로 투덜대며 분풀이를 위해서라도 오늘 저녁 애리를 불러낼 생각을 했다.젠장!


네가 자신의 베프 혜진을 탐과 연결해주어 칸막이 바에서 거창하게 쏘맥 파티를 하며 언약식을 치룬 날이다.그들이 공식 커풀로 인정되어 '오늘 밤 베이비만은 좀 유보해라'같은 진한 농담을 던지고 뿔뿔이 흩어진 후, 아까 언약식 때는 진행자로 나서서 신나게 웃고 떠들던 네가 영 기분이 꿀꿀한지 말이 없다.

"쟈니, 왜 그래? 뭐 잘 못 됐어?" 나는 너의 침묵이 부담스러워 슬그머니 물었다.쟈니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역시 대답이 없다.나는 공연히 불안해지고 조급증이 나고 안절부절해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말을 하라구, 말을 해야 알아 먹지"

"혜진이가 부럽더라" 너는 어깨 너머로 그 말만을 던지며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에 세워 둔 네 차로 갔다.

너의 하얗고 깜찍한 포드 스포츠카 스탐이 과격한 엔진소리를 내며 출발하고 난 다음 나는 얼빠진 놈이 되어 마후라에서 쏟아져 나온 매케한 매연을 고스란이 덮어쓰고 한참이나 있었다.


드디어 아담 녀석과 한 판 붙었다.이건 피치 못할 숫컷들의 운명적인 대결이다.평소 녀석이 네게 넋이 빠진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너와 썸을 타고 있는게 내 눈에도 훤히 보이더라.

이 번 주말 영화나 보러 가자고 맥없이 던지는 내 말에 너는 눈을 반짝이며 주말에는 뉴욕 간다고 했다.

"아담 오빠가 이번 주말 나 보여주려고 브로드웨이 티켓 끊어 놨대 < 바람난 고양이들 >보고 싶었는데 기대 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니"

이런 젠장,내가 너무 나르시즘에 빠져 뒤쳐지고 있는게 아냐? 뭔가 결단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이젠 너는 나만 보면 아담오빠가 어쩌구저쩌구, 아담오빠가 이 번에는 또 머시기 거시기 아담 오빠가 입에 걸렸다.내가 기가 막혀 뺑하니 입을 벌린채 듣고 있노라면 너는 더욱 신바람이나서 침을 튀기는 거였다.

아담 내 이 녀석 쌍판에 한 방 펀치를 먹일테다.네가 내 순결한 쟈니를 채가려 하다니.

"아담 너 파크 왼편 숲으로 가자,할 말이 있어" 녀석도 각오하고 있었던 듯 "좋아, 당장 가지"하며 당당히 앞 서 가는 것이다. 사람 기척이 뚝 끊어진 후미진 숲으로 들어서자 나는 기선을 잡아 기습적으로 녀석의 면상에 강펀치를 날렸다, 주먹 쥔 손 끝으로 인간의 여린 뼈와 살이 뭉개지는 느낌, 아싸! 네 녀석 정면으로 맞았구나.그러나 녀석의 순발력 있는 강한  주먹 또한 내 얼굴을 노리고 뻗어왔다.귀바퀴를 스치는 살기어린 바람을 느끼며 한 주먹은 얼굴을 커버하고 한 주먹은 놈의 턱을 향해 또 한방 어퍼컷의 순간을 노렸다.녀석도 한 치의 방심없이, 나를 꼬나보며 우린 그렇게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았다.녀석의 얼굴에 코뼈가 나갔는지 피가 엄청나게 번져 흐르고.눈두덩도 점점 부풀며 한 눈이 찌부러지고 있다.순간순간 변하는 아담의 면상을 보며 문득 겁도 나고 따라서 전의도 상실되어,

"얌 마,우선 피나 닦아라" 내 셔츠를 훌떡 벗어 그에게 던졌다.놈은 내 셔츠로 면상을 훑으며 낭자한 피와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웠는지 짐승같은 목소리로 울부짓는 것이다.

"밥 이 나쁜 놈아,넌 계집애들마다 건들고는 걷어차는 바람꾼이 아니냐?쟈니는 너한테 일회성으로 그렇게 끝날 애가 아니다. 쟈니를 너같은 악당한테 방임할 수 없어,쟈니는 내가 지킨다

넌 애리나 잘 챙겨라."

젠장, 또 애리 그 계집애가 내 앞길을 막는구나.


엊그제  애리의 아버지를 만났다.그는 이 곳 카운티에서 제법 큰 교회 목사이다. 하필 목사의 딸이라니,쩝, 그는 점잖을 빼며 나를 이래 위로 꼼꼼히 스캔한다.이건 뭐냐,내 아버지인 한국계 은행의 행장과 그 녀의 아버지 대형 교회 목사가 결탁하고 여우같이 간교한 애리가 연출 하여 나를 옴짝 못할 코너로 몰아 넣자는 음모 아닌가,

"자네 변호사 시험은 언제 있는가?" 묻지만 그는 내 대답은 상관하지도 않고 소위 인륜지대사로 매듭을 짓는다.

"어서들 날짜 잡아,그만했으면 사귀기도 오래됏으니 알만큼 다 알것이고,내 딸 애리는 나이도 과년하여 이 애비의 체면도 있고 하니 말야, 자네 아버지와도 다 의논이 되었네.자네 결정만 남았어"

아, 바비킴의 청춘은 내 원한 바가 아닌 막다른 길로 빠져드는가.이렇게 끝나가는가. 눈부신 광채 속에

내 순결한 쟈니, 천사같은 쟈니를 눈 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 채, 끝이 뻔한 허상의 인생에 목매어 끌려가게 되는가.


"쟈니 나 약혼하게 됐어,집안과의 결정이라 어쩔 수가 없구나"

한 밤 중 전화선 저 너머에서 너는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네가 나를 소망한 만큼 나를 미워해라.욕을 해도 싸다.그치만 내 진심은 이렇다.내 인생 오직 하나 뿐인 내 사랑 너, 너를 계속 보는 것만도 닳을까봐 아까워 늘 눈길을 떨구던 나였다. 이건 내 영혼의 고백이다"

나는 전화선 너머에서 심하게 흐느끼는 네 울음 소리를 들으며 전화의 종료버튼을 거칠게 눌렀다..

그리고 스스로를 심하게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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