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이불 퀵>


 또 다시 이불을 화다닥 제치고 솟구치며 일어났다.

이게 벌써 몇 번 째 ?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밖에는 장마비, 들이치는 빗물을 피하느라 창문을 모두 닫은 방안은 그대로 찜통 그것이다.

끈적이는 살갗이 린넨 100% 까슬한 이부자리마져 스치기를 거부하며, 그리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목덜미에 축축해지는  베개를 혐오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잠 못들게 하는 것은 밖으로 부터 오는 한여름 찜통 더위만이 아닌 것을 나는 잘 안다. 오히려 내 심장 피를 들끓게 하는 이 노여움과 화통, 그 다음 슬그머니 찾아오는 후회와 자괴 이들이 공모하여 나를 활활 타오르게 한다.그 열기가 나를 삼키려 한다.

그 녀석이 평소에도 비열하고 약삭빠른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뒷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아까 낮 점심식사 후유증으로 슬슬 졸음이 오는 시간, 사무실에서 녀석이 내게 다가와 한 대 꼬슬리러 가자고 눈짓을 했다. 흡연자들은 슬프다, 마치 전 인류 앞에 큰 죄나 짓는듯 공범의식을 갖고 끼리끼리 구석진 곳으로 몰려서 공연히 서로 눈치를 보며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한 구름과자를 뻐끔거린다.

 헌데 녀석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히부연 여름 하늘을 향해 콧구멍 두 줄기 연기를 힘차게 뿜어내며 돌지난 애처럼 벙긋벙긋 웃는다.

"어이, 이팀장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묻는 내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하는 말이

"야, 나 오늘 리나가 사주는 점심 먹었다. 아가씨가 먼저 자청해서 사 주는 점심이라니,완전 꿀맛이더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맘 속으로 외쳤다.'왜 왜 리나가 왜 너한테?'그런데 이 작자가 내가 얼마나 리나한테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기분 나쁘게 나를 흘긋 보며 한 층 더 능청을 떤다.

"근데 리나 요것이 보통내기가 아니데, 밥 다 먹고 일어서며 '오빠 백일 이벤트 기대되요'하고 눈을 찡긋하는거야, 백일 이벤트는 어떻게 하는건고?"

내 눈에 불이 확 붙어버리는 순간이었다.지난 석 달 간 제일 일찍 출근해서 몰래 그녀 책상 위에 장미 한 송이를 놓아 준게 누군대,고백할 날을 기다리며 남 몰래 꿈을 키우던건 누군대,근근히 모은 돈으로 커풀링을 준비하고 서플라이 프로포즈 준비를 하고 있는 건 누군대, 맹꽁이 리나야 너 이런 중대한 일에 방향 감각을 상실하다니. 갓 들어온 신입이 사내 연애로 문제가 생길까봐 내딴에는 신경쓰며 은밀하게 준비했었는데,리나 너는 중대한 착오를 한거야,이팀장, 너는 내 맘을 알만한 놈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부아질이냐, 하도 어이가 없고 존심이 꼴려 반남아 남은 꽁초를 집어던지고 돌아섰는데.

이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자니 새삼 그 유들유들한 녀석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엉뚱한데 눈웃음을 날리는 리나가 생각나 잠이 멀리 도망가고 성질만 뻗치는 것이다.

"어머니,에어컨은 뭐 장식품으로 세워 뒀어요?이런 밤엔 쫌 쫌 에어컨 좀 켜세요!"

애꿎은 안방에 대고 버럭 고함을 질러댄다.

시계를 보니 밤은 이미 자정을 넘어 3시에 육박하고 있다.


 '음,마음을 가라앉치고 잘 생각하면 국면을 바꿀 방법이 있을꺼야. 까짓 정 엉키기만 한다면 내가 솔직하게 다 불어 버리지. 진심을 고백한다면 오해도 풀리고 리나는 내게 미안해 하겠지'하며 평정으로 가다듬는다.그러며 복식호흡까지 동원해 애써 잠을 청하는데 묘하게 귀청을 때리는 불길한 소음, '애앵'

 또 다시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 놈을 잡지 않으면 내 피가 털린다.어디 그 뿐이냐 커다랗고 붉게 부푼 흉칙한 키스마크가 얼굴 한 복판에 생길지도, 상상만으로도 진저리를 치며 불을 켠다. 한마리  모기와의 탐색전과 육박전,살륙전 까지 온힘 다해 치루자 잠은 멀리 달아나고 벌써 창 밖이 훤해지고 있는게 아닌가.짧고 무더운 여름밤을 불면으로 지새운 것이다.이 눈 두덩이 다크써클이 뺨까지 내려온 너구리같이 우중충한 얼굴로 내일 리나에게 고백하기는 다 틀렸다.며칠 여름 보양식으로 심신을 정비하고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어 새 공략을 세울 것을 다짐하며 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오매,오매! 얘가 웬 늦잠이라냐, 화사 갈 시간이 발써 지나뿌렀는디"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어머니의 걱정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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