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와 동거.

 

  돌이켜 보면 그 무렵 우리집 안에는 불길하고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

마치 우리 네 식구 중 누군가를 잡아  가려고 단단히 벼른 저승사자가  집안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듯 분위기가 썰렁하고 음습했다

그런 불길힌 징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우리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아주  바빴다, 아이들은 연속되는 학교 일로 일정이 꽉짜였고 . 우리 부부는 눈만 뜨면 세탁소에 산적되는 빨랫감을 처리하느라 부시시한 모습 그대로 벤 트럭을 몰고 가게로 달려가기 바빳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일찍 날만 훤해지면 각자 할 일따라 허둥허둥 뛰어나간 후 집 안은 적막강산이 되었다. 풀썩이며 부유하던 먼지는 조용히 내려앉아 바닥과 창틀에 쌓이고 천정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거미들은 살금살금 기어나와  조용히 거미줄을 쳐서 벌레들의 함정을 만들고 바퀴벌레들은 간밤의 치열했던 생업을 마치고 소굴로 들어가 암수 쌍쌍이 사랑을 나누며 후손을 불려가느라 조용했다.뒷뜰에서는  키큰 나무 에 깃들여 사는 몇가구의 다람쥐 떼들이 제 세상인양 뛰놀아  인간의 입김은 멀어지고 그늘진 어둠 속에 원초적 자연의 애니미즘만이 자욱해졌다.

 

어느날 아직 여명이 희미한 이른 새벽   둘째 딸 에레나가 우리방 문을 두드렸다  남편과 나는 깜짝 놀라 문을 열고 쓰러져 있는 에레나를 잡았다.

얘는 이제 막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다가오는 구월이면 대학 기숙사로 들어갈 참이었다.

" 엄마 숨이 답답해서 죽을거 같아요, 숨이 쉬어지지 않아요"

하얗게 질려 몸도 가누지 못하는 에레나를 보고 우리는 너무 놀라

곧 아이를 싣고  근처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

" 몸의 산소농도가 15%밖에 안 됐어요. 조금 더 지체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다행스럽게  빨리  원인을 알아내어 급히 산소를 공급하고 처치를 하여  위기는 넘겼지만 원인은 좀 더 검사해 봐야겠어요.

하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일단 한숨 돌리고 가게 문을 열기위해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한종일 일을 하면서도 둘째 에레나가 '왜 갑자기,어떻게 언제까지 투병을 해야 할지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늦은 오후 가게 문을 닫고 다시 찾아 든 병원, 우리는 닥터에게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 불러드크럿( 폐색전증 )으로 진단되었습니다 . 응고된 핏덩이가  폐로 들어가는 동맥을 막았던 겁니다. 따라서   산소 공급이 안 되었고 호흡곤란이 온겁니다 . 지금 에레나의 피는 너무 띡(진)합니다. 그래서 혈전의 위험이 있어요.이런 혈전이 만약 심장 동맥을 막으면 심장색전증으로 절명하는 수도 있습니다. 혹시 따님이 담배를 피우거나 마약을 하고 있습니까 ? 또는 임신 중절이나 피임 약을 상시 복용하는 중인가요?"

" 아니 이제 막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앞 둔 어린 애가 그런 엄청난 짓을 하겠습니까?"

" 네 우리도 에레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도 전혀 부정하였습니다. 그 원인을 우리도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치료방법으로 우리는 특수한 주사액을 공급할 것입니다. 혈전용해제인데 이에는 상응하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즉 이 주사액이 효과를 발휘하는 동안은 몸의 면역력이 매우 약해집니다. 면역체계가 너무 허약해져 온갖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나 체질적인 병이 걸려들 위험이 크니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에레나의 피가 다시 정상 수치로 맑아질 때까지 입원 치료 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게 얼마나 걸릴까요 ?

언제라고 확정할 수 없어요. 아마 일년 이상이 걸릴수도  있어요  

병상에 누워있던 에레나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소리친다

안 되요 그럴 수없어요. 난 예정대로 구 월이면  칼레지에 가야 해요.

에레나의 강한 반발과 고집으로 그 애는  결국 급한 불만 끄고 조기 퇴원하여 대학 기숙사로 들어 갔다

그러나  그 후 에레나는 대학 기숙사에서 응급실을 왔다갔다 하며  투병해야 했고 ,  구토와 메스꺼음으로 입맛을 잃어 허기와 영양부족으로  온갖 고생을 했다. 건듯 부는 실바람에도 감기로 콜록거렸고 각종 아이들이 몰려있는 기숙사에서 조그만 바이러스성 병만 돌아도 에레나에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위기가 왔다.실감나는 죽음 앞에 내몰린 에레나는 삶의 낭떠러지에서 미약한 삶의 끈을 잡느라, 견디고 노력하고 또 지쳐갔다.

병실에서 기운을 잃고 차마 삶의 의욕도 놓아  절망에 빠진 에레나에게 옆 병상의 한 노파가 담배 한 곽을 던져  주었다.

한 번 피워봐라 마음이 꽤나  진정될꺼야.

에레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목숨, 사는 동안 즐기는 거야,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렇게 에레나는 삶과 죽음,절망과 포기 사이에서 혼돈의 대학 생활을 그래도 끈질기게 버텨냈다.

 

남편은 미국으로 이민와서 고된 일을 하며 부쩍 술이 늘었다.

한 종일 뜨거운 세탁 공장에서 더러운 옷들을 대량으로 빨아, 대리고 택을 선별하여 비닐 백에 포장해  기다란 랙에 걸기까지 쉬지않고 움직이면  녹초가 되어  집에 온다. 땀으로 축축한 몸을  찬물로 샤워하고. 산듯하고 보송보송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후 차갑게  시야시된 맥주를 시원스레 마시는게 삶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주량이 늘어나며 뱃살도 늘고 혈압 수치가 높아지고 악순환이 계속되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게 사는게 일상아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베스탑을 나오다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작은 애는 대학 기숙사에 가 있고 큰딸 지니와 나는  앰브런스를 불러야 되는지 당황했다. 그러나 몇 분 후 다행히도  똥을 한 무더기 싸더니 정신이 돌아왔다. 우리는 너무 반가워 더럽거나 말거나 아랑곳 없이 맨손으로 오물을 치우며 기뻐했다. 그 후에도 그에게 서너 번  그런 유사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붙잡아 갈 때가 아니었는지 곧 멀쩡하게 깨어나고 일을 계속했다.

나에게도 위험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날도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택을 부치고 바쁘게  뺑뺑이를 치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악랄하도록 무시무시한 어지럼증이 나를 엄습했던 것이다. 마치 발 밑에 깊고  거대한 검은 구덩이가 나를 강력하게 잡아 당기듯  아래로 깊이깊이 끌려든다. ' 아, 의자 좀 !'하며 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의자에 앉아 온 몸의 무게를  의자에 싣고 힘을 뺐다. 이건 어디 몸이 아픈 것도 아냐, 마치 마녀가 주술을 펴 검은 기체로 나를 옭아매는 듯 야릇하고 초월적인 분위기에 나는 무의식 중에 반발하고 저항했다. --끌려갈 수 없어, 정신을 차려야 해. --안깐힘으로 버티다 보니 서서히 의식이 돌아온다. 엄청난 폭우가 지나고 맑은 하늘에 볕이 나오듯 모든게 멀쩡해졌다.

잠시 나를 덮쳤던 저승사자의 펄럭이는 날개짓이 일단 물러  갔지만 . 그러나 그는 억울했는지 또 나를 시험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은  일주일 동안의 수입을 합산하고 그리고 빌들을 첵크하고 종업원들에게 페이할 돈을 계산해 각자 봉투에 담아놓는 날이다.

그날도 여느 금요일처럼 일을 보고 있는데 저 쪽 거실에서 '부스럭'하고 쌓아놓은 신문지 꾸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는 뒷편 가든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날 따라 남편도 일찌감치 침실로 올라가고 항상  곁에 있던 지니도 제 방으로 올라가 적요가 무겁게 사방을  채우고 있는 밤이었다.

'무슨 소리지?'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기울였으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적막하기만 하다.

' 아하! 씨씨란 놈이 거실에서 놀고 있는 모양이야'

씨씨는 우리 집 덩치 큰 고양이다. 걔는 늘 내 옆을 지키다 내가 잠자러 올라가면 그도 나를 따라오지만 잠은 지니방으로 들어가 지니와 함께 잔다.'부스럭'의 원인이 씨씨라는 생각은 내 긴장을 풀어놓았고 난 하던 페이퍼 웍 (paper work ) 계속했다.

'이젠 나도 자야지' 하며 각종 서류와 종업원들의 급료, 은행에 디파짓할   돈을 챙겨 가방과 서랍에 넣고 일어섰다. 올라가기 전 문들을 확인하려 프론트와 창문을 살폈다. 그리고  뒷문을 보려고 컴컴한 거실 쪽으로 가 스위치에 막 손을 올렸으나 ,

순간 왠지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머리에선 '에이 뒷문은 언제나 잠겨 있잖아 사람도 안 다니는 텅 빈 뒷뜰에 뭔 일이 있을라고' 하는 생각이 들며 나는 불을 켜고 거실을 둘러 보려던 마음을 접었다.

뒷 날 나는 문득 생각해 본다. 그 때 내가 망설이고 내 자신 변명하며 잠자러 올라간 건 무슨 까닭이었을까. 신의 보호일까, 아니면 내 자신의 근본적인 공포로 인한 비겁함이었을까.그 때 내가 위험과 맞서다 변을 당했으면 나 하나 잡어가므로써  책임을 다한 사자가 홀가분하게 내 집을 떠나고 내 딸 지니는 무사했을까

결론은 그 밤 그 시간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려와 보니 뒷문은 활짝 열렸고 나의 돈가방도 책상 서랍도 텅 비어 있었다. 씨씨는  잔뜩 겁에 질려 뒷뜰 추녀 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고.

도둑의 두 눈은 내가 책상 앞에 앉아 돈을 챙기고 보관하는 것을 모두 보았던 걸까.

만약 내가 불을 확 켜고 그(들)과 마주쳤다면  나를 피스톨이나 칼로 공격했을까.

" 엄마, 엄마가 무사한게 정말 다행이야 도둑과 엄마가 서로 딱 마주쳤다면 어쩔 뻔했어 엄마는 운 이 좋았어 " 하는 지니와 다른 사람들의 위로로 돈 얼마 잃어버린 건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사신은 내 둘째 딸 에레나와 남편과 나를 잡아가는데 실패했다.그래서 우리 식구 중 가장 건강하고 당당한 큰 딸 지니를 잡아 갔을까.

앞 서  세 번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 '아차!'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태에서  지니를 데려간게 아닐까.

교통사고 현장에 나왔던 경찰이 말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고였다고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덤프트럭이 느닷없이 핸들을 꺽으며 유턴하여 상하선의 중간 녹지대를 고속으로 가로질러  맞은 편에서 오던 내 딸의 차와 정면 충돌했다고,

" 미스 지니는 인어센 했습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이차선으로  제한 속도에 맞추어 적당히 달렸고 아마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유쾌한 출근길이었을 겁니다. 라디오가 켜져 있더군요."

지니를 검시했던  닥터가 침중하게  말했다 .

" 아마 미스 지니는 현실 인식을 할 새도 없이 코마로 접어들어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었을 겁니다."

'오 ! 마이 갓 , 마치 신들이 천상에서 당구놀이를 하듯 달리는 차들을 임의로 조정하여 우리 지니의 차를 때린겁니까?' 울부짖으며 나는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하늘은 더 없이 맑고 가을 끝자락의 햇살은 더없이 은혜스럽게 상냥한 날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