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tter life senior class >

오늘은 베러라이프 시니어 클라스에 나가는 날이다.

그 곳은 매주 월 화 목 금요일 오픈하여, 한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취미 오락 장소와 푸짐한 점심 식사까지  제공하며,  또한 꽤 수준 높은 인문학 강의도 있다.

내가 특히 오늘의 강의를 기대하는 건 이학연 박사가 강의한다는 <미주 한인이 알아야 할 미국사>를

듣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내가  아메리칸 히스토리American History에 별난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고 더구나 이학연 박사에 대한 두터운 호감이 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 짜식이 건방지고 재수없어 '하던 남편의

투덜대던 기억이 남아 있어 ' 낮짝이나 한 번 보자 '하는 정도의 관심이었는지 모른다.

그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오래 근무하던 대학에서 은퇴하고 가끔 초빙 강연이나 연구서를 쓰며 소일한다는 노년의 일상에서는 서로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한 때 그는 한인사회에서 꽤나 존경받는 명사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시의원으로 출마해 정치 변두리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그 인지도의 저변에는 교회의 힘이 컸다. 그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오렌지 타운에서 제일의 성공사례로 꼽혀 수천 명 신도가 모이는 교회에 수석장로였다. 기특하게도 그는 신앙심이 깊은건지 부지런한건지 자신의 장로로서의 역할을 깔죽없이 잘 이행하였고 열정적인 봉사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구역 담당 장로로서 가정예배에도 참석하고 해외 선교활동에도 직접 참여하거나 적지 않은 지원 헌금을 하여 존경과 찬탄을 받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비호감이다. 이유를 대라면 확실하진 않지만 딱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사적인 것이지만.

이학연 박사는 정시에 강단에 섰다. 다크부라운dark browen 바지에 같은 색 계통 체크무늬 쟈켓,  샤츠 깃 안 쪽으로 부드러운 아이보리색 모직 머플러가 세련된 모습이다.

' 저렇게 멋지고 유명한 분을 직접 보다니 ' 할머니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일었다.

나는 제일 앞 쪽 중앙에 앉아 또 다른 눈길로 그를 째려서 바라 보았다.

" 안녕들 하셨습니까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 그는 만면에 상투적인 미소를 띄우고 의례적 인사말로 강의를 시작한다.( 이건 순전히 내 주관적 느낌이다 )

" 여러분들, 미국에 와서 오래 사셨겠지만 먹고 사느라, 자식들 공부 기르치느라, 공부하실 시간은 없이 바쁘게 사셨지요?

영어들은 웬만큼 하십니까? "

" 에구, 무슨 영어를 해요? 40 년을 살았어도 미국 사람 하구는 말도 못하쥬, 벙어리,귀먹어리 눈 뜬 장님으로 살어유" 입 빠른 할머니의 대답에 이어,

" 그저 비즈니스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해요, 몇 십년을 살아도 더 이상 늘지 않더군요 " 느직한 남자 노인네 목소리도 들리고.

" 땅 설고 말 설은 이곳서 불편함을 견디고 참 용케도 살아 오셨습니다.대단들 하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일에서 물러나 느긋하게 살며 그 동안 모르고 살아 왔던 미국의 이모저모를 배워 보겠습니다.여러분, 미국 역사에  흥미있으세요? 그는 대중을 죽 훑어 본 뒤 " 오늘은 미국의 역사를 공부해 보려구요.

교재를 나눠 드립니다 프린트를 보시고 같이 읽어 봅니다.  중요한 부분에는 밑줄을 그으세요 "

" 이거 시험에 나오나요? " 싱거운 질문에 와아 웃음이 터진다.

" 네, 낙제하지 않게 집중하세요"

" 대영제국에 반기를 들고 혁명전쟁을 일으킨 후 1776 년 독립선언서 선포와 함께 독립국가로 세워진 신생 미합중국은 당시 미대륙의 일부인 동부 13 주만으로 형성되었어요.미국의 독립정신은  민주주의 정치사상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독립선언문의 기초작업에 주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토마스 제퍼슨이었습니다 "

문득 그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그의 시선에서는 잠간 동안의 호기심과 엷은 짜증이 스쳤다.나의 레이져 눈빛을 느꼈던 걸까.

" 무슨 의문사항 있습니까? "

"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누구지요 ? " 시답쟎은 나의 질문에

" 미국 초대 대통령이 누군지 아시는 분 대답 좀 해 주세요. 어디선가 들리는 ' 죠지 워싱톤이요' 하는 말에

" 이제 아셨어요?' 하듯 그는 피식 웃는다.

" 지금의 문맥을 보면 제퍼슨이 초대 대통령 같잖아요? 그리고 혁명 전쟁이 무엇인지도 설명해 주셔야지요. "

내 억지 주장에 그는 놀란듯 나를 찬찬히 관찰한다. 이 여자의 정체는 뭐야?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여기 노인네들이나 앉아 있다고 엄벙덤벙 주마간산으로 시간 때우지 말란 말입니다. 여기 노인들 다 무식하지 않고 경륜 다양합니다"

맨 앞에 앉아있어 음성을 높일 필요는 없다, 그저  나는 심술궂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갑작스런 도전에 몹시 당황한듯 머리를 흔든다. 잠시 후 대중을 보고

"  잠시 브레이크Break time 타임을 15 분간 갖겠습니다.각자 일 보시고 다시 오세요"

맨 앞에 앉았던 나와 그의 낮은 대화였으므로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고 화장실로, 또는 커피머신으로 달려 갔다. 그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 온다.

" 실례지만 강의가 끝난후 잠깐 얘기 좀 할까요 "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브레이크Break 이후 시간 그가 준비한 수업은 계속되었다.

"여러분,미국 역사상 가장 현명한 쇼핑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루이지에나 매입이고요,--"

" 다른 건 혹시 알라스카 땅 매입인가요? " 그가 말하기 전 내가 먼저 그의 말을 잘랐다.

"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아닌 매매라는 수단으로 이루어진 영토 확장은 참으로 위대한 미국 역사에 성공사례로 남았습니다"

" 그렇다면 말입니다, 미국은 가장 교활한 상거래 수단으로 영토를 넓히고 정복한 영토에서 진정한 주인을 내쫒고 외부자들이 안방을 차지한 것 아닌가요? "

내가 다시 손을 들고 일어나 이번에는 큰 소리로 반박했다.

이학연 교수는 다시금 낭패에 차서 노기어린 눈빛으로 나를 본다.

'당신 왜 나한테 이러는거야, 일부러 내 수업 방해하러 왔나"  짜증이 부글댄다.

나는 약간 전의를 잃고 소심한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 다만 나는 ---"

" 다만 나는?" 되묻는 그의 눈이 팽팽해진다.

" 우리의 약소국가,내 조국에 대한  무참한 열국의 농단이 연상되어서 해 본 말입니다--만 , 수업에 방해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대로  진지하게 사과하는 제스츄어는 내가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 미인 숙녀로 부터 이렇게 뾰족한 저항에 부딪치면 저는 참으로 난감할 따름입니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모두에게 말했다.


에프터after 대화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고 핵심을 기피하는 내게 얼마 후 그는 전화를 걸어 왔다.

꼭 만나고 싶다는거다. 나도 한 번 부딪쳐 혀 끝에 맺친 말을 쏟아낼거다.

만남의 장소는 전망좋은 해안가 프라자 호텔 카페에서다.



" 잠을 못 이루고 있어요. 며칠 째,

수업 중 당신의 당돌한 행동은 나에겐 뜬금없는 날벼락이고 생전 처음 당하는 난처한 일이었어요, 당신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어요. 왜지요 ?" 그는 잠을 설친 퀭한 눈으로 나를 보자마자 연속으로 말했다.

" 당신은 나를 압니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또는 내가 당신에게 어떤 엑스큐스Excuse가 있었나요?"

그는 정말 작심한듯 연속으로 물어댔다.

" 박사님은 모욕감에 대해서는 매우 생소하시군요. 왜 내게 화를 내지 않으세요? 그래야 내가 평형을 유지하며 공평하게 대답할 수 있어요."

나는 그의 번민에 가득한 얼굴을 향해 유쾌하게 지껄였다. 내 말을 그는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 나는 당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예요, 누가 알겠어요? 당신이 자만하며 만족하고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생각하며 불쾌할 지 말입니다. "

" 그 점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내가 그렇게 잘 못 처신하며 지내 왔을까요 " 그는 낭패한 모습 역력하게 거의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 커피 잘 마셨어요, 내게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있나요?" 나는 겉옷을 걸치며 손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 아니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좀 더 앉아서 얘기해요."

" 뭐가 궁금하시지요?"

본격적으로 따져 보는 검사처럼 찌르듯 선명하게 말하며,내키지 않다는듯 나는 다시 앉았다.

" 이번엔 당신이 대답할 차례예요. 돌리지 말고 말해요, 내게 유감스러운 일이 있어요?"

" 박사님,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는군요

당신은 우리 집에 오신 적이 있어요. 내 예쁜 딸이 손수 커피를 내려 박사님께 대접하기도 했어요.

떠나기 전 당신은 우리 가족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금요일 저녁 구역식구들과 예배를 드렸을 때입니다.

그 후 얼마 안돼 우리는 27 살 활짝 핀 꽃처럼 예쁜 딸을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 상실감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요, 그 위에 사람들의 경원하는 눈초리가 더욱 못 견디도록 괴로웠습니다."

" 사람들이 경원하다니요? "

"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눈길과 말로 위로해 주었어요, 근데 다수의 위안해 주는 착한 마음에 감동하기보다 몇몇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눈초리에 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 저여자는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그런 참혹한 벌을 받는거야. 조롱하고 비웃는 듯한 차가운 눈빛이요, 그리고 그보다 더 한건 무관심한 태도요, 보고도 못 본 척 안면몰수로 일관하는 그런 것이 더더욱 삶을 어렵게 했어요"

" 설마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누가 그런 몹쓸 맘을 갖겠습니까 "

" 바로 당신이 그랬어요, 아세요?" 나는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을 터뜨리며 뾰족하게 후려쳤다.

" 당신은 우리 딸의 뷰잉, 영결식 다 안 오셨구요, 아, 그건 중요한게 아녜요. 훠게릿For get it하겠어요, 장례식 후 주일날  우리 부부가 교회에 갔었어요. 그 때 복도에서 당신을 정면으로 딱 보았어요. 근데  왜 그랫을까요,당신은 우리를 외면했어요.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모르는 사람들 처럼요. 우리는 저 앞서 오는 당신을 보며 벌써 웃음을 띄고 인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예요. 느닷없이 당신으로부터 무시 당하자 우리 부부는 웃던 얼굴이 그대로 굳어 얼어 버렸고 그 충격은 우리를 세상과 격리시키는 빌미가 됐지요. 그냥 우리는 숨쉬는 게 창피했고 무안했고 하늘 아래, 빛나는 햇빛까지도 부끄러워 바로 쳐다 볼 용기가 없어졌습니다. 글쎄요, 우리의 자격지심인지, 또는 소위 말하는  심리적 외상중후군인지도 모르지만요.

당신의 스나비Snoby로 인해 더욱 충격을 받은 이유는 내 남편이 특히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했어요, 그이는 이학연 박사님은 우리가 현실 눈 앞에서 보는 지와 덕 그리고 신앙을 겸비한 모범적인 분이라고 아이들 앞에서 늘 얘기했어요

그이가 당신의 멸시로 인하여 받은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 쨔식이 건방지고 재수없어'하고 투덜대는게 전부였어요, 그렇게 상심에 차서 남편은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집안에 틀여박혀 서서히 죽어 갔어요" 나는 목이 막혀오고 목소리가 떨려나와 말이 끊어졌다.


그는 좀 전 그렇게 조급하게 굴던 마음이 바뀌었는지 넓은 통유리 창 밖을 무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백사장 너머 아스라이 보이는 푸르른 바다의 끝자락은 하얀 레이스 같은 자잘한 파도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 따님의 사고 날짜가 언제였습니까 "

" 1999 년 10월 23 일 목요일이었습니다 "

" 나도 그 날 아내를 잃었어요. 바로 그 날 이혼 판결을 받았습니다. 우린 같은 날 사람을 잃는 슬픔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 난 뭘 보고 있어도,뭘 듣고 있어도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되었어요. "

" 하지만 당신의 아내는 죽지 않았고 내 딸은 죽었는데 어떻게 등가치로 비교할 수 있나요"

그가 서글픈 미소를 띄면서 나를 바라 보았다.

" 아마 당신은 딸이 다시 살아 나기를 간절히 바랬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아내가 그냥 그 날로 죽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랬어요. 차라리 죽어 이별한다면 이토록 내가 비참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그가 다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 집으로 가신다면 제가 모셔다 드릴까요?."

" 아,괜찮아요 ,저도 차를 갖고 왔으니까요"


좁은 교민사회에서 다시는 그와 부딪칠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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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4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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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5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