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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나의 걱정이 사실로 되어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자기네 식구들이 안채를 차지하고 있다
. 안방 건너방의 번듯한 살림가구는 그냥 뇌두고
허접스런 물건들만 이랫방으로 어지럽게 던져 놓았다.
어이가 없어 입만 벌리고 섰는 연신에게 닥아온 건 애들
할머니.
“ 내 아들하고 많이 얘기해
봤다. 걔는 너와 절대 헤어질 수 없다 하더만. 그렇다고 엄연히 애까정
딸린 눈 시퍼런 조강지처를 내친다 말가, 그도 안 될 말이고만, 우리
집안이 모여서 의논을 했다 아이가. 둘이서 여기 한 서방 섬기며 오손도손 살아라카이. 우리 늙은이는 내려가 시골살이 하려니 우리 걱정은 말더라고. “
마치 큰 맘 쓴듯 나직나직 부드럽게 말한다.
연신은 숨이 콱 막혀 내쉬지가 않는다.
얼른 냉수를 한 컵 마시고 겨우 진정하며 묻는다.
“ 그 사람이 이렇게 하자고
했습니까 ? 공무원씩이나 되서 법률상
축첩은 안 된다는거 모른답니까 ? “
“ 그라이 우리끼리 조용히 살면
되는기 아이가 ? 자네도 알고 봉께 의지가지 읎이 딸 하나 델고 사는구만, 서로 기대 감서 의논껏 살면 안 되겠나 ? “ 할메는 어설프게 웃는다
“ 내 아들 갸가 자네를 무척이나
고이더구마. 쟈와 갈라선다고 야단했쌋는데 오매, 쟈가 애엄씨가 되어
씨알이가 먹히나 그나마 자네를 받아들여 함께 살겠다고 하는 것도 크게 양보하는겨 “
“ 지는 그렇게 죽어도 못합니다.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 “ 연신의 음성이 높아진다.
부엌에서 은근히 엿듣던 애어메가 우르르 뛰어 나오며 갈구리
손을 들어 푸들푸들 떤다.
“ 오매,오매 이 빤빤한 년 좀 보소. 남의 서방 뺏은 년이 아주 서방 독차지하겠다네.
내 그만큼이나 이해하고 양보해서 서방 양 쪽에서 이렁저렁
살락켓는데 이년 욕심이 무지하고만이라. “
“ 난 당신 서방 가운데 두고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다 소용없으니 애들 데리고 어서 이 집을 나가세요. 안 나가면 경찰에 신고할 거얘요.”
연신도 이 번은 질 수 없다하고 야무지게 나간다.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두 여인은 주춤 겁을 먹는다 그들이 쫄은 틈을 타 더 강도 높은 엄포를 놓는다.
“ 어디 주인 없는 틈을 타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을 뜰아랫방으로 내 몰아 같이 살자 합니까 ? 내 보기에 당신네들은 흉악한 도둑들입니다.
어서들 썩
나가소 ! “
이튿 날 예나가 학교에서 돌아 온 후
, 엄마에게 편지를 한 통 준다.
“ 아랫방 아저씨가 학교까지
찾아와서 엄마에게 전해 주라하데. “ 쌀쌀맞게 말한다.
“ 이런 심부름 담부턴 절대
해쌋지 마라. “ 연신도 엄하게 말하며 편지를 받는다.
거기에는 다만
,만나 할 말이 있으니 나오라며 장소와 시간만을 간단히 적어 놨다.
‘ 하여간에 한 번 만나 관계를 정리하고 이 집안에 주저앉아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는
그 가족들의 문제도 해결해야겠지. ‘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
조용한 다방에서 본마누라가 나선 분란 이후 처음으로 그를 대했다.
“ 연신아 내 생각은 이랫다.
먼저 애엄마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하려 했어 .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너도 애엄마를 봤으니 알거다. 얼마나 무식하고 사나운지 컨트럴이 안 된다.
그게 내 불행의 원인이다. “
그는 평소 안 피우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이 빨아
들인다.
“ 왜 진작에 처자식이 있다는
말을 안 했어요 ? 그게 속인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요 ?”
“ 나는 네가 너무 탐났어,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유부남인 걸 알면 너는 벌써 도망갔을거니까.
“
“ 그럼 이제와서 어쩌자는 건가요
? 당신은 생각이 있기나 한거얘요 ?”
“ 좀 더 참고 내 곁에 있어주면
안 될까 ? 내 꼭 이혼을 성사시키고 너를 정식 내 아내로 모셔올께 “
모두 한통속 아닌가,
역겹다. 연신은 발딱 일어섰다.
“ 내 마음에서는 이미 당신을
지웠어요. 헛꿈꾸지 말고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나 되세요, 그리고 빨리
가족들 데리고 내 집에서 나가 주세요. 안채를 다 차지하고 꿈쩍 않는 당신네 가족들이 이해할 수 없어요.
“
“ 애엄마가 저렇게 고집을 피우고
있으니 내 원 참 ! “ 그는 무력하고 소심하게 말한다.
연신은 뜰아랫방을 치우고 예나와 함께 지냈다.
신고를 하면 그의 사회적 입지가 매우 곤란해지고 그 가족들을 쫒아내자 해도 극성스런 애엄마의 악다구니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더 견디기 어려운 건 밤마다 기어드는 그였다. 이상하게 가족들과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안채에선 모르는 척 아무 기척 없이 조용하다. 하지만 귀를 곤두세워 이 방을 염탐하고 있겠지
?
‘ 아, 이건 아냐, 이런 추접한 일에 얽혀들 수 없어 ‘
견딜 수 없어 저녁이면 예나를 데리고 낮에 일하는 식당으로
간다. 영업이 끝나 문을 닫은 가게방에서 자는 것이다.
“ 예나야, 미안해. 조금만 참아. “
“ 엄마 난 괜찮아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는게 속상해. “
“ 이제 엄마는 이 세상 살아
가는데 너 하나 뿐이야, 넌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거지 ? “
“ 엄마, 나도 엄마 하나 뿐이야.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될께요 “ 모녀는 딱딱한 의자를 길게 붙여만든 불편한 침상에서 소근소근 서로를 위로하며 손을 꼭 잡고 잠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