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의 노래  4    - 오늘 흐르는 물은 어제 물이 아니네 -


동연은 제가 원하던대로 웬만한 중농의 외동딸과 혼인하였다.

부모가 아직 정정하고 활력 있지만  도와 줄 장성한 아들이 없어 늘 허전했던 집안이었다.

거기에 용모가 반듯하고 젋은 청년,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어 데릴사위 삼아 가족으로 들이기에 부담이 없으니 됐고, 중학교만을 졸업했다는 짧은 학력이 걸렸지만

딸내미 분이도 싫지 않은 기색이어서 좀 이른듯 하지만 후다닥 혼사를 치룬 것이다.


연신은 우선 외로운 동생 동연에게 짝이 생기고 의지깐이 생겨 안심이 되고 좋았다.

그래서 결혼 예물로 너돈쭝 쌍가락지와 채단을 넉넉히 하고 사돈댁 선물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동연의 혼사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고 젊은 그네들이 재미나게 사는 걸 보며 연신은 기쁘고 뿌듯한 마음 이면에 쓸쓸함이 마음에 가득 찬다. 수족 하나가 잘린 듯, 잘린 수족 하나를  영영 아쉽고 그리워하며 허전하게 살 것 같은 마음.

그 예감대로 동연은 처가집에 적극적으로 몸담아 본래부터 그 집 아들이었던 것처럼 한 식구로 충실하게 살고 있다. 그 집으로 기우는 만큼, 누이에게는 덤덤하고 멀어지고, 또 연신의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손 아래 올케 분이도 형님인 자기를 별무시하는듯 뜨악한 느낌이다.

딸을 시집으로 보내는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고 서글플까,

그래서 어무이는 그렇게 정나미 뗄려고 이상하게 변하셨던가.

연신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다만 동연이가 행복하게 살면 그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이럴 땐 정연이라도 곁에 있어 이 허전함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건만 정연은  지금  서울에 올라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정연은 정상적으로 중학교와 읍내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K 법대로 진학했다.

진짜 촌놈에다 ,  한미하고 어려운  집안에서 엄청난 발전이고 자랑스런 일이다.

정연이는 어려서 부터 인생의 쓴맛에 질려 버렸는지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

이 길만이 나의 살 길이란듯 .

또한, 그 뒤에는 누나 연신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어서 가능하다는 걸 그도  잘 안다.

때문에 더욱 공부에 매진하며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하루 빨리 사법고시에 패스하겠다는 야망을 잊은 적이 없다.

연신은 때때로 서울로 올라가 객지에서 외롭게 사는 동생을 찾아 가  보고 싶다.

하지만 그 다음,

‘ 우리 삼남매 한 둥우리에서 한 솥 밥 먹고 살던 때는 지났다. 결국 제 갈 길 찾아 각기 떠나는게 인생살이 아니가, 낸 누나로서 그들이 행복하게 만족하게 사는 것만 보면 되는기라. 내 뭘 더 바라것나.’

하며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독인다.


연신이 낳은 딸 예나는  이제 다섯 살이 되었다.

집안은 언제나 드나드는 손님으로 북적였고 연신은 자라나는 세 아이들의 어미로서 소임을 다 하고 한 집안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지휘하는 일이  골몰하고  바쁘다.

연신이 처음 이 집으로 혼인해 들어 왔을 때 11 살이었던 한영이는 16 살이 되었고 가영이도 13 살 , 부쩍부쩍 장성하여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 있다.

이들은 연신이가 지성으로  사랑과 정성을 쏟아 공을 드렸건만 연신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녹녹지 않다.

배운 것도 없는 가난한 집 딸이 돈에 팔려와 지들의 어미 노릇하는 걸 어떻게 순순히 받아들이느냐 하는 생각인지  이들의 머리가 굵어질수록 거부와 빈정거림은 더욱 거세게 드러난다.

이 곳서 멀지 않은 부산 대도시에 한영이 남매의 외가가 있다.

외조모가 건재하고 형편도 살 만하다 .  딸을 일찍  여읜 외할머니는 홀랑 남겨진 어미없는 어린 외손주 남매의 성장과 안위에 각별히 신경을 쓰며 경계하여 아이들을 자주 불러 들였다.

‘ 어린 아이들이 어찌 그리 형펜을 자세히 알고 내게 맞먹겠노, 지 외할매가 쯧쯧거리며 하던 말을 야들이 들은거지 ’

연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게 얘들이 외갓집만 갔다 오면 더욱 쌜쭉해지고 어깃장을 부리는 것이다.

애들 외할머니는 올 봄 부터는 아예 큰 도시 부산에 좋은 학교가 많이 몰려 있으니 아이들을 그 곳으로 전학시키라고 성화를 부린다.

만석씨는 골머리를 앓다가 가영이는 아직 어려서 중학교나 졸업하면 생각해 보겠노라 하고 우선 한영이만 부산 애들 외갓댁으로 보냈다.

한영이는 이미 중학교를 졸업하였기에  부산에 있는 제일고교로 진학시킨 것이다.

몇 달 만에 방학으로 집에 내려온 한영은 키가 크고 등판도 넓직한게 부쩍 자라 으젓하게 보인다.

만석씨도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잘난 모습이 기꺼워서 만면에 웃음이다.

“ 한영이 많이 컷네, 길에서 보면 몰라 보겠다 아이가  ? “

어린 예나도 오빠가 반가워서  

“ 오빠야, “ 하며 종종걸음으로 뛰어 온다.

잠깐 한영은 착잡한 눈길로 예나를 바라 본다. 그리곤 도저히 내키지 않는듯 살짝 고개를 가로 흔든다. 만석씨도 어이없고 놀란듯

“ 이누마, 한 번 안아 주거라. 반갑다고 하는거를. “

연신은 천가지 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며 한영을 지그시 노려   본다.

마침 가영이가 팔랑팔랑 마당으로 들어서며

“ 오빠 왔나 ? " 반기며 죽 둘러서 있는 가족들이게 " 와 이리들 서 있십니까  ?

오빠 가방 주고 어여  들어가자 “

남매는 손을 잡고 한영의 거처로 들어 가고 마당에 고였던  긴장도 서서히 흩어진다.

만석씨의 가슴은 잠깐 구름이 스쳐갔지만 연신은 맥이 탁 빠지며 다리에 힘이 풀린다.

‘ 앙이  되겠다. 한 번 야들 데불고 얘기를 해 볼거구만 ‘

하지만 얘기를 해 볼 새도 없었다.

하루를 쉬고 난 다음 날 한영이는 학교에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해야 한다고 부산으로 되돌아 갔다.워낙 학교의 공부가 이들에게 지엄하니 천하의 만석씨도 암말 없이 아들을 부산으로 보냈다.

그런데 2학기 개학한 지 한 달 쯤 지난 10 월 어느 날 , 만석씨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한영이가 살인미수로 경찰서에 들어 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연락이다.

“ 보호자가 꼭 오셔야 합니다. “

한영이는 부산서도 가장 악명 높은  고교 연합 깡패 조직에 속해 있었다. 그들의 조직은 < 빡사리>라는 명칭으로 학생들 사이에선 공포의 대명사라고 한다  .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품행이 바르고 학업 성적도 좋은 모범 학생이었다

이를 빈방에 감금시키고 몇 날 동안이나  여럿이 돌아가며 패고 담뱃불로 지지며, 심지어는 뜨거운 물을 사타구니에 부어 심한 열상을 입히고 그도 모자라 눈을 마구 찔러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한영은  이들을 선동하고 몸소 행동으로 옮기고,앞장 선 아주 죄질이 나쁜 학생으로 지목된데에 만석씨는 놀라움을 넘어 거의 기절할 지경이다.

‘ 왜 네 눔이 이런 끔찍한 짓을  ‘



청을 넣어 경찰 구치실에 있는 아들 한영을 만난 만석씨는 잘 생겼지만 아직 어린 아들의 얼굴을 심난하게 바라 본다.

“ 한영아 네 엄마는 착한 여자였어. 네 꼴을 본다면 얼마나 슬프고 실망하시겠노 ? “


무심코 첫 번 째 나온 말이다.

“ 아버지, 엄마를 입에 담을 자격이나 있나요 ? “ 싸늘한 한영의 대답.

“ 그 무신 말이고 ? 네 내게 무신 유감있나 ? “

“ 아부지가 새엄마를 들이고 난 뒤 부터 난 아부지를 떠났십니더,

그래 난 이제 내 맘 내키는대로 살겠십니다. 나를 내비러 두소 “

만석씨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오고 억장이 무너진다.

“ 아들아 ,나는 너를 경찰에 선처해 달라고 빌 생각은 전혀 없데이 네 죄가 뭐신지 깊이 생각하고 그 죄값을 다 받고 나오그래이 "

쓴웃음을 지으며 한영을 한 번 더 바라 본 후 그 곳을 나왔다.

만석씨는 피해학생을 찾아 병원에 들르고 그 부모에게 깊이 사과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성심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학생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다만 눈을 크게 다치고 열상이 심하므로 긴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충격,  실망과 낙담에 힘이 빠진 만석씨는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연신은 그의 양복 저고리를 받아 장에 걸며 남편의 피곤한 얼굴을 본다.

“ 한영이가 아주 빗나갔더군, 깡패 중에도 상깡패가 되었어. “ 한탄한다.

연신은 아무 대답이 없다.

“ 당신은 그걸 애당초 눈치도 채지 몬했나 ? ‘

“ 대강은 느끼고 있었십니다. 그란디 이제 겨우 부산 가서 몇 달 만인데 그런 대담한 짓을 벌리리란 걸

전인들 우찌 알았겠습니꺼 ? “

연신은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만석씨는 한영의 반항적인 비수같은 눈초리가 서늘하게 다가오고  연신의 지극히 당연스럽고 합리적인 말에 불현듯 혼란스러워 진다.

‘ 나에게 죄가 많은가 '

아들의 질풍노도 같은 사춘기 변화를 접하며 만석씨는 여느 아버지 보다 더

깊은 회의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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