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의 노래 4 -  읍내 마을 괴담 -




이 여인 몇이 모여 으시시한 대화를 나눈다.

“ 원한 맺힌 귀신이라카이 “읍내에서  해괴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수상한 소문은 여인들 입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냇가 빨래터는 여인네들이 동네 소식을 전하며 수다떨기 더 없이 좋은 장소다.

더위가 한 풀  꺽인 어느 오후, 느즈막

“ 구신은 12 시 넘어서 다니는거 아닌가 ? “

“ 천년 묵은 여시가 둔갑을 했다하데 “ 다른 여인의 숨 죽인 말이다.

“ 에이 ! 그건 옛날 야그에 나오는 거 아이가 ? 설마 그럴라고 “ 하하 웃는 여인에게 다른 여자가 말한다.

“ 맨날 산 너머 공동묘지에서 울던 여시 다 알제 ? 그기 요샌 잠잠하구만. 그기 둔갑한거 아일까? “듣던 여인들은 싸하니 목덜미에 소름이 끼친다. 산 그림자가 제법 길게 내려 와 있다.. 여인들은  갑자기 바쁘게 서둘러 빨래를 개울물에 헹구어 다라이에 담고  어둡기 전에 집에 간다고  제각기 종종걸음으로 혜어진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장터에는 인적이 끊어져 휑한 바람 뿐이다.

거기에 형광색이 돌도록  프르스름한 얼굴로  소복한 여인이 배회하고 있다.

큰 길을 한 바퀴 휘돌아 골목길을 꺽어 돌며 혹시 늦도록 전을 연 술집 앞을 기웃거리기도 하며 돌아 댕기는거다.

여인네나 아이들이 수상하게 쳐다 보면 얼른 눈을 깔고 고개를 외로 꼬며 소리없이 지나치는 걸 보면 아주 정신놓은 미친년은  아닌듯 하다.

그러나 기골이 좋아 힘께나  쓸 만한 장정을 만나면 살그머니 눈을 치떠  헤브즉이 웃는다.

정신이 올바른 사내라면 ‘ 에이 재수없는 여시 년’ 하고 침을 탁 뱉으며 처자식 기다리는 집으로 가겠지만

술이 한 두 잔 올라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거나 말거나, 쌀독에 쌀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아새끼들이 배고파 울거나 말거나 거나하게 정신줄 헐렁한 한량들, 그리고 동가숙 서가식하는 부랑아,  또는 게으르고 마련없어 장가 못간 노총각들에게  이런 횡재가 어딜쏜가.

더구나 흥정도 않고  앙탈도 없이 사내가 손을 잡아 끌면  순순히 따라간다지 않는가.

그리고  헛간에서건, 으슥한 산비탈 흙바닥에서건, 심지어 막다른 외진 골목에서도 치마를 깔고 다리를 벌린다는 소문은 어디서 난걸까.


동네에서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과수댁네는 여인들의 마실터다.

“아유, 망칙스러버.  사내에 환장한 년이 지랄병하고 다니는 거랑게. “

왈가닥스럽고 입이 거친 사평댁이 들어 앉자마자 초장에  본론으로 직행한다.

“ 그 소문 듣고선 우리 서방은  초저녁 부터 절대 못 나가게 하고 있구만 “

“ 그럼 , 그래야지러.   어데 맴 놓고 밤마실 다닐랑가 ?”

늙스구레한 영수 엄니 말.

“ 우리 주접은 저녁만 되면 엉뎅이를 들썩들썩 내뺄 궁리만 하는디 ?

왁자한 웃음소리.

“ 이아니, 근데 그기  구신이 맞다 카데. 일만 끝나면  연기처럼 사라져 흔적이 읎다 안 카나 ? “

“ 참으로 모를 일이제, 둔갑한 여시가 사내들 정기를 쏙쏙 빨아 사람이 될라카는게 아인교 ?”

“ 상사병이라 캅디더. 상사병이 깊으모 미친 지랄이 나서 산지사방 쏘다닌다 안 그렇습디어 ?  그 기집이 숨을 색색 헐떡이며 만석이, 만석이 하더랍니더 “

반짓고리를 갖고 와 조용히  버선 볼을 깊던 젊은 새댁이  낮은 소리로 말한다.  새댁의 낮은 목소리는 마침 사평댁이 떠드는 열띤 주장에 덮여 좌중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새댁은  어젯 밤 남편의 말이 길게 여운으로 남은 것이다.

사평댁의 말은 이렇다.

우리 여자들이 나서서 그 미친년이 우리 동네에  들어 오지 못하게 지키자는 것이다. 못 믿을 것은 남정네들잉께 우리가 낼로부터 마을 입구에서 그 미친 년이 못 들어오게 교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나문 동네 한가운데로 끌고 가 온 남정네가 보는 앞에서 태장을 치자는 것이다.

“ 맞십니다. 맞애요. 우리 서방들은 우리가 지켜내야 합니더. 발쎄 넘어 간 놈이 있구만요 “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드는 새댁의 열띤  모습에  모두들 놀라 할 말을 잊고  입을 헤 벌린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연신은 마음이 뒤숭숭하니, 매일 밤 꿈자리까지 사납다.

못 견디게 어매가 걱정되는 것이다. 신행에서 돌아올 때 어매는 어데 갔일꼬.

어매의 시름진 얼굴이 이해가 안 되면서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한 걸음에 친정 집 가고 싶지만 이제 그 절차가 녹록지 않다.

남편에게 얘기하고 허락받고. 그리고 차편이야 대 주겠지만 그것도 부담스럽다.

그리고 오후에 학교서 돌아오는 한영이와 가영이, 이제 겨우 친해지고 있는데.

정연이는 고등학교 공부를 위해 서울에 가 있고 하는 수 없이 동연에게 인편을 보낸다.

‘ 누나가 너를 보고잡구나, 일간 와 주거라 ‘

동연은 연락을 받자 곧 누나 보러 왔지만 ,

오히려  누나를 보자마자 제 불평부터 한다.

어매가 통 농사일은 뒷전이니 혼자하기 너무 힘들다고.

“ 어매는 뭐 하는디 ? 모 하고 있다냐 ? “

“ 어매는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하고,  언제나 어매와 난 같이 아침밥을 먹는다. “

“ 그럼 고마분거 아이가 ?

“ 그리고 뭐하는디 ? “ 연신의 성급한 물음에 동연은 느긋하게 대답한다.

“ 상 치우고, 집안 청소하고 , 그리고 세수하고 나가 버린다. “

“ 어데로 가는데 ? “ 연신의 물음에

“ 낸들 아나 , 어매는 미쳤다. 옛날 우리 어매가 아니다. “

“ 동연아, 네가 단대이 어매를 살피거라. 난 걱정이 되서 잠도 안 온다 카이 “

“ 누이야, 어매보다 내가 더 힘든기라. 농사를 어예 짓는지 내가 어찌 알겠노  ? “

“ 그럼, 차라리 머슴 하나 두거라. 그만한 규모의 농사라면 머슴 하나 감당 안 되겠나 ? “

하는 연신의 말에는 별무관심으로

“ 누이야 내가 기양 장가 들면 어떻겠노 ? 아내와  함께 농사짓고, 사돈 집안도  생기니 의지되고 ,

난 의지가지가 필요한기라. “

동연은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히힛 웃는다.

“ 으야튼 좋고, 우선에 어매를 잘 살피그라 “  연신도 웃고 만다.





그 해괴한 소문은  얼마  되지 않아 늦가을, 어느 날  속절없이  스러졌다.

인가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산  골짜기, 으슥한 구덩에 목이 졸린 채 숨져 있는 여인이 발견된 것이다.

흙법벅 치마지만 단정히 여며있고  의외로 그 얼굴은 고요하다.

 인고하며 남아있는  평안한 보살의 미소.  그 미소가 그녀의 죽음을 덜 슬프게 한다.

“ 에이 ! 어떤 개노무새끼가 이렇게 끔찍한 짓을 “

시체를 거두는 경관은 그 처염한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며 침을 탁 뱉는다.


연신은 나서지 않았다.

동연에게 돈을 주어 사람을 사고 야밤을 이용해 조용히 매장하였다.

‘ 어매 와 그리 처참하게 갔노 ?  누가 그랫노 ? 어매는 그런 헤설픈 사람이 아니었는기라. 왜 내 가슴에 못을 박고 가 비릿노 ‘ 남 몰래 가슴을 칠 뿐이다.

연신은 풍문으로 들었다. 어매가 정신이 나가 버리면 헛소리처럼  ‘ 만석이’를 불렀다고.

‘ 만석이가 누고 , 설마하니 -- 만석이 하나 둘이 아닐끼고, ‘

그러나 마음은 쿵쿵 심장을 두드리며  평안치 않다.

그러나 또 어쩌랴, 연신의 뱃 속에는 사랑하고 의지하는 남편 만석씨의 어린 생명이 꼬물거리고 있는 것을.

만석씨는  성실하고 자애로운 사람이다. 그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나 파란 없이 언제나  일정 하다.

연신이 회임한 것을 안 후론 더욱 연신을 위해주고  극진하다.


그들은 서로 불행한 어매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듯이 아무 말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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