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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신이 시집가는 날이다.
새벽 푸르스름이 차츰 붉은 오렌지 빛으로 밝아오는게 좋은 날씨임을 예고한다.
연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아무 기척없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등져 누워있는 엄마를
원망스럽게 바라 본다.
' 엄마는 어째 내게 이리도 무정하게 대하노 '
건넌방에 잠들어있는 두 동생 동연이와 정연이도 아직 자고 있는지 집 안은 고요하다.
부시시 일어난 연신은 부엌으로 내려가 아침빕을 짓는다.
평소 늘 하던 일이므로 익숙하게 불을 때 밥을 하고 뜨물에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고 그리고
오늘은 좀 특별하게 평소 아껴두었던 굴비를 세 마리나 석쇠에 구웠다.
마침맞게 익은 열무김치와 함께 소반에 밥상을 차리며
" 동연아, 정연아 아침밥 먹거로 얼른 일어나그라 " 소리친다.그리고
밥상을 안방으로 들이며 " 어무이도 일어나 같이 아침 잡수이소 "
이때 이불 한 귀퉁이가 바람이 나도록 휘익 제쳐지며 노염에 찬 엄마의 얼굴이 들어난다.
포로족족한 피부와 허연 입술이 병자 같아 보이는데 눈에는 미움과 노기로 가득차 섬짓하도록
광기로 번득인다.
" 미친 년, 시집 가는게 그래 좋나 ? "
" 엄마야, 어디 내 좋자고 가는가 ? 낸 인당수 제물로 팔려가는 심청이다 , 그걸 모리나 ?"
벌써 몇 날 며칠을 주고 받은 똑같은 대화다.
연신이가 그에게 재취자리로 가면서 큰 빚을 탕감받고 두 동생과 엄마가 굶주리지 않고 살
만큼의 논 밭도 떼어 받았다.
연신은 나 하나 가서 고생하더라도 뒤에 남는 식구들이
편히 살만하면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결단을 내렸던 일이 엄마에게 그렇게도 못마땅하단 말인
가? 첨엔 혹시 열댓 살이나 더 많은 남자의, 전처 소생 까지 길러야 하는 재취자리에 어린 연신이 가야 한다는 현실에 아깝고 애처러운 마음으로 그러는가, 했으나 엄마의 반대와, 그 보다 한층 더 한 적의와 분노는 연신으로선 이해가 안 되었다.
' 어째 딸이 시집가는 날 까지도 이래 냉차게 구는가'
연신이 울음이 북받치려 할 때, 마침 두 남동생들이 세수를 하고 멀끔한 얼굴로 들어선다.
엄마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삼남매가 둘러 앉은 밥상은 침울하다.
연신은 동생들이 먹기 좋게 굴비를 뜯어 뼈를 발라내 주며
" 동연아, 이제 니가 집 안의 기둥인기라, 부지런히 일하고 니들 어무니 잘 모시그라. 그리고 정연이는 아직 나이가 있시니까 공부를 시작허그라. 학비는 내가 어찌든동 대 주꾸마. "
이 말도 그 동안 누누이 했던 말이지만 다시 한 번 더 단대이 질러둔다.
좀 머리 굵었다고 동연이는 묵묵히 밥을 먹는데 돌연 " 히힝 !"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정연은 뒷곁으로 달려 나간다.
이런저런 심난하고 서러운 마음으로 뒷설거지를 하고 난 연신은 나름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리고
시가에서 미리 예단으로 보낸 연두색 호장 저고리에 분홍치마로 갈아 입었다.
얼마 안 돼 신랑 될 이만석 씨가 운전수를 대동하여 진청색 택시를 타고 왔다.
이만석 씨는 집 안에 들어서 너무 조용하고 한산한 분위기에 놀란듯 잠시 멍한다.
문 앞으로 마중나와 나란히 서있는 동연과 정연 형제와 가볍게 손을 잡은 만석씨는
" 어무이는 어디 계시는가 ?" 묻는다
" 어무니는 펜찮으세서 자리에 누워 계십니다 " 동연이 침착하고 의젓하게 말한다.
" 어디가 얼마나 많이 ? " 만석씨는 당황하고 다급한 마음으로 안방문 앞으로 다가가
" 장모님 저 왔십니다. 얼매나 펜찮으신지 좀 들어가 뵈도 되겠십니까?"
이 때, 연신이 분홍 치마자락을 사르르 끌며 마루로 나선다.
" 어매는 지금 잠 들어 기십니다. 다음에 뵈이시소 " 연신이 조용히 말한다.
만석 씨는 상황 판단이 잘 안 되는지 눈을 꿈벅이다 문을 향하여
" 일간 다시 찾아 뵙겠십니다. 몸조리 잘 하시이소."
이만석 씨는 참하고 어린 신부 , 연신이를 데리고 떠나는 마음이 퍽이나 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