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환자 집단 촌  >



요석이 정착하여 사는 이 마을은 대체로 조용하다. 싸울 일이 없는 동네다.

부부싸움도 없고 이혼도 없고 자식 걱정도 없다. 아무 문제도 없고  조용하다. 가끔 통증으로 길게 얕게 신음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단지 하나, 문제가 있다면 먹을게 부족하다. 여기 수용소 안에 격리된 한센인은  스스로 생업을 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에게  의식주를 기댈 수 밖에 없는데 특히 끼니가  늘 부족해 배가 고프다.

가끔 요석은 나환자들에게 묻는다.

“형제님, 제일 큰 소원은  무엇입니까 ? “

그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주는게 더없이 기쁘고 고맙다.

“ 하루 세끼는 아니더라도 다만 한 끼, 밥을 큰 그릇에 수북하니 담아 배 터지게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소원이얘요” 그는 두 다리가 반 쯤 잘려나가고 한 팔도 없다. 한 팔에 남은 세 손가락으로 땅을 짚으며 엉덩이로 이동한다. 그 세 손가락이나마 언제까지 갈까 ?

“ 천국에 가시면 세 끼 밥과 좋은 음식을 마음껒 드실 수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

“ 그 좋은 천국에는 언제나 가지요 ? 어서 가게 해 주세요 . “

그래서 요석은 그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서 기도한다.

“ 하나님 배고프고 아프고 힘든 이 형제를 어서 데려가 천국의 풍요한 잔치에 참석하게 해 주세요 , 아멘 “ 그도 기쁘게 ‘아멘’ 한다. 그리고 천국에의 소망으로 더 없이 행복해 한다


한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 있어 온 ,유래  깊은 병이다.  살이 곪아 터지며 얼굴이 문드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이 병은 환자에게는 물론, 가족도 이웃도 모두 기피한다. 신의 저주, 또는 천형이라하여 환자를  멀리 쫒아내고 돌보지 안 했다.

이들도 한센병이 드러난 처음에는 일단 사지가 멀쩡하였지만 이 수용소로 들어와 일 년 이 년,삼년을  지내는 사이 병은 점점 더 진행되며   눈이 멀고 살이 곪아 문드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 흉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충분한 영양 공급과 얼마 만큼이라도 의료 혜택이 주어진다면 완치는 어렵더라도 병의 진행을 어느 정도 늦출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전혀 그런 보장이 없이  열악하고 비참하다.

다만 어서 죽기를 바라는 처지일 뿐이다.

요석은 이들의 배고픔이라도 해소해 주려고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을 찾아 강냉이 가루나 감자 등, 식량이 될만한 것을 구해다 대지만 수용소 안,  삼 백 명 가량의 인원을 감당하기에는 태부족이다.

하루는 식량도 떨어진지 며칠 되고 돼지죽 같은 급식도 너무 부족해 어떻게 끼니를 이을건가 심각하게 고민한다.  요석도  역시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옛 어른들 말씀에 땅을 파면 먹을 게 생긴다는 말이 생각났다. 땅을 파 본다.  한, 일 미터 남짓 쯤 들어 갔을 때, 놀랍게도 초콜렛 색깔, 아주 곱고 쫀득한 흙이 나온다. 조금 집어 먹어보니 이물질의 지금거림이 없고 찰떡 같이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 그걸 한 양푼 퍼다 먹을 수 있는 순한 풀을 섞어 반죽으로 치대어 수제비를 만들었다. 흙수제비지만 먹으니 구수하고 배가 부르다. 포만감에 모두 좋아라 하는데 요석은 다음 날 아침 깨어보니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었다. ‘ 어,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왜 나만? , 의아하다. 아직 적응이 안 되어 그랬겠지 생각하며 ,

다음 기회에  또 먹어 보니 웬만큼 괜찮다. 역시 인간의 강인한 생존 능력에 감탄한다.

하루는 고위층 관리가 이 먼 곳 까지 찾아 왔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술 시합으로 제압했던 그 친구다.

“ 선생님은 대단한 투사이십니다. “ 그의 첫 마디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석이 의중을 알 수 없어 묻는다.

“ 종교를 금지하는 이 나라에 와서 감히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으십니까?” 엄포같기도 한 이 말,

그러나 그는 요석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 말한다.

“ 학식 높고  진실하신 선생님이 이 구석진 문둥이 마을에 들어 와 전염의 위험을 무릎쓰고 함께 고생을 하시며 사신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  저는 몹시 안타깝고 걱정이 됩니다.

제가 비교적 환경이 좋은  마을을 찾아서 선생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객관적 이성적 생각이라면 참으로 솔깃한 제안이다. 그러나 요석은 먼저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은 부분이 생각난다. 예수님은 마귀가 제안하는 배고픔과 존귀와 권능을 모두  거절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게 아닌가 ?

요석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 이들이 저를 필요로 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산다는게 저는 행복합니다 “

그는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이 머뭇거리며.  머리를 갸웃거리다 떠나갔다.


다시 지독한 식량난이 벌어진다. 비축한 곡식은 바닥난지 오래고 지급되는 돼지죽도 최악으로 질도 나쁘지만 양도 극히 적다. 병으로 죽는이 보다 굶주림으로 죽는 이가 더 많이 나오는 형편 이다.

식량을 구하러 왕동싱 촌장 마을을 다녀 왔다. 한 두어 달 걸린 것 같다.

돌아오자마자 소장이 다급하게 말한다.

“ 선생님, 참 신기한 일을 봅니다.

한 환자가 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선생님 오기 전엔 절대 죽을 수 없다고 저리 버티지 뭡니까 ? 죽었나? 하고 건들면 벌떡 일어나고 그러며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

요석은 바삐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은 그대로 주검이다. 움푹 꺼진 눈에 핏기 없이 굳어진 전신. 그러나

“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 “ 하는 요석의 목소리를 듣자 눈을 번쩍 뜬다. 안광이 번쩍인다.

“ 제가 선생님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어 이때껒 기다렸습니다. “

“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 요석이 그의 눈을 보며 말한다.

죽으면 하늘 나라에 갈텐데 이 더러운 문둥이 몸을 받아 주실까요 ?”

요석이 대답한다.

“ 예 염려 마십시요, 천국가는 그 순간에 당신은 변화되어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선 정상인이 되 있을겁니다.

“ 선생님, 하나님이 정말 나를 알아 보실까요 ? 선생님이 나를 위해 소개장을 하나 써 주신다면 주머니에 잘 넣고 가서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릴려구요. “

“ 하나님은 벌써 당신을 잘 알고 계십니다. 당신 자리를 예비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

“ 난 손이 없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잡나요 “

“ 아, 걱정 말래두요. 당신은 천국으로 가면 두 손 두 발 건강한 성한 사람의 모습이얘요 “

요석은 안스러운 마음에 그의 뭉그러져 나무토막 같은 팔뚝을 꼭 쥐어 준다.

그 때 그가 외친다.

“ 아, 나를 놔 주세요. 천국의 큰 손이 나를 잡아 줍니다. 내 손을 잡았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

그의 흉한 얼굴은 화색이 가득하여 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 또한 천국에의 믿음과 소망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이런 행복한 죽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상해에서 교수친구가 소개해 주었던 고위 공무원이 또 찾아 왔다. 첫 번 째는 나환자촌을 찾기 위한 술 시합이 있었고,  두 번 째는 선교지역을  다른 곳으로  선처해 주겠다는 제안이었고 그리고 이  세 번 째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이 멀고 험한 곳을 찾았을까.


요석의 거처는 이 곳 다른 주민들과 비슷하게 갈대풀로 엮어 만든 움막이다. 아랫 쪽으로 흙을 개부쳐 바람을 막은 여덟 평 작은 실내, 한켠에  굵은 대나무로 성글게 짠 침상이 있다.역시 널판지를 구해 와서 손수 만든 작은 책상이 창 쪽으로  있고 그 위로는 성경책과 몇 권의 노트가 단정하게 놓여 있다.하나 뿐인 의자에 손님을 앉게 하고 요석은 침상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그를 자세히 바라 본다.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 보다 무척  수척해진 얼굴, 근심과 고민이 가득하다. 한참이나 말문을 열지 못하던 그가 불쑥 묻는다.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극악한 죄라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나요 ? “

“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사하지 못하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 요석은 자신있게 말한다.

“ 저의 이름은 자오융칭이라고 합니다. 우리 부모님도 사실은 기독교 교인이었습니다. 새벽마다 저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셨어요. 그 기억이 요즘 들어 더욱 생생하게 떠올라 너무 괴롭습니다. “



1966 년 마오져뚱이 주도한 < 문화대혁명 >은 중국 역사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다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공산주의 대약진 운동이었다. 그 때 자오융칭은 열 세 살,

마오는 서서이 느슨해지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재강화하려는 야심에서 비롯됐지만 사회적 측면에서 서민들에게 파급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마오는 특히 청소년들에 주목했다. 젊은이들이 사상과 행동을 규합해 영구적 계급투쟁의 결과로 민중민주와 민족해방의 노선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구체적 행동 강령으로 기존 유교 질서를 비판하여  모든 인민은 평등하며 상하 불문하고 잘 못된 행동이나 생각은 통렬한 비판과 각성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추상같은 개념이다.이에 따른 , 이른바 홍위병들은 의기투합하여  오래 된 문화재와  사당들을 깨부수고  성현들의 고서를 아낌없이  불사른다, 뿌만 아니라   선생이나 교장을 고발하고 자식은 부모를 고발하고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를 가차없이 고발하여 인민재판에 부치는 일이 허다하였다.

자오융칭도 소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무렵인데 선생들은 훈시 때마다 어른 중에서도 혁명정신에 어긋난 자는 누구나 고발하라고 부추겼다. 자오는 누구를 고발하여 교장 앞에서 칭찬과 상을 받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문득 생각된게 새벽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옳다구나, 아버지를 고발해야지.

자오는 교장 앞으로 고발장을 썼다.

<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에서 금하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자들로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숭배하는 찬양을 합니다.  >

그 다음 날로 어머니는 어디론가 끌려가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는 모든 사람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다. 마을 사람이 모두 모이고 당간부들도 위엄있게 배석한 자리였다. 인민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교장이 연단에 서서 지오를 호명했다.

“ 군은 매우 굳센 정의감과 용기로  타에 모범이 된 혁명용사요.. 자오군은 앞으로 우리 인민사회가 지향하는 바 진정한 민족해방의 대열에서 앞서 가는 혁명지도자가 되리라 확신하오. “

하며 상장과 당에서 내린 커다란 상패를 주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고 한껒 부풀었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 얼굴에 짚가리로 엮은 용수를 쓴 채 꽁꽁 묶여 끌려오는 아버지를 보며 심장이 얼어 붙는 듯 했다. 그 때,  당 간부 중에도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연단으로 나와 아버지의 얼굴에  씌운 용수를 벗기게 하고

“ 얘야 너의 아버지가 맞느냐 ?  정말 새벽마다 기도와 찬송을 하더냐 ? “등을 차근차근 묻는다.자오는  묻는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모여 선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목소리를 돋구며

“ 이 보십시요, 이 장한 어린 학생이, 아버지가  국가에서 금지하는 반역적인 종교 행위를 고발하고 당당하게 증언하였습니다. 이소년의 영웅적 정의감과 용기에 다같이 박수를 보냅시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자오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 아, 난 잘 한 일이야. 아버지가 나빳어. 난  당당해도 돼. ‘ 하며

아버지를 쏘아 보는 순간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사랑스런 아들을 바라보는 잔잔하게 웃는 얼굴, ‘ 그래 넌 잘 했어 ‘ 괜찮아 ‘ 하는 듯 사랑으로 가득 찬 그  눈빛 . 아버지는 처형장으로 끌려 가기 전 다시 한 번 뒤돌아 아들 자오를 바라본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끄덕 고개짓과 함께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지에 여윈 자오는 그 날로 고아가 되었다. 더 이상 따뜻한 가정과 부모가 없다. 거지처럼 떠도는 자오의 소문이 퍼지자 당황한 당에서  자오를 데려다 < 혁명 일세대 투사 >라고 떠받들며 모든 뒷배를 넉넉하게  봐 주었다. 잘 먹고 잘 자라  최고의 교육을 받고 출세 가도를 달리며 좋은 잡안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도 두었다.

누구나 선망하고 존경하는 오늘 날 까지 그의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아버지를 본 것이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아버지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이제 열 세 살,  아들이 자신을 보는 눈에서 아버지를 본 것이다. 사랑과 신뢰가 가득차 잔잔하게 웃는  모습. 열 세 살 아이답지 않은 아버지의 그 얼굴.

그 후로 자오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가 연상되고 자신이 철없이 저지른  

엄청난 행위가 생각나며 미칠듯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열 세 살 소년이 보았던 아버지, 그가 자라 아버지가 되어 열 세 살 아들을 보는 자신, 너무 극도의 대비에 그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한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씻을 수 없는 죄악에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긴 얘기를 들으며 요석은 함께 깊은 한숨을 쉰다. 그가 시대적 상황 속에 그릇되이 저질렀던   인간으로서의 고통이 느껴져서이다.

“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며 고난 중에 돌아가신 이유가 세상 모든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귀한 아들을 세상에 내 보내 모든 죄를 대속하고 죽게 까지 하신 섭리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십니다. “

예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드넓은 사랑 , 그 위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

지오융칭은 이해가 되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껍질벗은 애벌레처럼  작고 여린  인간이 되어 그저  한없이 흐느껴 울기만 한다.



가을인가 하는 사이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토굴이나 움막 집에 들어가 몸을 움추려 자는듯 죽은듯 음울한 어느 날, 요석은 열이 펄펄 오르며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프다.’  왜 그럴까 ‘ 스스로 촉진을 하며 원인을 생각해 본다.

‘ 맹장 --염 ?’  왜 맹장염인가 ?

‘ 아, 짚히는 데가 있다. 근래 흙수제비를 꽤 자주 해 먹었는데 ,  그게 원인일수도.’

여기서는 어떤 방도도 없고 읍내로 나가야 하겠는데. 한 시가 급하다.

“ 돌쇠야 “ 하고 부르는 소리에 땔랑땔랑 방울 소리 울리며 달려 온 것은 당나귀다.

한 일 년 전 요석이 이웃 마을을 다녀오는데 한 농부가 어린 당나귀를 때려 죽이려 도끼를 휘둘른다.

“ 여보슈, 왜 당나귀를 죽이려고 하는 거요 ? 차라리 날 주시요. 내가 사리다 “ 요석이 다급하게 외치자 농부는 그냥 가져 가란다. 왜 공짜냐고 물으니

“ 이 놈이 주인 말을 전혀 듣지 않아 괘씸해서 죽이려고 했는데 죽이려는 못된 놈은 팔지 않고 거져 주는거라 “고 했다.

졸지에 당나귀를 하나 얻어 집으로 데려다 친구삼아 잘 다루니, 웬걸 말도 잘 듣고 여간 영리한게 아니다. 이름을 돌쇠라 짓고 한국말로만 소통하니 곧잘 알아듣고 원근 그 등에 타고 다니기도 하여 이젠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식구가 되었다.

“ 돌쇠야 내가 아퍼서 죽겠다 네가 수고 좀 해 다오 “

요석은 그 밤을 도와 장장 여덟 시간을 당나귀 등 위에서 신열과 통증으로 쩔쩔매며 읍내에 닿았다.  이른 새벽 녘이었는데 아직 문을 연 가게가 드믄지  적막한 거리다.

그 곳에는 오래된 한의원과 동물들을 치료하는 동물 병원이 있었다. 아무래도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아 동물 병원에 들어섰다. 시설이라곤 거의 원시상태로 지저분하고 조악하다. 그러나 어쩌랴, 의사를 불러 맹장 수술을 부탁했다. 의사는 꼬지지한 중늙은이였는데 질색을 하며 자기는 동물 배는 갈러 봤어도 사람 배는 안 들여다 보아 모른다며 거절한다.

“ 영감님 걱정 말고 우선 배를 갈라 주시요, 내가 유명한 기술자 두 명과 같이 왔으니 그들이 도와 주실 것이요. “

어디, 어디 의사 선생이요 ?” 하고 그는 사방을 휘휘 둘러 본다.

“ 아, 글쎄, 내 눈에는 보이니까 염려 마시라니까요

마취제는 있습니까 ?”

“ 어디요 ? 동물은 마취 안 시킵니다. “

그럼 한의원에게 부탁해 보쇼 .” 하는 말에  한의원까지 달려 왔다.

“ 글쎄요, 해 본 적은 없지만 한 번 해 보지요” 한의원은 요석의 혀를 쭉 빼내더니 여기저기 침을 꽂는다.

배를 가르려고 가져온  

칼을 보니 요석은  기가 막힌다. 오래 되어 날이 무디고 녹까지 슬었으니.

“ 숫돌 있어요 ? 잠깐 좀 갈아 쓰시지요 “

“ 어데를 갈라야 하나요 ? “ 수의사는 요석의 배를 들여다 보며 역시 경황이 없다.

“ 주로 맹장은 왼 쪽에 있다고 하니 요쯤 갈라 보시요, “

익숙치 못한 수의사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 밑 늑골 아래로 주욱 가른다. 너무 많이 갈랐다.

“ 어떤게 맹장이요 ? “ 수의사는 배 속의 것을 이리저리 헤쳐보며 마련이 안 선다.

“ 나도 좀 보이게 들어 봐요 “ 요석이 고개를 들며 말한다. 참 뱃 속에 저런 많은 것이 들었다니, 스스로도 놀라며 아무리 살펴 봐도 맹장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 요 아래 왼편으로 조금  더 째 봐요. “ 이리저리 헤적이다 끄트머리에서  검푸른 빛의 조그만 덩어리를 발견한다.

“ 그건가 보오, 잘라 내시요 .”

“ 여긴 참 실이 없다오, 무얼로 꼬매지요 ?” 수의사가 또 당황해서 말한다. 다행히 한의원이 재빠르게 자주색 이불 꼬매는 실과 굵은 바늘을 구해 왔다. 수의사는 손재주도 없는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대충 듬성듬성 꼬매어 간신히 배를 덮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천으로 배를 둘둘 말아 묶은 채 요석은 곧 되짚어서 나귀의 등에 흔들리며 집으로 둘아 왔다. 거의 한 밤 중이나 들어선 집은 냉기로 가득하고 차가운 밤길을 당나귀에 실려 온 요석은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을 놓는다. ‘ 아,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  중얼대며 아득하게 무의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다음, 다음 날이 되서야 겨우 정신을 찾은 요석은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공포스럽다.  다리가 얼어서 뚱뚱 부어오르고 꿰맨 자리에는 벌써 염증이 시작되는지 벌겋게 성이 나고 진물이 흐른다. 또한 통증은 뼈를 생으로 깎아내는듯 처절하게 아프다.  오, 주여 !. 요석은 고통으로 길게 탄식한다.

요석이 많이 아프다는 소문을 듣고 주민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제일 먼저 희희낙낙한다. 선생님도 자기들 처럼 문둥병에 걸렸으니 이제 어디 안 가고 자기들과 계속 살거라고. 그러나 요석이 다리와 배까지 부어 오르고 신열이 뜨겁게 달아 올라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자 , 자기들도 요석이 너무 불쌍한지, 부은 다리와 배를 주물러 주겠단다.. 손가락 떨어진 몽당 손으로, 팔이 없는 이는 다리로 , 그도 저도  없는 사람은  몸으로 요석을 덮고 얼굴을 문질러 열을 식혀주려 애 쓴다. 요석이 앓는 소리를 할 때마다 그들도 마음 아파하며 온 몸으로 더욱 열심히 주무르고 문지르고 얼굴을 대어 체온을 나눈다. 수 백명이 교대로 몇날 며칠을 그러는 사이 그들의 고름 섞인 핏물과 진물과 눈물이 요석의 상처를 덮고 퉁퉁 부은 다리에도  그들의 체액이 쌓이고 샇여 마치 기브스를 한 것 같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일주일된 날, 요석은 기적을 보았다. 사랑과 진정이 가득한 그들의 체액, 딱딱하게 굳어진 기브스 껍질 밑에서  다리와 배에 부기가 빠지고 꼬맨 자국도 꾸득꾸득 아물어 간다. 요석은 거의 죽음을 각오하였고, 다행히 살아나더라도 다리를 절단해야 하지 않나 염려했는데 ‘오, 하나님, 이렇게 다 마련이 되신 주님 섭리를 모르고 오히려 염려한 제 허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요석은 흐느끼며 자신의 허약한 믿음을 회개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허다한 문둥병자들을 고쳐주는 은혜를 베푸셨는데 자신은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과 치유를 받아 회복된 것에 , 자신이 그들의 사랑과 은혜를 크게 입었다는 사실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 하나님, 더러운 고름이 명약이 되는 하나님 사랑의 섭리. 더욱 겸손하게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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