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는 누구인가  >


얼굴로만 몰려드는 밝고 뜨거운 햇살에 와락 짜증으로 눈을 뜬 마리, 아직 정신이 몽롱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이렇게 강렬한 건 꽤나 늦은 아침이라는 것도그녀는 몇 번이나 눈을 껌벅인 후 느껴졌고, 지난 밤 언제 어떻게 누가 집에 데려다주었는 지는 도무지 감감하다.

아 내가 또 뭔 실수를 하고 만거야. 마리는 후다닥 옆자리를 본다

남편자리는 사람이 누웠던 흔적조차 없이 말갛고 집 안은 적막하기만하다. 마리는 가슴이 쿵덕 내려 앉는다 정말 이이가 떠나고 만건가 ?

어제 아침이다.

그이가 그랬다.’ 나 내일은 떠날거다. 언제 오느냐고 묻지 말고 기다리지도 말아라’

마리는 언제부턴가 맨정신으로는 남편에게 아무런 댓구도 못했다. 그렇다고 남편이 마리에게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한 지붕 아래서 부부라는 관계로 엮여 덤덤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마리가 술을 한 잔 걸쳤다 하면 그런 아슬아슬한 평형도 깨지고 만다.

마리는 평소 불만과 울화가 그대로 폭발하여 갖은 큰소리 욕설, 폭행 행폐 포악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끝내는 통곡, 통곡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 야! 이 나쁜 놈아 , 나를 용서해 주지 말지, 왜 용서해 주었니? 그래서  나를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연옥살이를 시키냐? 차라리 이 못된 년을 발길로 뻥 차서 내쫒아라. 이 쪼다같은 놈아. 나, 네 얼굴을 보느니  차라리 지옥 염라대왕 대면이  낫겠다. 너 무서워, 너 웃는 얼굴이 더 무서워”

아 이런 되지도 않는 주정으로 온 밤 소란 떨다가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잠이드는 못된 술버릇.


아!! 다시 마리는 이마를 두드리며 토막토막 기억나는 어제밤을 떠올린다.

같이 일하는 디렉터 토미킴,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거나 , 저녁 미팅이나  식사까지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그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집에 들어와 남편이 보고 있는 앞에서 토미를 끌어 안고 자고 가라고 붙잡았지. 헤어지기 싫어 하면서, 아  이 주책, 날 어째야 하냐.

이미 떠나기로 맘 먹은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워 그딴식으로 폭발이 되었던가. 정말 이이가 가 버렸으면 어떻게 하지?  작별 인사도 없이 가 버리다니,절대 안 돼. 네버에버 노우 ! .마리는 벌떡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간다.

거실은 불라인드가 열려있어 밝은 햇빛이 화사하고  적당한 온도로 에어컨이 작동되어  쾌적한 본위기다. 하지만  남편의 기척은 없다. 어디로 갔을까. 쌩 바람만  울리는 동굴같은 가슴으로 먼저 파킹랏을 내다  본다, 남편의 검은 색 랜드로버가  거기 있다. 우선 안심.

다음은 뒷뜰로 향한 데크, 거기서 남편은 종종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본다. 그러나

거기에 그는 없고 --- 마리는 분주하게 눈을 굴려 뜰 전체를 둘러 본다.

그리고  마리의 얼굴은 반신반의 놀라움으로 뜰  저 편 별채로 된 화실을 바라 본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며 부리나케 뒷문을 밀치고  바람같이 달려 나간다.

여름 날 아침, 첫 번째 뜨거운 햇살이 마리의  대리석  조각 같은 하얀  얼굴에 내리꽂쳐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

정말 남편은 거기 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먼지 낀 화실의 바닥을 치우고 여기저기 딩굴은 채 오래된 데생화, 굳어버린 유화 물감 페인트 통, 구겨버린 종이조각 들, 그런 것을 치우며 물걸레로 구석구석 닦아  말끔하게 청소 부터 했다.

청소가 끝난 후 그는  화실 안락의자에 앉아 민화집을 골똘히 들여다 보고  있다.


마리는 우선 두근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러나 진심과 달리  앙칼지게 쏘아붙인다.

“ 흥! 왜 안 가고 있어. 당신 말대로라면  지금 쯤 어딘가 거리로  떠돌고 있어야 되는거 아냐? 다신 안 볼  줄 알았는데 .

난 다 정리가 되 있는데 당신은 아직 미련이 남았나봐 . 이봐, 나석 화백님 난 이제 당신 따위에게 미련 없거던.”

“ 알아, 마리 당신 나 없으면 못 산다는거 이미 고백했거던.”

“  언제, 언제 내가 그랬다구 넉살좋게 거짓말, 쌩까고 있네.”

“ 어제 당신이 날 붙잡고 울며 불며 가지 말라고 매달리더라구.다 잊었나?”

“ 어머, 이런-- 난 전혀 기억  없는데요. “

이제까지 빙그레 웃으며 농담처럼 말하던 남편이 써늘하게 웃음을 거두고 건조하게  말한다.  “ 그것도 그렇고  나 할 일이 생겼소. 그 일이 아마 나를 바꿀지도 모르겠소.”

“ 흥 많이 바뀌세요. 난 변함 없을테니까.”

마리는 조롱하듯 소리쳤지만, ‘그래 난 바꾸지  못해.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바뀌지 못해. 왜 난 그에게 집착하는걸까’

엉뚱한생각에 잠기며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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