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란 > 설난은 중국 태산이 원산지로 12월이나 1월 경 눈 속에서 피어난다고 합니다. 눈 위로 한 뼘 쯤 파아란 대궁과 칼 끝같은 잎새 몇이 올라와 대궁 끝에 여리디 여린 보라색 꽃이 땅 쪽으로 고개를 숙인 채 함초롬이 피어나는데 그 청아한 향내음이 백미터 사방으로 은은하게 퍼져 있다고 합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느닷없이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말하는 그의 강한 눈길을 감당하기 벅차서, 난 그만 눈을 내리 깔며 당황한 마음을 추수리느라, " 정말 신비하고 고고 高孤한 꽃이군요. 그런 꽃 한 번 보고 싶어요." 하고 들 뜬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 그런데 난 그 꽃을 우리나라 소백산에서도 보았답니다. 한겨울 등산하다 난데없이 어떤 기억을 잡아당기는 꽃향기가 났어요. 향기 따라 눈길을 돌리니 십여 그루 군락을 이루며 눈 속에 피어 있었어요. 그 놀라움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그는 당시 느꼈던 행복을 회상하는 듯 먼 눈길이 됩니다. 그의 먼 눈길 위로 파르스름한 담배 연기 한 줄기가 하늘거리며 부유합니다. " 마음같아선 한 포기 파내 가지고 와서 우리 집 뜰에 심고도 싶었어요. 하지만 그 꽃은 바로 거기 그 자리에 있어야만 그 빛갈, 그 향기 그 생명을 지닌다는 생각에 내 욕심은 접고 대신 내가 겨울마다 그 곳을 찾기로 마음을 정했어요."
그래서 그는 매해 겨울마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설난을 보러 그 곳을 찾아 간다고 합니다. 깔고 앉은 눈의 차가운 감촉도 잊은 채 한 동안을 그 설난의 청초하고 수줍은 자태와 향기에 도취되어 머문다고 합니다. 하얀 눈으로 덮인 깊은 산 속, 어느 양지바른 골짜기에 숨은 듯 보이는 듯 , 피어난 설난의 신비한 자태, 거기 매혹되어 하염없이 떠날 줄 모르고 앉아 있는 나그네. 나그네의 엄숙하도록 진지한 모습과 에워싸고 있는 고요. 이러한 상상에 나까지도 아름다운 전율에 아득해 집니다.
얼마 후 그는 내게 한 점의 그림을 보내 왔습니다.. 무한한 시공 時空인양 흰 색 비단폭에 날렵하고 유연하게 뻗은 다섯 길고 짧은 난 잎, 그리고 아래로 숙인 채 수줍은듯 핀 세 송이의 설난이 수묵의 농담으로 원근감을 주며 은은한 향을 뿜는 듯합니다. 그리고 한 편에 그의 휘호가 있습니다.
그림을 들고 보니 툭 떨어지는 쪽지가 있습니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저 깊은 산 중 설난의 향내음이 풍겼습니다..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아 보았지요. >
내 춥고 어두운 방 안에 환한 불이 켜지고 손과 발이 따뜻해오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