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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 년대, 그 때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매우 치열했다. 특히 서울서의 학교 서열은 아주 확실하여 일류, 이류,삼류 외에는 깡통학교 이런 식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 일류 중학교 입학만 하면 부속된 고등학교는 웬만하면 진학이 되고 육년 빡쎄게 공부하면 또한일류 대학도 용이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으로 일류 중학교 합격은 글자 그대로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이였다. 그런 뜻에서 하경의 ㄱ여중 합격은 집안의 큰 경사였다. 평소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도 하 하 하 너털웃음으로 기뻐해 주시고 두 오빠들도 더 할 나위 없이 좋아하며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큰 기대와 자부심으로 시작한 자랑스러운 ㄱ 여중 학교생활은 너무 힘들기만 했다.처음 입는 교복이 어색하고 불편한 것처럼 새로운 규칙, 여러 교과 과정, 그리고 상하급생과의 엄격한 예절, 모든게 적응하기 어려운 일 뿐이었다. 그리고 조회 때마다 거의 한 시간 씩이나 길게 늘어지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수요일 방과 후의 학도호국단 훈련, 또 토요일의 대청소 등은 거의 군대생활 같은 엄격하고도 험악한 억압의 시간이었다. 하경은 뒤지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했다. 하복 불라우스는 직접 빨아 칼라에 강풀을 발라 다리미로 정성들여 종잇장처럼 대려내고, 아침 등교시마다 거울을 보며 단발마리의 끝이 귀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 준비물이 빠지지 않았는지 점검했다. 그런데 서울서도 성적 우수한 알짜배기들만 모인데다 지방에서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아이들은 원래 기본 실력이 되있는데다 학교 내 분위기가 엄청난 독려 차원의 경쟁을 유발하므로 너나 없이 눈에 불을 켜고 성적 점수 올리기에 극성이었다. 그야말로 교실 안은 점수 벌레들의 온상이었다. 하경이도 이런 분위기에 뒤지지 않으려 잠을 줄여 예습 복습에 주력하고 등하교 버스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영어 단어 외우기에 힘썼다. 하지만 국민학교 때 늘 차지했던 일 이등은 어림도 없었다. 어쩐 일인지 이학년에 올라서는 체력도 딸려서 기운이 떨어져 진땀이 흘렀고 손발도 바들바들 떨리는 중에 성적도 자꾸만 떨어져 차츰 우울해지며 짜증스러워지기만 했다.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 하경은 자기의 성적표를 받아 보곤 그만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요즘 너무 피곤하고 힘겨워 좀 못 할 줄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석차가 뒤에서 몇 번 째---아, 내가꽁찌가 다 됐네, 하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아득해지며 하경은 그만 정신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졸도로 인해서 병원에 입원하고 검사를 받으며 하경은 놀랍게도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아직 중증은 아니지만 무겁고 힘든 학교 생활은 무리이고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설명이었다. 학교는 졸업허고 봐야 하는데 아까워서 어쩌니? 하는 엄마의 탄식에 아버지는 " 사람 목숨이 제일이지 학교는 나중이야 " 퉁명스럽게 댓구하셨다 하경은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다시 그 지옥같은 학교는 가기 싫었다. 거기는 너무 사막과 같은 메마르고 무서운 곳.
" 엄마, 나 학교 전학시켜 줘. 천천히 공부해도 되는 학교로, 학교를 쉬기는 싫어요." " 글쎄다, 치료받으며 학교 다녀도 될까. 한 번 생각해 보자 "
<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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