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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노파가 잠을 깼을 때는 아직 이른 새벽.

늘 같은 시각이다. 노파는 하앟게 세어 성긴 머리칼을 손갈퀴로 대충 쓸어 넘기며

뒤란 우물가로 나왔다. 하얀 김이 뽀얗게 솟아 오르는 우물 속에 두레박을 넣어 맑은

물을 찰랑찰랑 길어 올린다. 우선 달고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머금어 입 안을 가신 후,

주름 진 얼굴을 뽀득뽀득 소리나도록 말갛게 씼는다.

두 번 째 떠올린 물은 조루에 담아 장독대 옆으로 가꾸어 놓은 꽃 밭에 뿌린다. 거기에는

키 순서대로 젤 앞에는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따알리아, 접시 꽃들이 새벽 이슬에

함초롬이 젖은 채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하다. 노파는 조루를 높이 쳐들어 듬뿍듬뿍 물을

준다. 빨갛고 노란 꽃 잎, 푸른 잎사귀 위로 또르륵 또르륵 굴러 떨어지는 수정 물방울들이

언제나처럼 가슴저린 그리움으로 젖어든다.

분홍 꽃 송이 조롱조롱 매달고 낮으막한 봉숭아는, 밑으로 아직 어린 두 딸 애들같고, 물 맞을

때마다 우쭐대는 따알리아 접시 꽃은 쑴벅쑴벅 잘도 크던 아들들 같다. 영감이 있고

오남매가 이 집을 가득 채우고 시끌벅적 살 때는 하루하루를 꾸려가기가 참으로 바쁘고

살기에 골몰했었지.

먼저 저 세상 떠나버린 영감과 두 아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찌르는듯 생생한 아픔이나--

노파는 새삼 고개를 저으며 털어버리고 만다.

두 딸은 제각기 좋은 서방 만나 잘 살고 있으니 감사하고, 그리고 세 째 명호가 아직 있다.

오랜동안 못보고 있으나 언젠가는 기어코 이 어미를 찾을 것이다.

' 암 오구 말구' 엄노파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세 번 째 물을 길어올려 걸레를

힘차게 빨아 헹구어, 마루사이로 둔 건너 방으로 간다.

 미닫이를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구석구석 깨끗이 닦는다. 빈 방인듯 냉냉한데 매일 닦아

반짝이는 장판 방이며 오래된 서랍장과 책상이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긴장되어 있다.

 낡아서 모서리가 둥굴고 칠도 벗겨져 수없는 흠집과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책상을 닦으며

' 이게 우리 집 우등생을 길러낸 책상이여. 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상타고 대학까정 다닌게여.'

하며 장한 명호의 학생 때 모습을 떠올린다.그러나 지금 노파 꼍에 없는 명호를 생각하며 자기

최면을 걸듯 ' 암1 올거여 오구말구, 그러니 언제라도 오면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치워놔야

되지 않것어? ' 또 다짐하며 옷소매를 걷어올려 가늘게 드러난 팔뚝에 울근불근 힘줄이 솟도록 

힘차게 닦고 또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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