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밥은 잘 먹었는가? 구치소에서 먹던 음식과 비교하니, 집 음식 좋다는게 새삼 느껴지지 않던가? 다시는 그곳 음식 먹고 싶지 않을 것 같네. 자네가 구치소를 나오면서 "과거와는 단절되게 반성하며 바르게 살겠다"고 했는데, 그 말처럼 산다면 다시는 그곳 음식 먹을 일이 없겠지. 부디 그 말이 면피용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기를 바라네. 


자네 외삼촌 남양유업 홍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을 본 적이 있네. 외조카의 일탈에 자신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며 죄송하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지. 외삼촌이 외조카의 일탈에 무슨 책임이 있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 자신의 기업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사과문으로 밖에 볼 수 없었네. 실제도 그 사과문 말미에 조카의 일탈과 남양유업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하고 있더군. 대리점 갑질 논란이 홍회장에게 큰 충격을 주긴 주었던 모양일세. 출소 후에 외삼촌한테 죄송하다는 말은 했는지 모르겠네? 꼭, 하게나! 


재벌가 자녀들의 -- 자네도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니 이에 해당되지-- 갑질 논란이나 퇴폐 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자네의 마약 투여 행위도 사실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네. 문제는 그런 일을 저질렀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데 있지. 나는 자네같은 재벌가 자녀들의 일탈 행동은 자네들의 문제라기보다 자네 부모들의 문제라고 보네. 일탈 행위를 해도 그 잘난 배경과 돈을 이용해서 조사에서 면제시키거나 풀려나게 해주니 어찌 자네들이 기고만장하여 일탈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일세. 


앞서 자네가 다시는 구치소 밥을 먹지 않길 기원했지만 솔직히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사람에게 한 번 박힌 습(習)은 쉽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지. 하여 내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귀담아 들어줬으면 좋겠네.


위에 있는 사진 보았나? 바로 자네 외삼촌이 경영하는 남양유업의 아이스크림 사업 브랜드일세. '백미당(百味堂)'이라고 읽는 건 알겠지? 뜻도 아는가? 백미는 '온갖 맛'이란 뜻이라네. 당은 '집'이란 뜻이고. '백미당'은 '온갖 맛난 것을 파는 집'이란 의미일세. 한자에서 백(百)은, 천(千)이나 만(萬)도 그렇지만, 꼭 그 숫자만큼의 수만 나타내지 않고 '많다'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네. 그래서 '백미'를 '온갖 맛'이란 뜻으로 풀이한 것이지. 창업 연도가 1964년으로 돼있는데, 저건 남양유업의 창업 연도라네. 외삼촌이 경영하는 남양유업의 이미지가 좋았으면 저 브랜드 어딘가에 그 이름을 넣었을텐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뺀 것이라네. 어떤 이는 백미당이란 아이스크림 가게가 196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오해하는데, 말 그대로 오해일세.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괜히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사진은 서울 종로서적에서 찍은 것일세. 매장이 종로서적 내에 있더군. 매장에는 자네보다 약간 어린 학생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네. 내가 자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어린 학생들 대신 자네가 서빙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거네. 물론 자네의 정체는 노출시키지 않아야겠지. 한 1년만 매장에서 서빙을 해보게. 그러면 동시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절절히 알게 될걸세. 그걸 알게 되면 자네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네. 


그런데 자네가 하고 싶어도 자네의 부모나 외삼촌이 만류하지 않을까 싶군. 자네의 현재를 지금처럼 만든 이가 그들이니 그럴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제 자네도 성인이니 그 만류를 뿌리치고 나의 제안대로 한 번 해보게나. 분명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일세. 


초면인데 함부로 반말을 해서 미안허이. 그러나 연배상으로 자네의 아버지 뻘이 되기에 말을 놓은 것이니 크게 허물하지는 말게. 잘 지내시게나. 앞으로 흐뭇한 소식만 있기를 고대하겠네.


                                                                                                                             2019. 7. 24,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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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7-24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넵 백미당은 말씀하신것처럼 남양유업에서 나온 아이스크림 브랜드죠.남양유업의 이미지가 워낙 안좋아서 백미당이 남양유업에서 나온것을 소비자들에게 모르게하는 마케팅을 펼쳤는데 그래도 좀 역사가 있다는 것처럼 보이기위해 남양유업 창업년도인 1964년을 살면시 끼워 놓았죠.갠적으로 백미당이 남양유업에서 나온 브랜드인것을 알고 아모도 모르지만 저 혼자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답니다^^

찔레꽃 2019-07-25 09:30   좋아요 0 | URL
경의를 표합니다 ^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다보면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한 번은 어느 교사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며 수업에 태만하고 걸핏하면 교사에게 대드는 현실을 열거하며 도대체 왜 교육 현실이 이런지 답답하다면서 그 처방을 부탁했어요. 현 교육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스님은 뜻밖에 엉뚱한 대답을 했어요. 먼저 교사에게 대뜸 "질문한 분은 왜 교사가 됐냐?"고 물었어요. 흔한 말로 밥벌어 먹고 살기 위해 교사가 됐는지, 아니면 가르치는 일 자체가 좋아 교사가 됐는지를 물은 거예요. 교사가 후자라고 답하자, 스님은 다시 질문했어요. "그러면 현직 교사 그만두고 거의 무보수의 우리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근무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어요. 그러자 교사가 약간 머뭇거렸어요. 몇 차례 실강이 비슷한 질문과 대답이 오간 끝에 질문한 교사는 "밥벌어 먹기 위해 교사가 됐다"고 실토했어요. 이 답을 들은 뒤 스님은 "그러면 밥값을 하라"고 주문했어요. 자는 애들이 있으면 왜 자는지 연구하여 대처하고, 수업에 태만한 애들을 어떻게 하면 흥미를 갖고 수업에 임하게 할지 고민하고, 애들이 대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공부하라고 주문했어요. 그러면서 과거 자신의 만행(萬行) 시절 학원 강사 경험담을 들려줬어요. 거대 담론에 대한 답은 일체 하지 않고 질문 당사자에 모든 것을 집중시켜 그에 대한 해결만 제시한 것이죠. 스님의 해결책은 맞는 답일까요? 어긋난 답일까요?


저도 약간 법륜 스님과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교육 문제에 관한 답이 아니고, 숙취 해소에 관한 답이에요. 한 번은 동료가 간밤에 과음하여 숙취를 풀려고 '헛개즙'을 먹는다길래, 우스개로 이런 말을 했어요. "아니 술은 취할려고 먹은 건데 왜 숙취 해소하는 헛개즙을 마셔?" 동료가 뜨악한 표정을 짓길래 한 마디 더했어요. "숙취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 동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뭔데?" "술을 안마시는거지!" 제 해결책은 맞는 답일까요? 어긋난 답일까요?


사진은 '한국익간보(韓國益肝寶)'라고 읽어요. 익간보는 '간을 돕는 보배'라는 뜻이에요. 금차도(金茶陶)라는 회사가 만드는 건강 식품인데, 주로 간 보호를 목적으로 한 식품이에요(이 회사의 이름 금차도는 우리 나라의 금속 공예품, 차, 도자기 등을 외국에 소개하고 판매하려는 의도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해요). 성분을 보니, 헛개나무 열매 · 밀크씨슬 · 마카분말이 주성분이더군요. 고가의 제품이에요. 그런데 익간보라는 식품이 제 아무리 간을 돕는 제품이라 해도 한계가 있을 거예요. 간을 돕는 제일의 방법은 간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거예요. 간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고가의 제품을 굳이 사먹을 일이 없겠지요? 사진은 종로에서 찍었어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益은 水(물 수)의 변형과 皿(그릇 명)의 합자예요. 물이 담겨 있는 그릇에 물을 더한다란 의미예요. 더할 익. 益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利益(이익), 損益(손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肝은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干(방패 간)의 합자예요. 간이란 뜻이에요. 月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干은 음을 담당해요. 간 간. 肝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肝臟(간장), 肺肝(폐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寶는 宀(집 면)과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缶(장군 부, 항아리의 일종)와 貝(조개 패, 재물의 의미)의 합자예요. 집안  깊숙이 숨겨놓은 값나가는 재물이란 의미예요. 보배 보. 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寶物(보물), 寶貨(보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우리는 이따금 자신이 발을 디딘 땅을 보지 않고 하늘만 쳐다본 채 해답을 찾는 경우가 있어요. 스님에게 질문을 했던 교사도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스님이 해준 답은 하늘을 쳐다보기 전에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을 먼저 보라는 말이었요. 그 다음에 하늘을 봐야겠죠. 실제 스님도 해당 교사에게 답을 한 뒤 뒷부분에 우리 교육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약간 언급을 해요. 스님의 답이 현명한 것은 질문 해당자에게 맞춤 답을 줬다는 거예요. 하늘을 쳐다보는 답을 줬다면 아마 그 교사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 거예요. 건강 회복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늘을 쳐다보기 --  건강에 관한 도서 탐독이나 좋은 약 구입 복용 -- 전에 땅을 먼저 쳐다보는, 즉 현재의 생활을 반성하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회복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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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7-2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한국익간보라고 음을 읽어놓고서, 이런 말이 있나 싶어 맞게 읽은것인가 자신이 없어지던 참이었어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할때 근본을 따져 올라가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겠군요.

찔레꽃 2019-07-22 08:24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저 간판의 상호가 무슨 뜻인지 의아했습니다 ^ ^ 의외로 답은 간단한 곳에 있는 경우가 많죠? 장마철이라 그런지 기분도 왠지...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이즈음의 최고 건강법인 듯 합니다. 홧팅! ^ ^
 


                                   



"그대가 소식을 전하고 오라!"


전국(戰國, B.C.403 -221) 초기 위(魏)나라의 관리였던 서문표(西門豹, 생몰년 미상)는 업(鄴)땅에 부임하면서 그곳의 악습인 인신공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했어요. 매년 물의 신 하백(河伯)에게 처녀를 바치는 풍습 때문에 민심이 흉흉하고 이주하는 사람도 늘어 미곡 생산량이 줄고 있었거든요. 인신공양과 관련한 관리들의 타락도 문제였어요. 돈있는 집 처녀는 뇌물을 받고 인신공양에서 면제시켰거든요. 하백에게 인신공양을 하는 날, 서문표는 대상자로 뽑힌 처녀를 보더니 얼굴이 못생겼다며 타박을 했어요. 그리고 행사를 주관하는 늙은 무당에게 하백을 만나 좀 더 나은 처녀를 데려올 때 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을 전하라며 사람을 시켜 그를 물 속에 처넣었어요. 얼마 뒤 서문표는 왜 이리 소식이 늦냐며 젊은 무당을 시켜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 오라고 시켰어요. 그 또한 물 속에 처넣은 것이지요. 이런 행태를 두 세번 더 한 뒤 이번엔 마을의 장로(長老)라는 이들을 불러 같은 말을 하고 그들 또한 물 속에 처넣었어요. 마지막으로 그간 뇌물을 받아먹던 관리들을 향해 일갈하며 그들 또한 물 속에 처넣으려하자 관리들이 피가 나도록 땅에 머리를 찧으며 목숨을 구걸했어요. 이후 업땅에는 인신 공양 풍습이 사라졌어요. 자연스럽게 관리의 부정부패도 일소됐고, 떠났던 이들도 되돌아 왔지요. 서문표는 인신공양을 하던 그 물[水]을 대대적으로 다스려 비약적으로 미곡 생산량을 늘렸어요.


서문표의 일화는 그 한 사람만의 일화가 아닌 당시 사류 계층의 인식을 대변하는 일화예요. 이 일화가 보여주는 것은 한마디로 신비/미신을 타파한 인문 정신의 승리이죠. 개명한 지금도 신비/미신이 횡행하는데 이천 수백년 전에 이를 타파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에요.


동아시아 문명에서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인격신은 이미 이천 수백년 전에 죽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만일 그러한 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다시 나타났다면 기풍(氣風)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우리 근대사의 천주교 박해 사건은 분명 비극적인 일이지만 동아시아의 인문 정신에서 보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이른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무리를 처단한 것이니까요. 서문표는 일찌기 그런 실행의 전범을 남겼던 사람이죠.


사진은 보령댐 근처에 있는 서짓골 성지(聖地)의 순교자 현양비예요. 한자는 '광영위주치명(光榮爲主致命)'이라고 읽어요. 흔히 '한빛이어라, 임께 다다른 숨'이라고 의역하는데, 직역하면 '영광되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예요. 서짓골 성지는 병인박해(1866)때 희생됐던 4명의 순교자가 15년 6개월 동안 묻혔던 장소예요(현재는 절두산 순교성지에 안치). 현양비를 보며 문득 다른 각도에서 현양비를 볼 수는 없을까 싶어 몇 마디 해봤어요. 자신이 섬기는 신을 위해 죽은 이는 그 신을 섬기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일이지만,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봤어요. 혹시 천주교를 믿는 분들은 제 언사에 불쾌감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순교자를 폄훼하는 듯한 말도 그렇지만 특히 천주님을 신비/미신의 존재처럼 본 시각에요. 순교자나 천주님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어요. 다만 한 대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평가와 해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너른 이해를!


榮과 致가 낯설어 보이네요. 자세히 살펴 볼까요?


榮은 木(나무 목)과 熒(등불 형) 약자의 합자예요. 오동나무란 뜻이에요. 木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熒의 약자는 음(형→영)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오동나무는 자주 혹은 붉은 색이 감도는데 그 색이 등불 빛과 흡사하다는 의미로요. 오동나무 영. 지금은 빛나다란 뜻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빛날 영. 榮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榮華(영화), 榮枯盛衰(영고성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致는 夂(뒤져올 치)와 至(이를 지)의 합자예요. 이르다란 뜻이에요. 夂로 뜻을 표현했어요. 夂에는 뒤쳐져 오지만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늦지만 계속 나아가 목표 지점에 '이르렀다'는 뜻을 표현한 거예요. 至는 음(→치)을 담당해요. 이루다 · 다하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致命傷(치명상), 致死(치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상과 신념을 달리한다고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에요. 이런 각도에서 보면 비록 서문표의 행위가 인문주의의 승리이긴 하지만 상찬(賞讚)받을 일은 아니지요. 일찌기 공자는 이단은 공격하면 해로울 뿐이라고 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공경하되 멀리하는 태도를 취하라고 권했어요. 자신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요하여 목숨을 빼앗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설혹 그것이 혹세무민의 사상이나 신념이라 할지라도요.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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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서기(東道西器).

  

전통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서구 문물을 대하며 '어떻게 전통적 가치를 지켜야 할 것인가' 라는 고민 끝에 내놓은 처방이죠. 그래, 문명의 이기(利器)는 서구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신은 우리 것을 고수하겠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 가치를 전통 지식인들 스스로가 망각한 주장이에요. 전통 지식인은 성속(聖俗)이 불이(不二)이고 생사(生死)가 불이(不二)라는 가치관에 익숙하죠. 그렇다면 문명의 이기와 그 속에 함유된 정신도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죠. 따라서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 속에 함유된 정신도 함께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동도서기는 이를 분리시키자는 주장이니, 전통적 가치를 망각한 주장이에요. 서구 문명에 대한 저항 의식이 만들어낸 공허한 구호이죠.

  

습기가 많은 이즈음, 건조기를 사용하는 가정들이 많죠. 저희도 이따금 건조기를 사용하는데, 이점이 많아요. 눅눅한 불쾌감과 곰팡이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에요. 하지만 이런 이점을 누리는 만큼 반대급부도 있을 거예요. 전기를 더 써야 하고 그만큼 발전기도 더 가동시켜야 하고 이에 따른 환경오염도 증가 될 테고. 굳이 인연(因緣)이란 불교 덕목을 들먹이지 않아도 편리함의 부정적 대가는 분명히 뒤따르겠죠.

  

이런, 방향이 곁으로 샜네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니고, 건조기 사용과 관련된 우리의 마음이에요. 앞서 문명의 이기와 그 이기에 담긴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했어요.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도 그에 따라 변화한다고 했죠. 건조기는 물기라는 불편함을 견딜 수 없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따라서 이 이기를 사용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이 변할 수밖에 없어요. 불편을 감수하는 인내력이 저하되는 거죠. 사실 수많은 문명의 이기는 대부분 불편함을 견딜 수 없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순간 인내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인내력이 저하되면서 개인이 가진 정서나 사람간의 관계도 점점 삭막해져 간다는 점이에요. 나이가 많든 적든 과거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주변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 말을 실감할 거예요. 갈수록 문명의 이기 사용은 늘어날 것이고 개인이 가진 정서나 사람간의 관계도 이에 따라 더욱 건조해질 거예요

  

개인이 가진 정서나 사람간의 관계가 삭막해져 가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워요. 건조기를 돌려 쾌적감을 취한 대신 반대급부의 부정적 영향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평가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문명의 이기도 편하게 사용하고 물기 있는 정서도 유지하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 아닐까 싶어요.

  

사진은 극도건조(極度乾燥)라고 읽어요. 설명은 굳이 필요 없겠죠? 영국의 다국적 의류회사인 ‘Super dry’를 한역(漢譯)한 거예요. 일본에서 번역했더군요. 한국에도 진출한 적이 있는데 재미를 못 봐 철수했고, 일본에서는 성공했다고 해요. 한역된 상호를 보며 왠지 우리 시대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호 같아 견강부회한 생각을 풀어 봤어요.

  

한자의 뜻과 음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나무 목)(빠를 극)의 합자예요. 용마루란 의미예요. 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다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용마루는 최정상부에 사용되는 목재거든요. 은 음을 담당해요. 용마루(다할) .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窮極(궁극), 太極(태극)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의 변형, 손 수)(무리 서) 약자의 합자예요. 뭇 사람들을 통제하는 일정한 규준이란 의미예요. 뭇 사람이란 의미는 의 약자로, 규준이란 의미는 로 표현했어요. 과거에 손은 장단(長短)을 재는 기준이었기에 규준이란 의미로 사용됐어요. 법도(정도) .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法度(법도), 程度(정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은 어두운 곳에 햇살이 비치듯 생명이 없을 듯한 두껍고 딱딱한 땅에서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예요. 은 땅을 뚫고 힘겹게 올라오는 싹의 모습을, 나머지는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표현한 거예요. 하늘이란 뜻과 마르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새싹이 지향하는 곳이 하늘이라 하늘이란 뜻으로, 새싹이 햇빛에 바짝 말랐다는 뜻에서 마르다란 의미로 사용하게 된 것이죠. 하늘(마를) .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乾坤(건곤), 乾魚物(건어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불 화)(떠들썩할 조) 약자의 합자예요. 말리다란 의미예요. 로 뜻을 표현했어요. 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날것[]을 말릴 때는 떠드는 소리처럼 다양한 소리가 난다는 의미로요. 말릴(마를) .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焦燥(초조), 燥濕(조습, 마름과 습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라고 하죠. 나이가 들수록 물기가 빠져 나가 대부분 마른 체형을 보이죠. 문제는 마른 체형처럼 마음도 메말라간다는 거예요.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금전에 대한 욕심인데, 메마른 마음을 메꾸려는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런데 이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에요. 몸에 물기가 없는데 마음에 물기가 고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수록 정서와 사람 관계가 건조해지는 것과 매한가지죠.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에 이를 조절할 수 있어요. 노년이 될수록 관대해지는 사람도 있잖아요? 나이 칠십에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법도에 들어맞았다고 하는 공자가 그 한 실례죠. 하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모습은 아니죠. 이런 점에서 보면,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면서 인정도 물기를 유지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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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뚝뚝한 오빠가 중간에 택시를 세우고 울었다더니, 이제야 그 심정 이해가 돼."


형님은 막내 아들을 사고사로 잃었어요. 비통한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형수님과 달리 형님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으셨어요.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슬픔을 곱씹고 계셨던 거예요. 조카의 사고사는 벌써 십수년 전 일인데, 새삼 형님의 슬픔을 알게 된 건 막내 누님과의 통화를 통해서였어요. 막내 누님도 최근 큰 아들이 사고로 손가락 두 개를 잃는 아픔을 겪었는데, 본인이 직접 그런 아픔을 겪고 나니 사고사로 막내 아들을 잃었던 오빠의 심정이 절절히 이해되더라며 저 말을 하셨어요. 어쩌면 형수님보다 형님의 마음이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어요. 표현되는 슬픔보다 표현되지 않는 슬픔이 더 슬플 수 있으니까요.


사진의 시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서화가인 왕탁(王鐸, 1592-1652)의 춘석(春夕, 봄 저녁)이란 시예요. 시를 읽다보니, 특히 말미에서, 시인이 느꼈을 심정이 바로 형님께서 보였던 슬픔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 잠시 이야기를 해봤어요. 시를 읽어 볼까요?


水流花謝兩無情  수류화사양무정    흐르는 물 지는 꽃 둘 다 무정하여라

送盡東風過楚城  송진동풍과초성    모두가 봄 바람 초성(楚城)을 넘는 것 전송하네

胡蝶夢中家萬里  호접몽중가만리    꿈 속에 나비 되어 고향에 가렸더니 머나먼 만리 길

子規枝上月三更  자규지상월삼경    자귀도 이 마음 아는지 한 밤내 우는구나

故園書動經年絶  고원서동경년절    이제는 고향 소식도 드문데

華髮春唯滿鏡生  화발춘유만경생    이 봄엔 백발만 머리 한가득

自是不歸歸便得  자시불귀귀변득    스스로 돌아가지 않을 뿐 뜻만 있으면 갈 수 있나니

五湖煙景有誰爭  오호연경유수쟁    안개 낀 오호(五湖) 경치 그 누가 알단 말가


허무하게 지나가는 봄을 지는 꽃과 그 꽃잎을 싣고 흘러가는 물을 향해 애꿎게 타박했어요. 왜 가는 봄을 붙잡지 않고 전송만 했냐고. 시인이 지나가는 봄을 애달파 하는 것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신세이기 때문이에요. 고향은 낮이나 밤이나 자나 깨나 가고 싶은 곳. 그러나 그 고향은 꿈 속에서도 가기 힘든 머나먼 곳. 그저 그립기만 할 뿐이죠. 한 밤중 고향 생각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일 때 들려오는 두견새 소리는 시인의 마음을 대변한 것만 같아 더 구슬프게 들려요. 고향 소식이라도 자주 접하면 쓸쓸한 마음이 덜하련만 이제는 고향 소식도 뜸해요.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저문 봄. 마음은 까맣게 타고 머리엔 흰 이슬만 가득해요.


이런 상황이면 시인의 눈엔 눈물이 마음엔 서글픔이 가득하련만, 시인은 뜻밖의 말을 하고 있어요. "스스로 돌아가지 않을 뿐 뜻만 있으면 갈 수 있나니." 그리고 자신의 고향 자랑으로 시를 매듭지었어요. "안개 낀 오호 경치 그 누가 알단 말가." 시의 마지막 두 구는 시인의 허장성세(虛張聲勢)예요. 애써 허세를 부리며 귀향의 간절함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형님이 자식 잃은 슬픔을 가슴 속에 묻고 겉으론 무심한 듯 보였던 것 처럼요. 그러나 형님이 남모르는 곳에서 울었듯, 시인 역시 저 말 끝에 자신도 모르게 되돌아 눈물을 흘렸을 거예요.


낯선 한자를 두 어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盡은 皿(그릇 명)과 燼(탄나머지 진) 약자의 합자예요. 타고나면 남는 것이 없듯이 그릇 속의 음식물이 남김없이 다 비워졌다란 의미예요. 다할 진. 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盡力(진력), 燒盡(소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蝶은 (벌레 충)과 枼(葉의 약자, 잎사귀 엽)의 합자예요. 나뭇잎처럼 얇은 날개를 가진 곤충이란 의미예요. 나비 접. 蝶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蝶翎(접령, 나비의 날개), 蝶兒(접아, 나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絶은 糸(실 사)와 刀(칼 도)와 卩(節의 약자, 마디 절)의 합자예요. 칼을 가지고 실을 잘라 길고 짧음을 조절한다는 의미예요. 끊을 절. 絶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絶交(절교), 謝絶(사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歸는 止(그칠 지)와 帚(婦의 약자, 아내 부)와 臣(신하 신) 중첩자가 합쳐진 거예요. 시집가다란 의미예요. 시집을 가는 것은 한 사람의 아내가 되고 자신이 살 곳을 찾아 머무는 것이기에 止와 帚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臣의 중첩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시집을 가면 남편과 시부모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복종하듯, 복종하며 지내야 한다는 의미로요. 돌아갈(시집갈) 귀. 歸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歸家(귀가), 回歸(회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煙은 火(불 화)와 堧(빈터 연)의 합자예요. 연기란 의미예요. 火로 뜻을 표현했어요. 堧은 음을 담당해요. 연기 연. 煙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吸煙(흡연), 煙幕(연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왕탁은 명조(明朝)의 신하였다가 정복국인 청조(淸朝)에 출사한 부끄러움 때문에 평생 이[齒]를 드러내고 웃지 않았다고 해요. 이런 강한 자기 단속이 이 시에서도, 특히 말미의 두 구에서, 느껴져요. 이 시의 창작 연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 느낌으로 추정해보면, 청조에 출사한 이후가 아닐까 싶어요. 사진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았는데 출처를 잊었어요. 글씨는 왕탁이 직접 쓴 글씨가 아니고, 정봉집(程峯集) 이란 분이 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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