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 말 의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우매함을 탓하는 분노의 눈물.

 

춘추시대(B.C 722-468) 260년간 전쟁은 531회 있었다. 이런 전쟁 경험에 대한 이론적 총괄이자 철학서가『손자병법』이다. 손자는 말한다.

 

병법에는 다섯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첫째, 척도, 둘째, 물량, 셋째, 병력수, 넷째, 역량 비교, 다섯째, 승리상황이다. 

 

아군의 병력이 적군의 열 배라면 적군을 포위하고, 다섯 배라면 공격하며, 두 배라면 적군 역량을 갈라 놓아야 한다. 대등하면 싸울 수는 있으나, 적으면 도망을 해야 하며, 열세라면 피해야 한다. 열세이면서도 고집스럽게 버틴다면 강한 적에게 사로잡힐 뿐이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만한 여건을 만들어 놓고나서 전쟁을 하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벌여 놓고는 이기기를 구한다. 

 

칼과 창 기껏해야 화승총으로 무장한 오합지졸[의병]이 총과 기관총 대포 등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정예 일군(日軍)과 싸우는 것은 이미 패하고 싸우는 싸움이었다. 한신의 '배수진(背水陣)'처럼 『손자병법』의 원리를 응용하여 싸울수도 있었겠지만, 의병에게는 한신도 없었다. 구한말 의병의 전투는 우매함 그 자체였다. 그 우매함 때문에 금쪽같은 생명을 헌신짝처럼 내버렸으니, 어이 아니 분노의 눈물을 흘리랴!

 

사진의 시는 이런 승산없는 싸움을 벌인 우매한 의병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崔運先烈士詩 최운선열사시  최운선 열사의 시

 

光復兵幕雪夜 광복병막설야  광복을 위해 나선 싸움터 군막 눈 내리는 밤에

 

離鄕戰地春秋過 이향전지춘추과    집 떠나 싸움터에서 세월만 가니


孤燈幕窓漏樹柯 고등막창루수가    외로운 등불 군막 틈새로 빛이 샌다

靑天明月同故國 청천명월동고국    밝은 달은 고향과 같은 달인데

白雪廣野無宿家 백설광야무숙가    눈 덮인 들에는 잘 곳도 없다

折轍單戈糧絶極 절철단과량절극    수레도 창도 군량미도 떨어져도

齧指丹血盟誓多 설지단혈맹서다    손 깨물어 조국충성 피로써 맹서하네

必時倭賊伐征息 필시왜적벌정식    기필코 왜적을 무찔러

槿域安民平得和 근역안민평득화    조국의 평화를 이룩하리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충분한 군량미를 비축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싸워도 승산을 따지기 어려운 판에 수레도 창도 군량미도 떨어지고 몸 누일 공간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라니! 그것도 눈내리는 밤에! 이들에게 남은 것은 곧이어 닥칠 죽음의 핏빛 새벽 뿐이다. 왜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하는가! 우매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의병은 정말 자신들이 패할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군의 막강함을 그들이 왜 몰랐겠는가! 눈멀고 귀멀지 않은 이상 일군의 막강함을 몰랐을리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처지도 알고 상대의 위상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손자는 말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안다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의병은 위태롭지 않을 수 있었다.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싸우지 않으면 될 것이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싸웠다. 왜? 싸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국권을 침탈당하는데 어찌 사태의 추이를 관망한단 말인가. 싸울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우매해서 패한 것이 아니다. 현명했기에 패한 것이다. 시의 6~8구는 이런 의병의 처연(凄然)한 모습을  보여준다.

 

구한 말 의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처연한 의기에 흘리는 감동의 눈물. 


그들은 결코 우매한 이들이 아니었다. 현명한 이들이었다. 살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의연히 포기하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하나뿐인 생명을 기꺼이 국권의 수호를 위해 산화한 이들을 어찌 우매하다 탓하랴! 구한 말 의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처연한 의기에 흘리는 감동의 눈물이다.

 

주요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離는 隹(새 추)와 离(산신 리)의 합자이다. 본래 꾀꼬리를 뜻하는 글자였다. 隹로 뜻을, 离로 음을 표현했다. 떠나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다. 꾀꼬리가 앉아있던 나뭇가지를 떠났다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떠날 리. 離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離別(이별), 分離(분리) 등을 들 수 있겠다.

 

幕은 巾(수건 건)과 莫(暮의 약자, 저물 모)의 합자이다. 장막이란 의미이다. 巾으로 뜻을 표현했다. 莫는 음(모→막)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저물면 사방에 어두움이 내리듯, 사방에 드리운 것이 장막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장막 막. 幕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幕府(막부, 장군이 집무하는 곳), 幕僚(막료) 등을 들 수 있겠다.

 

宿은 宀(집 면)과 夙(일찍 숙) 변형과의 합자이다. 쉬면서 잔다란 의미이다. 쉬면서 자는 곳이 대개 집이기에 宀으로 뜻을 표현했다. 夙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온밤을 지내고 이른 새벽까지 쉬면서 잤다는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잘 숙. 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寄宿(기숙), 宿食(숙식) 등을 들 수 있겠다. 

 

은 糸(실 사)와 刀(칼 도)와 㔾(節의 약자, 마디 절)의 합자이다. 칼을 가지고 실을 잘라 길고 짧음을 조절한다는 의미이다. 끊을 절. 絶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絶交(절교), 謝絶(사절) 등을 들 수 있겠다. 

 

齧은 깨물다란 의미이다. 齒(이빨 치)로 뜻을 표현했다. 나머지는 음을 담당한다. 깨물 설. 齧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齧破(설파, 깨물어 깨뜨림), 齧齒類(설치류, 쥐·토끼·다람쥐 따위의 동물) 등을 들 수 있겠다. 

 

槿은 무궁화란 의미이다. 木으로 뜻을 표현했다. 나머지는 음을 담당한다. 무궁화 근. 槿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木槿(무궁화), 槿域(근역, 우리나라의 이칭)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하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이만큼 민주화된 것은 그만큼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에는 패할 줄 알면서도 싸웠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구한 말 의병 정신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 수많은 민주 투사들의 일견 무모해보이는 저항을 이해할 길 없다.

 

여담 둘. 사진의 시를 지은 최운선은 면암 최익현과 함께 나라의 앞날에 대해 노심초사 걱정하다가 의병을 일으켜 경향각지를 전전하며 항일투쟁과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1919년 3월 1일 천안에서 독립만세운동이 들불과 같이 일어나자 고향인 청양으로 돌아와 그해 4월 5일 청양 정산시장에서 지역주민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다가 체포돼 일본 헌병의 악랄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순국했다(출처: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940338). 사진은 http://blog.daum.net/woncompark/10681015 에서 얻었다. 시 번역에서 故國(고국)을 고향으로 번역했다. 동어 반복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고국으로 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최운선은 조선을 떠난 적이 없다. 사진의 시비(詩碑)에서 故國을 그대로 고국으로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野가 시비에는 다른 모양으로 나온다. 野를 고자(古字)로 멋스럽게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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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좋아질거야!"


좋아지지 않았다.


아버지 생전에 용하다는 무당 집에 두 번 간적이 있다. 한 번은 (아버지)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돼서 갔고, 한 번은 병으로 앓아 누우셔서 갔다. 간 곳에서 모두 긍정적인 답을 해줬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눈은 더 보이지 않게 되었고, 병은 더 악화되었다. 그들은 나를 속인 것일까?


사진의 한자는 한글로 표기된 바와 같이 '천우장군(天愚將軍)'이라고 읽는다. 무당들은 저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다. 저 펼침막을 붙인 무당은 장군신을 모시는 무당이다('천우'가 어떤 장군인지는 모르겠다). 펼침막을 붙인 것을 보니, 최근에 신내림을 받은 듯하다. 대개 신내림을 받은 초기는 영험이 있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 속설에 기대 광고를 한 듯 보인다.


많은 이들이 무속 신앙에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 대체로 방송 매체를 통해 형성된 것이 많다. 특히 범죄― 살인, 사기 등 ―와 관련해서 무속 신앙을 다룬 경우가 많아 그 영향이 큰 듯 싶다. 하지만 무속 신앙은 고등 종교의 원초 형태이다. 기독교를 믿는다고 불교를 믿는다고 잰 체할 이유가 없다. 고등 종교는 화려한 옷을 걸친 것 뿐이고, 무속 신앙은 소박한 옷을 걸친 것 뿐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었어도 그것을 벗으면 똑같은 나신(裸身)일 뿐이잖은가?


무속 신앙을 찾는 것은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이다. 고등 종교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속인을 찾으면 비용을 지불한다. 고등 종교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외려 고등 종교는 의례화된 형식을 빌어 지속적으로 비용을 내게 만들지만, 무속인을 찾을 때는 그 때만 지불하면 되니 비용이 덜 든다고 할 수도 있다.


무속 신앙에 극력 반대하는 사람들을 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엑셀도 좋지만 주판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각자가 편한대로 쓸 뿐이다. 무속 신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것 뿐.


아버지 때문에 찾았던 무속인이 나를 속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절박한 심정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 마음을 헤아려, 내게 해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속였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어리석은 것이다. 어떻게 아버지의 삶을 그에게 의탁한단 말인가! 그의 말은 그저 참고로 받아들인 것 뿐이다. 참고 의견에는 긍정도 있고 부정도 있지 않던가! 


펼침막을 보면서 왠지 많은 이들이 '요즘 시대에 웬…'하는 생각을 하며 무속 신앙을 하찮게 여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횡설수설 해보았다. (위에서는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다.)


愚와 將이 낯설다. 자세히 살펴본다.


愚는 心(마음 심)과 禺(원숭이 우)의 합자이다. 원숭이같이 답답한 심사를 가진 사람이란 의미이다. 어리석을 우. 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愚鈍(우둔), 愚昧(우매) 등을 들 수 있겠다.


將은 寸(마디 촌)과 醬(장 장)의 약자가 합쳐진 것이다. 장수라는 의미이다. 장수는 원칙과 법도가 있어야 부하를 통솔할 수 있기에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寸으로 뜻을 표현했다. 醬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맛을 조화시키는 장처럼 부하들의 여러 요구를 잘 조화시켜 이끄는 이가 장수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장수 장. 將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將軍(장군), 將星(장성) 등을 들 수 있겠다.


펼침막의 배치가 재미있다. 원초적 욕망과 불안을 다룬 것이 위 아래에 있고, 문명의 발달을 보여주는 것이 중간에 있기 때문. 문명의 발달이란 원초적 욕망과 불안을 해결하면서 쌓아온 것이란 메시지로도 읽히고,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원초적 욕망과 불안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재미있게 배치된 펼침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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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鄰, 먼 이웃이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이웃의 소중함을 말하는 성어다. 명분보다 실질이 중요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니 '이웃 사촌'이라는 말도 생긴 것 아닐까? 마윈의 마스크가 도착했다. 100만장을 보냈다하니 마스크 해갈에 일조를 할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마스크를 보내며 자신의 메시지도 함께 보낸 것.

 

산수지린 풍우상제(山水之鄰 風雨相濟, 산과 물로 이어진 이웃, 비바람(어려움)을 함께 이겨 냅시다. 사진의 해석이 약간 조악해서 고쳐보았다).

 

우리 정부에 사전 통보없이 한국인 입국 금지를 선언과 일본과 극명히 대조된다. 물론 마윈이 개인 자격으로 마스크를 보낸 것이기에 일본과 대조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마윈이 공산당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중국 정부와 무관치 않을 것이기에 일본과 대조해도 큰 무리 없을 듯하다. 우한 사태가 극성을 부릴 당시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점과 중국인 입국자에 대해 무차별 금지를 하지 않고 선별 금지를 하여 중국의 명예를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해석하고 싶다. 어제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한국에 대한 격려 메시지까지 더하여 한층 더 일본과 대조되는 이웃의 가치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감읍(感泣)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던가! 우리가 그만큼 했기에 받는 것 아닌가! 그러면 일본에게는 그만큼 하지 않았기에 못받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일본에 잘못한 것이나 베풀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일본 내각은 그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자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중국인을 선별 입국시켰듯이 그들도 충분히 선별 입국시킬 수 있는데 한국인에 대한 전면 입국 금지를 내린 것은 그같은 강경한 조치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19에 대한 내각의 자세가 안이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만만한(?) 놈 골라 본때를 보인 것이라고나 할까? 코로나19가 창궐하여 하루 기백명이 죽는 이탈리아에 대해서 입국 금지를 내리지 않는 것만 봐도 일본 내각의 속내가 여실히 보인다. 중국과 일본, 둘 다 이웃이지만, 적어도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선 너무 대조된 모습을 보인다.

 

사진은 SBS 뉴스에서 캡쳐했다.

 

鄰과 濟가 낯설다. 간자체라 더욱 그렇다.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자.

 

鄰은 阝(邑의 변형, 고을 읍)과 粦(도깨비 불 린)의 합자이다. 고을이란 뜻이다. 주(周)나라때 지방 행정의 최소 단위로 다섯 가구를 묶어 鄰이라 했다. 으로 뜻을 표현했다. 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도깨비 불처럼 모여있는 듯 흩어있는 듯 미미한 가구(家口)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고을 린. 이웃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이웃 린.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親鄰(친린), 交(교린) 등을 들 수 있겠다. 隣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阝의 위치가 바뀐 것.

 

濟는 氵(물 수)와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이다 물 이름이다. 하북성 찬황현 서남쪽에서 발원하여 민수로 들어가는 물이다. 로 뜻을 표현했다. 는 음을 담당한다. 물이름 제. '건너다, 구제하다'란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제수를 건너다, 제수의 풍부한 수량이 가뭄을 극복하게 했다'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건널(구제할) 제.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救濟(구제), 濟民(제민) 등을 들 수 있겠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친서를 전했다. 그런데 그 전날에는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가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우려를 표한데 대해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고 막말을 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막말을 쏟아내고 뒤이어 위로와 격려의 친서를 보내니, 우리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하나? 근친불여근린(近親不如近隣, 가까운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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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1956. 1968.

 

난수표가 아니다. 가게 창립일이다. 1939는 경주 황남빵, 1956은 대전 성심당, 1968은 위 사진의 가게. 모두 한 세기 전에 시작한 가게들이니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유지된 가게들이다. 가게를 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가게가 오래유지되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조변석개하는 시대에 그런 바램은 무망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벌어지던 춘추전국 시대, 시대를 진단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두 사상가 집단이 있었다. 법가와 유가. 법가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전통이 무력해졌다는 증거인만큼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며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다. 유가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전통을 상실했기 때문인만큼 옛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며 위정자의 도덕적 자각을 주장했다. 

 

춘추전국 시대를 서로 다르게 진단했던 두 사상가 집단의 승부는 법가의 승리로 끝났다. 법가를 채택했던 진(秦)이 천하통일의 대미를 장식했기 때문. 개혁의 승리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진은 천하통일 후 2대 만에 망했다. 그리고 들어선 한(漢)은 유가의 사상을 국시로 삼았다. 전통의 승리라고 할 만했다. 그렇다면 최종 승자는 유가일까? 확답하기 어렵다. 비록 표면으로는 유가를 중시했지만 이면으로는 법가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한 선제는 독존유술(獨尊儒術)을 주장하는 태자를 질책하며 이런 말을 했다. "장차 한을 어지럽힐 자, 태자로다." 법가를 중시했다는 반증이다.

 

보수와 개혁은 갈등 관계이다. 조화를 이루는게 가장 좋지만 쉽지 않다.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지키려는 쪽이고, 개혁은 바꾸려는 쪽이다. 입장이 상반되니 조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것이다. 저 지난 세기에 창립했던 가게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며 여전히 호응받고 있는 것은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록 한 가게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성공 사례는 한 국가를 운영하는데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의 한자는 '황원당우알당(黃元堂牛軋堂)'이라고 읽는다. '황원당'은 상호명이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다. '황씨가 만드는 최고의 (펑리수) 가게' 란 뜻이 아닐까 싶다(황원당은 파이애플 과자인 펑리수로 유명하다). '우알'은 누가(Nougat, 사탕의 일종)의 가차 표기이다. 중국음으로는 '뉴야'라고 읽는다. 당은 사탕이란 뜻이다. 결국 이런 의미가 되겠다. 황원당에서 만든 누가 캔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표기 밑에 영어로 표기된 것은 누가 캔디에 관한 표기가 아니고 펑리수 표기란 점이다. 비록 펑리수로 유명한 가게이지만 상호에 나타난 것은 누가 캔디이니 거기에 맞게 영어 표기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왼쪽의 한자는 '연첨면밀(軟甛綿密)'이라고 읽는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조밀하다'란 뜻이다. 오른쪽의 한자는 '첨이불이(甛而不膩)'라고 읽는다. '달달하지만 느끼하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먹어보니 설명과 크게 틀리지 않았다. 황원당우알당 아래 있는 한자는 '하문 자호(廈門 字號)'라고 읽는다. 하문(중국음으로는 샤먼)은 지역이름이고, 자호는 상호(商號)와 같은 뜻이다. 아들 아이 친구가 이곳을 여행하고 선물로 사온 것을 찍은 것이다.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보자.

 

軋은 車(수레 차)와 乙(새 을)의 합자이다. 삐걱거린다는 뜻이다. 車로 뜻을 표현했다. 乙은 음(을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乙은 본래 초목의 싹이 비뚤비뚤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는 그같이 수레가 지나가고 나면 지면이 울퉁불퉁해진다는 의미로 사용됐고, 이 의미로 삐걱거린다는 본뜻의 의미를 보충한다. 삐걱거릴 알. 軋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軋轢(알력), 알알(軋軋, 수레바퀴가 구르는 소리) 등을 들 수 있겠다.

 

軟은 거(수레 차)와 欠(빠질 결)의 합자이다. 수레가 부실하다는 의미이다. 車로 뜻을 표현했다. 欠은 음(결연)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결함이 있기에 수레가 부실하다는 의미로. 연하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연할 연. 軟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軟弱(연약), 柔軟(유연) 등을 들 수 있겠다.

 

甛은 舌(혀 설)과 甘(달 감)의 합자이다. 혀가 느끼는 특별한 맛[달콤함]이란 의미이다. 舌로 뜻을 표현했다. 甘은 음(감첨)을 담당하면서 본뜻을 보충한다. 달 첨. 甛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甛瓜(첨과, 참외), 甛言蜜語(첨언밀어, 남을 꾀기 위한 달콤한 말) 등을 들 수 있겠다.

 

膩는 月(肉의 변형, 고기 육)과 貳(두 이)의 합자이다. 기름[비계]이라는 뜻이다. 月으로 뜻을 표현했다. 貳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貳는 거듭되다란 의미도 있다. 기름[비계]이란 그같이 살에 덧보태져 있는 부분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기름 이.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膩理(이리, 살결이 곱고 반들반들함), 膩脂(이지, 비계) 등을 들 수 있겠다.

 

황원당은 창업한지 반백년이 넘었다. 다시 언급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가게다. 앞으로도 계속 잘 유지되었으면 싶다. 단순히 한 과자 가게로서가 아니라 보수와 개혁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준 한 표본으로서! 우리의 황남빵이나 성심당도 그렇기를!! 우리 정치도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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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나무와 흙을 사용한 다리→콘크리트 다리→복개.

 

고향 집 앞에는 개울이 흘렀다. 개울을 중심으로 동네가 둘로 나뉘었다. 둘을 이어주는 것은 징검다리였다. 그후 개울이 넓혀지고 둑이 생기면서 정식(?) 다리가 놓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복개로 종결되었다. 나무와 흙을 사용한 다리 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았고 물이 많을 때는 헤엄을 치기도 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하고. 살림은 어려웠지만 인심은 순후(淳厚)했다.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면서 이런 일들이 없어졌다. 아니, 물이 더러워져 할 수 없게 되었다. 살림은 나아졌지만 인심은 각박(刻薄)해졌다. 

 

사진은 '도둔굴(道遁堀)'이라고 읽는다. 일본어로, 일본 발음으로는 '도톤보리'라고 읽는다. '도톤 수로(운하)'라는 의미로,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란 이가 처음 착공했고 후계자가 이어받아 4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한(1615년) 길이 3km의 인공 하천이다. 본래 있던 작은 물줄기들을 연결시킨 것으로,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통상 이 강을 따라 동서로 500m 가량 이어지는 거리를 도톤보리라고 부른다. 남쪽의 센니치마에와 난바, 북쪽의 신사이바시를 잇는 중심가로 식도락 천국 오사카를 대표하는 거리이다. 사진은 일본에서 찍은 것이 아니다. 서울에 갔다가 찍었다. 다양한 일본 요리를 선보인다는 의미에서 내건 간판명 같았다.

 

간판을 보니 문득 고향집 앞 개울이 떠오르고 부질없는 상념이 오갔다. 도톤보리는 1615년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고향집 개울은 30년이 채 안되어 본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도톤보리가 없었다면 도톤보리가 과연 오사카의 명소가 될 수 있었을까? 개울이 복개되고 그 밑으로 썪은 물이 흐르는데 그곳을 과연 고향이라고 찾고 싶을까? 상념은 뜬금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이제라도 복개를 걷어내고 원모습을 되살려낼 수는 없을까? 음식보다 고향 집 앞 개울을 생각하게 한 사색적인 간판이었다.

 

遁과 堀이 낯설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자.

 

遁은 辶(걸을 착)과 盾(방패 순)의 합자이다. 달아난다는 의미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盾은 음(순→둔)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상대의 무기로 인해 생길 상처를 피하기 위해 방패를 사용하듯 그같이 어려운 일을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달아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달아날 둔. 遁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隱遁(은둔), 遁世(둔세) 등을 들 수 있겠다.

 

堀은 土(흙 토)와 屈(굽을 굴)의 합자이다. 굴이란 의미이다. 土로 뜻을 표현했다. 屈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몸을 반듯이 펴지 못하고 구부정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 굴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굴 굴. 堀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洞窟(동굴), 石窟(석굴)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은 인간의 개발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개발 행위로 인해 야생 동물[박쥐] 서식지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물류 이동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 이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됐다는 것. 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진 뒤에는 또다른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업보인지 모른다. 근본적 해법은 예방이나 백신 개발이 아니라 개발 행위의 재고와 복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역시 저 사진의 간판이 안겨준 생각. 이래저래 사색적인 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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